▲ 199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고졸 우선지명을 받았던 휘문고 박용택(왼쪽)과 신일고 안치용은 각각 고려대와 연세대로 진학한 뒤 2002년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프로 초년생 시절 절친한 두 친구의 앳된 모습이 눈길을 끈다. ⓒLG 트윈스 제공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LG 시절 원정경기를 마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였다. 나는 배가 출출해서 우동을 사 먹으러 갔다 왔는데, 박용택은 버스에서 방망이를 가지고 내리더니 혼자 달빛 아래에서 스윙을 하고 있더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는 박용택이 결국 가장 강한 자다.”

박용택과 입단 동기인 안치용(41) KBSN스포츠 해설위원의 얘기다.

박용택은 휘문고-고려대, 안치용은 신일고-연세대 출신이다. 학창 시절 야구 라이벌 학교를 다녔다. 둘은 어릴 때부터 야구 재능이 뛰어나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고, 고교 졸업반이던 1997년 9월에 열린 ‘1998년 KBO 신인드래프트 고졸 우선지명’에서 배명고의 정현택과 함께 나란히 LG에 호명됐다. 대학야구가 성행하던 당시엔 구단별로 1차지명 1명(대개 대졸 선수)과 고졸 우선지명 3명 등 총 4명을 먼저 뽑은 뒤 2차지명에 돌입했는데, 제도적으로 고졸 우선지명 선수는 대학 졸업 후에도 지명 구단에 입단해야만 했다.

▲ 추억의 동대문야구장. 휘문고과 신일고의 대결에서 전광판에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띈다. 타석에 휘문고 2학년 박용택이 1번타자로 들어서 있다. 신일고 2학년 안치용은 7번타자에 포진돼 있다. ⓒ박용택 제공

안치용과 박용택은 대학 졸업 후 2002년부터 LG 유니폼을 함께 입었다.

안치용은 신일고 시절엔 휘문고의 박용택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최고 타자. 신일고가 최강 전력으로 1997년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3개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안치용은 MVP를 비롯해 각종 개인 타이틀을 휩쓸며 신일고 신화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고교 시절 무관에 그쳤던 박용택은 프로에서 더 오래 살아남았다. 박용택이 올해까지 19시즌을 뛴 반면 안치용은 2010년 SK로 이적했고, 2013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고 12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평소 입담이 좋았던 안치용은 은퇴 후 야구 해설위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진심으로 친구의 은퇴를 축하하며 앞날을 응원했다. 자신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박용택을 향해 “결국 친구들 중 가장 강한 자가 됐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국가대표 시절 미국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참가했다가 팬티만 입고 동기들끼리 기념 사진을 찍었다. 고려대 박용택, 연세대 조용준, 건국대 유재웅(왼쪽부터). 세 명은 2002년 각각 LG 트윈스, 현대 유니콘스,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박용택 제공
‘훈련벌레’ 박용택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그 중 ‘빤스택’ 사연이 있다.

박용택은 은퇴를 앞두고 여러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더니 LG 서인석 퓨처스팀 매니저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서 매니저는 휘문중·고 4년 후배로 2001년 한화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가 2007년부터 LG에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 불펜 포수에서 시작해 전력분석 파트의 선임을 지냈다. 박용택으로선 편하다보니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서인석 매니저의 얘기를 들어보자.

“용택이 형은 원정 호텔에서 샤워를 하다 타격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면 오밤중에도 자기 방으로 저를 불러요. 그리고는 반창고나 휴지를 가져와서 탁구공처럼 말아서 던져 달래요. 발가벗은 알몸 상태에서 말이죠. 빤스(팬티)만 걸친 채 방망이를 휘두를 때도 있지만 빤스조차 입지 않고 방망이를 돌릴 때가 많아요. 달밤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스윙하는 걸 상상해 보세요. 남들이 본다면 미친 사람 같지 않겠습니까. 실제 미쳤죠. 야구에 미친 사람이에요. 타격에 대한 어떤 영감이 오면 정말 자다가도 일어나 스윙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에요.”

▲ 박용택은 KBO 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부드럽고 아름다운 스윙을 하는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영감이 오면 언제 어디서든 방망이를 돌리면서 이 스윙을 만들었다. 그의 스윙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LG 트윈스 제공
박용택과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일화를 알고 있는 서 매니저다. 그는 다른 얘기도 들려줬다.

“박종훈 감독 시절이었어요. 그러니까 2010년인가 2011년인가 그랬겠죠? 당시 외야에 빅5(이병규-박용택-이택근-이진영-이대형)가 포진해 있었잖아요. 한 경기에 5명을 모두 외야수로 뛰게 할 수 없으니까 플래툰을 돌릴 때였어요. 외야 3명에 1명은 1루수로 돌고, 1명은 지명타자로 활용하고 그랬죠. 여름이었는데 용택이 형이 당시 슬럼프에 빠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쉬는 월요일에 친구들을 좀 데리고 구리(당시 2군 훈련장)로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주변에 박용택 좋아하는 일반 친구들을 수소문했죠. 다들 박용택하고 함께 훈련한다고 하니 좋아라 하며 달려왔어요. 그 친구들 데리고 구리로 갔는데, 그 한여름 대낮에 뙤약볕 아래서 제가 2시간씩 배팅볼을 던져 줬어요. 용택이 형은 타석에서 빤스만 입고 2시간 동안 방망이를 돌리고, 친구들은 외야에 서서 공 받느라 녹초가 되고…. 훈련에 관한 한 아무도 못 말려요. 그런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늦은 나이에도 야구를 하고 역대 최다안타까지 간 게 아닐까 싶어요.”

인간에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으로 같다. 결국 시간을 담는 자가 승자가 되는 법이다.

#박용택 #엘지트윈스 #안타왕 #은퇴 #이별이야기

<5편에서 계속>

■ '안타왕' 박용택, 10가지 이별이야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 공평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에게 또 한 명의 레전드와 작별을 강요하고 있다. 2002년 데뷔해 2020년까지 줄무늬 유니폼 하나만을 입고 19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LG 트윈스 박용택(41). 수많은 기록과 추억을 뒤로 한 채 그는 약속대로 곧 우리 곁을 떠난다. 이제 선수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를 그냥 떠나 보내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허전하다. ‘한국의 안타왕’ 박용택이 걸어온 길을 별명에 빗대 은퇴 전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은 2018년 월간중앙 기고문과 기자의 SNS에 올린 글을 현 시점에 맞게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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