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유희관(왼쪽 2번째).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고봉준 기자] KBO리그 역대 4번째 대기록은 놓쳤다. 그래도 뜻깊은 날을 맞이한 상대를 향한 축하는 잊지 않았다.

kt 위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린 22일 잠실구장. 이날 경기는 3위 kt와 5위 두산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격차는 단 0.5게임. 경기 결과를 따라 순위가 요동칠 수 있는 하루였다.

그러나 이날 맞대결은 kt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kt는 1-3으로 뒤진 6회 대거 8점을 뽑은 뒤 8회 8점을 더해 17-5 대승을 거뒀다.

그런데 경기가 모두 끝난 뒤 kt와 두산 선수들이 도열해 관중들에게 인사를 나눈 직후 인상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승리를 이끌지 못한 선발투수가 상대 사령탑과 선수들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이날 두산 선발투수 유희관은 5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6회 수비수의 실책 이후 안타를 맞으면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리고 불펜진이 3-1 리드를 지키지 못하면서 승리를 놓쳤다. 유희관으로선 너무나도 아쉬운 하루였다. 8년 연속 10승이라는 대기록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희관이 이날 승리를 거뒀다면 KBO리그 역대 4번째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경기 전 두산 김태형 감독이 이미 이날이 유희관의 올 시즌 마지막 등판임을 공표한 상황. 자칫 단 1승 차이로 대기록을 놓칠 위기로 처한 유희관은 그러나 경기 후 kt 이강철 감독과 선수들의 승리 세리머니를 끝까지 기다린 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kt의 뜻깊은 가을야구 진출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kt는 이날 두산을 꺾고 2015년 1군 진입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초청장을 따냈다. 유희관은 비록 대기록을 놓쳤지만, 의미 있는 날을 맞이한 상대 선수단에게 예를 다했다.

▲ 2018년 두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유희관(왼쪽)과 이강철 당시 수석코치(가운데). 오른쪽은 포수 박세혁. ⓒ한희재 기자
여기에는 상대 사령탑인 kt 이강철 감독과 인연도 크게 작용했다. 이 감독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두산에서 투수코치와 2군 감독,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유희관과도 이때 사제의 연을 맺었다.

연결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희관이 도전하고 있는 8년 연속 10승의 첫 주인공이 바로 이강철 감독이다. 이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 신인 시절이던 1989년부터 1996년까지 8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했다. 그리고 1997년과 1998년에도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면서 지금도 깨지지 않는 10년 연속 10승 금자탑을 세웠다.

옛 제자의 대기록 도전을 잘 알고 있는 이 감독도 유희관의 인사를 받은 뒤 역시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정이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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