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외국인투수 댄 스트레일리가 23일 인천 SK전에서 200삼진을 달성한 뒤 롯데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롯데 외국인투수 기록 갈아치운 댄 스트레일리
-그라운드 안팎에서 응원단장 자처한 숨은 리더
-“한국도 좋았고, KBO리그도 좋았고, 롯데도 좋았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고봉준 기자] “추억이 너무 많아서 하나만을 꼽기가 어렵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외국인투수 댄 스트레일리(32)는 23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 한 해 동고동락한 롯데 선수들과 추억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들은 뒤 꺼낸 대답이었다. 물론 함박웃음이 가득한 미소와 함께였다.

스트레일리가 생애 처음 경험한 KBO리그에서 성공적인 피날레를 장식했다. 스트레일리는 올 시즌 마지막으로 임한 이날 SK전에서 6이닝 동안 103구를 던지며 4안타 2볼넷 9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3-0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 단일 시즌 200삼진과 함께 15승이라는 뜻깊은 기록도 세웠다.

◆동료 얼굴 담긴 티셔츠 제작한 외국인투수
메이저리그 통산 44승을 거둔 스트레일리는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처음에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더 풍부한 아드리안 샘슨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쏠렸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에이스 노릇을 도맡은 이는 스트레일리였다.

상대 타자들이 쉽게 공략할 수 없는 묵직한 구위가 단연 일품이었다. 스트레일리는 시속 140㎞대 후반의 직구와 130㎞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앞세워 KBO리그 타자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했다. 그러면서 올 시즌 31경기에서 15승 4패 평균자책점 2.50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 8월 12일 사직 NC전 직후 ‘분하다 티셔츠’를 나란히 입고 있는 스트레일리(왼쪽)와 김준태. ⓒ롯데 자이언츠
그런데 주목할 대목은 스트레일리의 진가가 마운드 위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은 한국 문화가 어색한 외국인투수지만, 그라운드 안팎에서 응원단장을 자처하며 덕아웃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몫까지 맡았다.

스타트는 바로 일명 ‘분하다 티셔츠’로 불린 ‘김준태 티셔츠’ 제작이었다. 스트레일리는 김준태가 두 눈을 감고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넣은 티셔츠를 깜짝 제작해 7월 공개했다. 그리고 이는 팬들에게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롯데 구단이 정식상품으로 출시할 정도였다.

여기에서 흥미를 느낀 스트레일리는 뒤이어 ‘전준우 티셔츠’까지 제작하면서 새로운 팬서비스 문화를 선도했다.

◆짝짝이와 징으로 덕아웃 분위기 끌어올리기도
스트레일리의 장외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9월에는 짝짝이와 징을 응원도구로 활용해 화제를 끌었다. 무관중 조치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진행되자 덕아웃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아이템을 장만한 것이다.

비록 짝짝이와 징은 상대방 자극 문제로 곧 철수됐지만, 스트레일리의 이러한 열정으로 롯데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신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 스트레일리가 9월 덕아웃으로 들여온 징. ⓒ롯데 자이언츠
물론 스트레일리의 진짜 활약은 마운드 위에서 더 돋보였다. 스트레일리는 23일 SK전 호투로 15승과 함께 200삼진을 동시 달성했다. 먼저 15승은 롯데 외국인투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앞서 2012~2013년 쉐인 유먼과 2013년 크리스 옥스프링, 2015년 조쉬 린드블럼, 2017년 브룩스 레일리가 모두 13승에서 발걸음을 돌렸는데 스트레일리가 이러한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새 역사를 써냈다.

200삼진은 더욱 뜻깊다. 이날 경기 전까지 196삼진을 기록 중이던 스트레일리는 9삼진을 더해 KBO리그 역대 13번째로 단일 시즌 200삼진 금자탑을 세웠다. 역대 외국인투수로는 2001년 215삼진을 기록한 SK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다음으로 2번째이고, 롯데 소속으로는 1984년과 1986년 각각 223삼진과 208삼진을 잡아낸 고(故) 최동원과 1996년 221삼진을 기록한 주형광 다음으로 4번째다.

◆“한국 와서 야구선수 하길 잘했다는 생각 들었다”
올 시즌 마지막 등판 후 만난 스트레일리는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찬찬히 되돌아봤다.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외친 뒤 고개를 숙이며 한국식으로 첫인사를 건넨 스트레일리는 “코로나19가 터지고, 휴식기가 사라지면서 힘들게 달려왔다. 그래도 운 좋게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만 있어서 건강하게 한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고 웃었다. 이어 “200삼진이 대기록임을 알게 돼 직접 허문회 감독님을 찾아가서 한 차례 더 던지겠다고 했다. 감독님께선 고맙게도 이를 승낙해주셨다. 오늘 긴장이 많이 됐지만, 그래도 200삼진을 달성한 뒤로는 편하게 던졌다”고 말했다.

▲ 덕아웃에서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스트레일리. ⓒ롯데 자이언츠
한국에서의 추억도 떠올렸다. 스트레일리는 “롯데에선 한 가지를 꼽기 힘들 정도로 추억이 많았다. 야구선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도 좋았고, KBO리그도 좋았고, 롯데도 좋았다. 좋은 야구선수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와 관련해선 “최대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한국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특히 냉면류가 맛있었다”고 해맑게 웃었다.

롯데 외국인투수 역사상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스트레일리. 이제 관심사는 내년에도 롯데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느냐다. 민감할 수도 있는 내용과 관련해선 스트레일리는 말을 아꼈다.

스트레일리는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이들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부인과 3살짜리 아들이다”면서 “올 시즌 마무리를 잘해서 자랑스럽다. 다만 향후 계획은 미정이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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