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사실상 신인왕을 확정지은 소형준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이강철 kt 감독은 올해 2월 미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열린 스프링캠프 첫 소감에서 이색적인 칭찬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감독은 팀의 1차 지명을 받은 고졸 신인 소형준(19)의 첫 투구에 감탄했다. KBO리그의 전설적 투수 출신 이 감독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형준의 첫 투구를 보고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이상의 칭찬은 있기 힘들었다.

보도 자료에 담긴 문구를 보며 처음에는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선수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자조차 “아무리 그래도 고졸 신인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2월 중순, 투산에서 이 감독을 직접 만나 다짜고짜 당시의 평가를 꺼내들었다.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냐”는 농담에 이 감독은 “내일 피칭을 하니 김 기자도 직접 한 번 보라”고 웃으며 맞받았다. 그러면서 “올해 5선발은 소형준”이라고 못 박았다. 

그게 2월 말이었다. 아무리 완성도가 뛰어난 즉시전력 신인이라고 해도, 본격적인 시범경기 경쟁이 들어가기도 전에 한 자리를 주겠다는 구상이 확고하게 선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감독의 눈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kt의 ‘신입 마법사’는 가을로 가는 주문을 알고 있었다. 올해 신인왕 트로피에 이미 이름이 적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소형준은 24일까지 시즌 24경기에서 125⅔이닝을 던지며 12승6패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 중이다. 입단 첫 해부터 구단과 리그 역사에 이름을 굵게 새겼다. kt 역사상 국내 선수 최다승 기록은 작년의 배제성(10승)이 가지고 있었다. 소형준이 1년 만에 이를 뛰어넘었다. 고졸 신인으로 선발 10승을 따낸 건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2006년 류현진(당시 한화) 이후 처음이다. 

그것도 운 좋게 12승을 거둔 게 아니었다. 시즌 초반 다소 고전하기는 했으나 중반 이후 대활약했다. 후반기 12경기에서는 7승1패 평균자책점 2.80이다. 웬만한 외국인 선수보다도 성적이 더 좋다. 이 기간 61경기에서 262타자를 상대하면서 피홈런은 ‘0’이다. 이 감독은 “커맨드가 좋다. 그게 비결”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한 제구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다. 완급조절도 뛰어나다. 그냥 ‘최대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소형준을 이끈 또 하나의 마법사가 있다. 바로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33)다. 소형준은 “데스파이네는 경기 운영과 완급 조절이 뛰어나다.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배울 게 많다”고 말한다. 여기에 강철 체력이다. ‘4일 휴식 후 등판’을 선호한다. 덕분에 소형준은 추가 휴식일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감독도 소형준의 이닝을 관리하기 위해 ‘데스파이네 찬스’를 잘 써먹었다. 소형준이 방전되지 않고 끝까지 온 건, 데스파이네도 일정 지분이 있는 셈이다.

▲ 리그 유일의 200이닝 소화자로 kt 구단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운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 ⓒ한희재 기자
사실 데스파이네 영입에도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kt는 지난해 동반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윌리엄 쿠에바스와 라울 알칸타라 중 쿠에바스만 재계약하기로 했다. 알칸타라의 강속구가 아쉬웠지만, 더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에이스급 선수가 필요하다고 봤다. 레이더에 데스파이네가 걸렸고 알칸타라를 포기했다. 이 감독은 가오슝 마무리캠프 당시 데스파이네의 에이스 기질에 높은 점수를 줬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200이닝’을 던져 줄지는 몰랐다. 4일 휴식 후 등판 계획은 전혀 없을 때였다. 시즌 중반만 해도 “끝까지 갈까?”는 의구심이 있었다. 이 감독도 조마조마였다. 아마 끝까지 갈 것이라 기대는 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체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데스파이네는 33경기에서 202이닝을 던졌다. 올 시즌 KBO리그 유일의 200이닝 투수가 확실시된다. 여기에 15승을 거뒀다. 이는 kt 구단 최다승 역사를 싹 갈아치웠다.

올 시즌 kt의 선발 로테이션은 생각보다 부침이 심했다. 쿠에바스는 부상으로 20일 정도 빠진 기억이 있다. 배제성의 투구 내용은 지난해만은 못했다. 김민은 팀의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고 흔들렸다. 시즌 막판에는 이대은을 앞세워 불펜데이만 세 번했다. 

그럼에도 팀 선발진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데스파이네와 소형준의 공이 컸다. 데스파이네는 선발투수의 투입을 최소화했고, 지난해 없던 전력인 소형준은 팀에 10승 이상의 ‘추가 승수’를 안겨줬다. 각각 팀 역사를 바꾼 두 신입 마법사의 주문이 첫 가을을 만들어냈다. kt는 남다른 기질을 가진 두 선수가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에서도 힘을 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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