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백호의 1루 전향 양보는 올 시즌 kt 타선 구상의 마지막 퍼즐이 됐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지난해 11월 대만 가오슝 마무리캠프 당시 이강철 kt 감독은 올해 야수진 구상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 시행착오를 통해 어느 정도 틀은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고민도 있었다.

포수 장성우, 2루 박경수, 유격수 심우준, 3루수 황재균의 내야는 확정적이었다. 백업을 채우는 게 관건이었다. 외야에는 멜 로하스 주니어, 강백호가 부동의 주전이었다. 여기에 출루율이 좋은 조용호, 빠른 발을 갖춘 김민혁이 대기 중이었다. 이들은 좌타자고 발이 빠르다는 점에서 이 감독의 야구에 필요한 선수들이었다. 지명타자 자리에는 베테랑 유한준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감독은 선수 하나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바로 배정대(25)였다. 팀 최고 유망주 중 하나였던 배정대는 지난해 가오슝 마무리캠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원래부터 수비와 주루는 1군에서도 최정상급이었다. 문제는 타격이었다. 그런데 코치들의 지도와 선수의 열정이 모여 타구속도 등 방망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까지 구상에서 자리가 없었다. 당시 이 감독은 “겨울에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감독은 투산 스프링캠프에서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다. 배정대를 쓰기로 했다. 안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야에서 누군가 한 명이 자리를 내줘야 했는데 따져봐도 다 아까웠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다음, 이 감독은 또 하나의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 투산 캠프 당시까지만 해도 하나의 ‘비상시 구상’ 정도였던 강백호의 1루 전향이었다. 사실 구단 담당기자들도 깜짝 놀랐던 일이었다.

kt는 지난해 내내 1루 문제를 풀지 못했다. 오태곤 문상철이 번갈아가며 기회를 얻었지만, 이 '타격의 포지션'에서 누구 하나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대수비로는 중앙 내야수 자원인 박승욱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이 감독은 지난해 2차 드래프트 당시 한 1루수에 관심을 보였으나 다른 팀에서 영입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강백호를 1루로 돌리면 이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강백호의 1루 전향은 배정대를 살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강백호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 이 감독은 강백호의 수비 부담을 조금은 줄여주길 바랐다. 타격에 전념하면 더 좋은 공격 생산력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였다. 내심 ‘당시까지만 해도’ 예정되어 있었던 올림픽을 내다보기도 했다. 이 감독은 “대표팀 1루수가 세대교체를 할 때”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반면 외야는 더 치열하다고 봤다. 대표팀 경쟁력을 만들어주기 위한 뜻도 있었다. 현실적으로 병역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 공수주 모두에서 대활약을 펼친 배정대는 kt 올해의 발견이다 ⓒ곽혜미 기자
문제는 강백호가 포지션 전향을 받아들이느냐는 것, 그리고 낯선 포지션에서 잘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감독이 말을 꺼냈고, 강백호도 고민 끝에 이 제안을 받았다. 시즌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포지션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자존심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 사실 제안 자체도 신중했다는 후문이다. 이 감독도 강백호가 아니라고 하면 구상을 접을 생각이었다. 시간도 촉박했다.

그러나 강백호는 팀의 구상을 이해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1루수를 해본 적이 있다”고 오히려 이 감독을 안심시켰다. 수비 맹훈련도 이어 갔다. 야구 천재답게 한동안 서지 않은 자리에도 금세 적응했다. 이처럼 팀을 위한 강백호의 희생과 양보는 kt의 공격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FA급 효과’로 나타났다. 강백호도 살고, 배정대도 살고, kt도 살았다. 

강백호는 24일까지 시즌 124경기에서 타율 0.324, 22홈런, 82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40을 기록 중이다. 초반 득점권에서의 문제가 있었으나 조금씩 극복하며 팀의 4번 자리를 지켰다. 타율은 지난해보다 소폭 떨어졌으나 장타율이 크게 오르며 전반적인 공격 생산력이 좋아졌다. 고졸 3년차 홈런 기록도 경신했다. 올림픽은 없었지만, 이 감독의 생각대로 리그에서 가장 '공격 생산력이 뛰어난 1루수'가 됐다. 

자리가 생긴 배정대도 펄펄 날았다. 팀의 주전 중견수로 시즌을 시작해 139경기에서 타율 0.287, 13홈런, 64타점, 21도루, OPS 0.788을 기록했다. 시즌 막판 체력적 문제로 성적이 다소 떨어졌지만, 이대로 시즌이 끝난다고 해도 중견수 자리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하다. 이 숫자에 나타나지 않은 수비는 리그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언제든지 장타를 터뜨릴 수 있는 능력에 뛸 수 있는 선수이니 모든 지도자들이 좋아할 유형이다.

단순히 올 시즌의 문제가 아닌, 이 결정은 장기적으로도 kt 야수진의 틀을 잡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강백호 심우준 배정대로 이어지는 확실한 중심축이 생겼다. 이들은 모두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다. 향후 kt의 미래를 오랜 기간 책임질 만한 자원들이다. 첫 가을을 경험하면서 더 성장하는 모습들도 기대할 수 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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