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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야구여행]박용택, 10가지 이별이야기 #9.인연택

네이버구독_201006 이재국 기자 keystone@spotvnews.co.kr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 젊은 시절의 박용택. 이때만 해도 한국의 안타왕이 될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LG 트윈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넌 틀림없이 좋은 타자가 될 거다. 내가 장담한다.”

2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만남. 선배는 이별을 예감한 것일까. 주섬주섬 짐을 챙기면서 룸메이트 신인 후배에게 덕담 한마디를 툭 건넸다.

“이거 다 가져라.”

선배는 자신의 분신 같은 야구 도구들을 아낌없이 선물했다. 고가의 나무배트는 물론 2㎏이 넘는 연습용 방망이와 수십 켤레의 배팅장갑까지….

선배는 글러브 하나 달랑 챙겨서 문을 나섰고, 후배는 떠나는 선배의 태산 같은 등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프로 첫 룸메이트와 인연의 연결 고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2001년 11월 일본 오키나와 LG 마무리캠프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배는 1993년 삼성에 데뷔해 1999시즌을 앞두고 해태로 트레이드됐다. 그리고 2000년 LG로 트레이드된 뒤 2001년 LG에서 0.355의 고타율로 프로 네 번째 타격왕에 올랐다. 선배는 바로 ‘타격의 신’ 양준혁(51·현 MBC 스포츠+ 해설위원)이고, 후배는 LG 우선지명을 받고 마무리캠프에 참가한 고려대 4학년 유망주 신인타자 박용택(41)이다.

양준혁이 LG의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 참가했다가 부랴부랴 귀국 길에 오른 것은 갑자기 프리에이전트(FA) 취득 기간이 10년에서 9년으로 단축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프로 데뷔 후 9시즌을 채운 양준혁은 곧바로 FA 신청을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결국 4년 27억2000만원이라는 당시 최고 대우 속에 친정팀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다.

▲ LG 박용택이 2018년 6월 23일 개인통산 2019호 안타를 때리면서 양준혁의 전설을 넘어섰다. 박용택이 양준혁 앞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힐 이유가 있었다. ⓒ한희재 기자

2018년 6월 23일 잠실구장. 1회 말 2루타, 4회 말 2루타. 박용택은 2318호와 2319호 안타를 차례로 만들면서 태산 같았던 선배를 뛰어넘었다.

지는 꽃이 피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양준혁은 이날 잠실구장을 찾아 역사의 새로운 주인공이 된 후배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 박용택은 양준혁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굽혀 예를 다했다.

“오키나와 캠프에서 첫 룸메이트로 인연을 맺었던 양준혁 선배가 준 선물 중에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게 있어요. 2㎏이 넘는 연습용 방망이죠. 가끔씩 타격이 안 될 때 그 무거운 배트를 휘두르면서 기를 받곤 했어요. 신인 때는 주전이 목표였지만 사실 특별한 목표 없이 앞만 보고 달렸어요. 그런데 두 번째 FA가 되는 순간 제 야구 인생의 1차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양준혁 선배의 안타(2318안타) 기록이었습니다. 선배는 당시 무심코 한 말이었는지 모르지만, 캠프를 떠나면서 제게 ‘좋은 타자가 될 거다’라고 해주신 그 한마디는 큰 용기를 심어줬어요. 그날 선배께서 직접 축하하러 잠실구장에 오셨는데 제가 선배 앞에서 선배의 기록을 넘어섰으니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 양준혁(왼쪽) 해설위원이 자신의 안타 기록을 넘어선 LG 박용택에게 축하를 하고 있다. ⓒ한희재 기자
세월은 바람개비처럼 돌았고, 양준혁의 전설도 역사의 저편으로 바람처럼 밀려났다. 명창이 후계자를 한눈에 알아보듯, 후배는 선배의 장담처럼 ‘틀림없이 좋은 타자’가 됐고, 프로 첫 룸메이트 인연을 맺은 태산 같았던 선배를 마침내 뛰어넘어 KBO리그 안타왕으로 우뚝 섰다.

양준혁은 “내 안타 기록이 영원불멸의 기록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난 하나의 다리가 돼 준 걸로 만족한다”며 “마무리캠프 때 잠시 인연을 맺었지만 당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 훈련하는 것을 보고 첫눈에 좋은 타자라는 것을 느꼈다. 박용택 역시 앞으로 누군가에게 목표가 되고 다리가 돼주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박용택은 2020년 10월 6일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통산 2500안타 이정표를 세웠다. 박용택이 놓아준 다리를 딛고 넘어설 후배는 누구일까.

사람의 인연이란…. 그리고 운명이란….

#박용택 #엘지트윈스 #안타왕 #은퇴 #이별이야기

<10편에서 계속>

▲ LG 박용택이 개인통산 2500안타를 기록하자 잠실구장 전광판에서 이를 축하하고 있다. ⓒ곽혜미 기자
■ '안타왕' 박용택, 10가지 이별이야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 공평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에게 또 한 명의 레전드와 작별을 강요하고 있다. 2002년 데뷔해 2020년까지 줄무늬 유니폼 하나만을 입고 19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LG 트윈스 박용택(41). 수많은 기록과 추억을 뒤로 한 채 그는 약속대로 곧 우리 곁을 떠난다. 이제 선수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를 그냥 떠나 보내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허전하다. ‘한국의 안타왕’ 박용택이 걸어온 길을 별명에 빗대 은퇴 전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은 2018년 월간중앙 기고문과 기자의 SNS에 올린 글을 현 시점에 맞게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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