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에 한자로 용 용(龍) 자가 들어가 있잖아요. 그래서 MBC 청룡(靑龍) 팬이 됐어요. 서울팀이기도 했고 더더욱 끌렸습니다.”
박용택은 “LG 트윈스는 운명과 같다”고 했다. 오로지 한 팀만을 바라봤고, 한 팀만을 응원했고, 한 팀만을 위해 뛰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공교롭게도 1990년은 제가 처음 야구를 시작한 해입니다. 고명초등학교 5학년 때였죠. 그런데 그해 LG가 MBC 청룡을 인수했잖아요. 그리고 곧바로 첫 우승을 했죠. 저도 LG 팬이었지만 당시 제 주위 친구들은 다 LG 팬이었어요.”
고교 졸업반 때 LG와 OB가 번갈아 고졸 우선순위 선수 3명을 뽑았는데 LG가 때마침 그해 우선순위 차례였다. 앞서 소개했듯 LG는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고졸 우선순위로 휘문고의 박용택, 신일고의 안치용, 배명고의 정현택을 선택했고, 박용택은 고려대로 진학한 뒤 4년 후 마침내 LG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LG가 저를 선택해줬어요. LG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저는 그 꿈을 이뤘습니다. 야구를 하고 싶었던 팀에서 그 팀 유니폼만을 입고 이렇게 오래 야구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겠죠? 그런 면에서 저는 복 받았어요. 그런데, 그런데, 우승을 해야 하는데….”
‘울보택’은 “우승”을 입에 올리는 순간 다시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선수 인생의 모래시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승에 대한 간절함의 크기는 더 커지고 있다.박용택은 10월 28일 잠실 한화전 5회말 2사 1·2루에서 정주현 대타로 타석에 나섰다. 2020시즌 정규시즌 잠실구장 마지막 경기, 마지막 타석. 어쩌면 이제 다시 못 설 잠실구장 왼쪽 타석인지도 모른다.LG 팬들은 아직 이별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인지, “LG 트윈스엔 아직 박용택이 있습니다”라는 응원 문구를 써서 응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쉽게 2루수 앞 땅볼.
박용택은 헬멧을 벗었다. 1루 관중석의 팬들을 향해 뒤돌아보며 인사를 했다. 아쉬운 눈빛. 그 눈빛 사이로 뭔가가 차올랐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뒤엉킨 사나이의 눈물이었다.
노송(김용수)도, 야생마(이상훈)도, 적토마(이병규)도 모두 떠났다. 26년 전 황홀했던 우승의 추억을 마지막으로 우승의 신바람이 멈춰버린 황량한 잠실벌. 박용택은 암흑기를 거쳐 마음 둘 곳 없는 LG 팬들의 휑한 가슴을 채워준 애틋한 이름인지 모른다.안타택, 찬물택, 용암택, 꾸준택, 울보택, 메쌀(몇살)택, 코털택, 연탄택, 유광택, 세면택, 기록택, 역사택, 전설택, 팬덕택….
원래 별명은 ‘쿨가이’였으나 언제부터인지 ‘별명택’이 됐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수많은 별명들은 바로 박용택이 지나온 발자취이자 역사를 의미한다.
엘지택의 완결판은 ‘우승택’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줄무늬 유니폼의 심장, 엘지바보 '바보택'의 마지막 바람이다.
#박용택 #엘지트윈스 #안타왕 #은퇴 #이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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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화보택 (돌잔치부터 마지막 시즌 홈 고별전까지)
■ '안타왕' 박용택, 10가지 이별이야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 공평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에게 또 한 명의 레전드와 작별을 강요하고 있다. 2002년 데뷔해 2020년까지 줄무늬 유니폼 하나만을 입고 19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LG 트윈스 박용택(41). 수많은 기록과 추억을 뒤로 한 채 그는 약속대로 곧 우리 곁을 떠난다. 이제 선수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를 그냥 떠나 보내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허전하다. ‘한국의 안타왕’ 박용택이 걸어온 길을 별명에 빗대 은퇴 전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은 2018년 월간중앙 기고문과 기자의 SNS에 올린 글을 현 시점에 맞게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1편부터 10편까지 '박용택 이별이야기' 연재물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