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택의 어린 시절 모습. 이름에 '용 용(龍)' 자가 들어가 MBC 청룡 팬이 됐다. 청룡 유니폼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LG가 청룡을 인수한 1990년에 야구를 시작한 뒤 결국 LG에 입단해 LG에서 은퇴하는 '원 클럽 맨'이 됐다. ⓒ박용택 제공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제 이름에 한자로 용 용(龍) 자가 들어가 있잖아요. 그래서 MBC 청룡(靑龍) 팬이 됐어요. 서울팀이기도 했고 더더욱 끌렸습니다.”

박용택은 “LG 트윈스는 운명과 같다”고 했다. 오로지 한 팀만을 바라봤고, 한 팀만을 응원했고, 한 팀만을 위해 뛰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공교롭게도 1990년은 제가 처음 야구를 시작한 해입니다. 고명초등학교 5학년 때였죠. 그런데 그해 LG가 MBC 청룡을 인수했잖아요. 그리고 곧바로 첫 우승을 했죠. 저도 LG 팬이었지만 당시 제 주위 친구들은 다 LG 팬이었어요.”

▲ 고명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을 당시 모습. 원래 오른손잡이인 박용택은 처음엔 우투우타였다. 빠른 발을 활용하기 위해 첫 지도자 최재호 감독(현 강릉고 감독)이 우투좌타를 권유했다. ⓒ박용택 제공
고교 졸업반 때 LG와 OB가 번갈아 고졸 우선순위 선수 3명을 뽑았는데 LG가 때마침 그해 우선순위 차례였다. 앞서 소개했듯 LG는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고졸 우선순위로 휘문고의 박용택, 신일고의 안치용, 배명고의 정현택을 선택했고, 박용택은 고려대로 진학한 뒤 4년 후 마침내 LG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LG가 저를 선택해줬어요. LG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저는 그 꿈을 이뤘습니다. 야구를 하고 싶었던 팀에서 그 팀 유니폼만을 입고 이렇게 오래 야구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겠죠? 그런 면에서 저는 복 받았어요. 그런데, 그런데, 우승을 해야 하는데….”

‘울보택’은 “우승”을 입에 올리는 순간 다시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선수 인생의 모래시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승에 대한 간절함의 크기는 더 커지고 있다.

▲ 사나이도 때론 눈물을 흘린다. 박용택은 유난히 눈물이 많아 '눈물택', '울보택'으로 불린다. ⓒ한희재 기자
박용택은 10월 28일 잠실 한화전 5회말 2사 1·2루에서 정주현 대타로 타석에 나섰다. 2020시즌 정규시즌 잠실구장 마지막 경기, 마지막 타석. 어쩌면 이제 다시 못 설 잠실구장 왼쪽 타석인지도 모른다.

LG 팬들은 아직 이별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인지, “LG 트윈스엔 아직 박용택이 있습니다”라는 응원 문구를 써서 응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쉽게 2루수 앞 땅볼.

박용택은 헬멧을 벗었다. 1루 관중석의 팬들을 향해 뒤돌아보며 인사를 했다. 아쉬운 눈빛. 그 눈빛 사이로 뭔가가 차올랐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뒤엉킨 사나이의 눈물이었다.

▲ 2020년 10월 28일 잠실 한화-LG전. LG 박용택의 정규시즌 홈 고별전 마지막 타석의 모습이다. ⓒ한희재 기자
▲ 박용택이 28일 정규시즌 잠실 홈 고별전인 한화전 5회에 대타로 나서 2루수 앞 땅볼로 물러난 뒤 헬멧을 벗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감정이 울컥했는지, 눈빛 사이로 눈물이 비쳤다. ⓒ한희재 기자
노송(김용수)도, 야생마(이상훈)도, 적토마(이병규)도 모두 떠났다. 26년 전 황홀했던 우승의 추억을 마지막으로 우승의 신바람이 멈춰버린 황량한 잠실벌. 박용택은 암흑기를 거쳐 마음 둘 곳 없는 LG 팬들의 휑한 가슴을 채워준 애틋한 이름인지 모른다.

안타택, 찬물택, 용암택, 꾸준택, 울보택, 메쌀(몇살)택, 코털택, 연탄택, 유광택, 세면택, 기록택, 역사택, 전설택, 팬덕택….

원래 별명은 ‘쿨가이’였으나 언제부터인지 ‘별명택’이 됐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수많은 별명들은 바로 박용택이 지나온 발자취이자 역사를 의미한다.

엘지택의 완결판은 ‘우승택’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줄무늬 유니폼의 심장, 엘지바보 '바보택'의 마지막 바람이다.

#박용택 #엘지트윈스 #안타왕 #은퇴 #이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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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화보택 (돌잔치부터 마지막 시즌 홈 고별전까지)

▲ 박용택 돌잔치 때 모습 ⓒ박용택 제공
▲ 몇살택? 박용택의 어린 시절 얼굴이 귀엽다 ⓒ박용택 제공
▲ 보이스카웃 시절. 사진에 1990년 4월 20일이 찍혀 있다. 박용택은 고명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0년 6월 3일에 야구를 시작했으니 최재호 감독이 달리기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던 박용택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야구를 권유하던 시기다. ⓒ박용택 제공
▲ 박용택은 어렸을 때 키도 크고 공부도 잘했다. 어머니는 그래서 공부를 하기를 바랐고, 농구선수 출신 아버지는 아들이 운동을 한다면 농구를 하기를 원했다. ⓒ박용택 제공
▲ 박용택(7번)은 야구를 시작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야구 입문 이듬해인 1991년 초등학교 6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뒤로 손지환, 이재영, 현재윤 등이 보인다. ⓒ박용택 제공
▲ 초등학교 6학년 때 키인데 상당히 크다. 박용택은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지금의 키"라고 말한다. ⓒ박용택 제공
▲ 휘문고 시절 ⓒ박용택 제공
▲ 고려대 시절 국가대표 때 모습 ⓒ박용택 제공
▲ 같은 1979년생이지만 '빠른 79'로 1년 선배인 김병현과 함께 ⓒ박용택 제공
▲ 박용택 프로 초창기 모습 ⓒLG 트윈스
▲ 박용택의 프로 초창기 모습 ⓒLG 트윈스
▲ 젊은 시절 절친한 선배 이병규와 함께 ⓒLG 트윈스
▲ 박용택과 이병규와 함께 찍은 화보 ⓒLG 트윈스
▲ 후배들과 마지막 시즌. 박용택, 김현수, 채은성(왼쪽부터). ⓒLG 트윈스
▲ 2009년 골든글러브 시상식 ⓒLG 트윈스
▲ 2017년 골든글러브 시상식 ⓒ곽혜미 기자
▲ 탈춤택. 2020년 9월 3일 잠실 NC전에서 역전 3점홈런을 친 뒤 덕아웃에서 후배들의 축하 속에 탈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다. 개인통산 213호 홈런으로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홈런이 될지도 모른다. ⓒ곽혜미 기자
▲ 2020년 10월 6일 잠실 삼성전 9회에 KBO 최초 개인통산 2500안타를 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곽혜미 기자

▲ 한국의 안타왕 박용택의 아름다운 스윙. 이제 이별의 모레시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 포스트시즌이 남아 있지만 '엘지택'의 이 스윙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LG 트윈스

▲ 2020년 10월 28일 잠실 한화전 5회말 타격을 하고 있다. 박용택의 야구인생에서 정규시즌 홈경기 마지막 타격 모습이다. ⓒ한희재 기자
▲ 언제나 응원을 보내주는 LG 팬들은 박용택이 안타왕에 오르는 데 가장 큰 힘이었다. ⓒ한희재 기자
▲ 안녕택. 박용택이 2020년 10월 28일 정규시즌 홈 최종전인 잠실 한화전 종료 후 팬들에게 인사말을 전한 뒤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하고 있다. 굿바이 박용택! ⓒ한희재 기자

■ '안타왕' 박용택, 10가지 이별이야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 공평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에게 또 한 명의 레전드와 작별을 강요하고 있다. 2002년 데뷔해 2020년까지 줄무늬 유니폼 하나만을 입고 19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LG 트윈스 박용택(41). 수많은 기록과 추억을 뒤로 한 채 그는 약속대로 곧 우리 곁을 떠난다. 이제 선수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를 그냥 떠나 보내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허전하다. ‘한국의 안타왕’ 박용택이 걸어온 길을 별명에 빗대 은퇴 전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은 2018년 월간중앙 기고문과 기자의 SNS에 올린 글을 현 시점에 맞게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1편부터 10편까지 '박용택 이별이야기' 연재물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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