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대표팀 시절 디에고 마라도나

[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아르헨티나가 낳은 불세출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한국시간) 심장마비로 60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마라도나는 지난 3일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받고 11일 뒤 퇴원해 통원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었다.

마라도나는 1960년 10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남 4녀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있는 판자촌이었다. 휴고와 라울이라는 남동생 두 명이 있는데 그들 또한 모두 프로 축구 선수다.

마라도나는 축구에서 재능을 보였다. 빈민가에 뛰어난 축구 실력을 가진 어린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지역 내에서 돌았고 아르헨티노스 주니오스라는 프로 팀이 11살이던 마라도나를 영입했다. 유스 시절부터 두각을 보였던 마라도나의 뛰어난 실력에 구단은 아파트를 선물하는 등 지극정성을 쏟았다. 이는 마라도나가 축구로 성공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

마라도나의 프로 데뷔전은 15살에 이루어졌다. 16살 생일을 열흘 앞둔 10월 20일 16번 등번호를 달고 탈레레스 데 코르도바와 경기에 출전했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역사상 최연소 선수였다. 역사가 이루어진 지 불과 몇 분 만에 마라도나는 후안 도밍고 카브레라의 다리 사이로 공을 뺐는데 사람들은 이를 전설적인 '육두구(nutmeg)'라고 명명했다.

마라도나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아르헨티노스에서 167경기에서 115골을 기록했다. 리버 플레이트를 비롯한 여러 아르헨티나 구단이 마라도나를 노렸고 마라다노는 자신이 뛰고 싶었던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을 결심했다. 이적료는 400만 달러였다.

1981년 2월 2일 보카주니어스와 사인하고 이틀 뒤 마라도나는 새로운 팀에서 데뷔전을 치렀는데 공교롭게도 프로 데뷔전 상대였던 탈레레스였다.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2골을 터뜨렸다.

1년 뒤 마라도나는 스페인 최고 명문 구단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면서 유럽 생활을 시작했다. 이적료는 500만 파운드로 당시 최고 금액이었다.

마라도나는 바르셀로나에서 2시즌,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7시즌을 보냈고 1992-93시즌 스페인 세비야에서 1시즌을 보낸 뒤 1993-94시즌 아르헨티나 뉴웰스 올드보이스로 향했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금지약물 양성반응에 대한 징계로 한 시즌을 못 뛰었다가, 자신의 고향 팀인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가 3시즌을 보낸 뒤 은퇴했다. 클롭 통산 기록은 588경기 312골.

마라도나의 위상은 대표팀에서 더욱 빛났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선 서독과 결승전 승리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잉글랜드 수비수들을 제치고 41m를 단독 질주하며 넣은 전설적인 골이 이 대회에서 나왔다.

마라도나의 시대는 1994년 미국 월드컵을 기점으로 저물었다. 마라도나는 대회 도중 도핑 테스트에 적발 돼 대표팀에서 하차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이후 약물 중독으로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사흘 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시신을 대통령 궁에 안치하겠다고 밝혔다.

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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