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현철 기자] 메이저리그가 아시아 타자들에게 문을 연 이래 타격만 잘해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게 한 전례는 거의 없다. '거포'보다 '다재다능한' 5툴 플레이어에 가까운 선수를 원했고 실제로도 그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와서 변신을 했다. 발이 빠르거나 아니면 수비로 다양한 포지션을 맡을 수 있어야 했다. '타격 기계' 김현수(27)의 볼티모어 오리올스행. 이는 타격만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

MLB.com은 24일(이하 한국 시간) “김현수가 볼티모어의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해 2년 700만 달러 계약이 확정됐”고 밝혔다. 일찌감치 볼티모어와 몸값 협상을 합의한 김현수는 18일 메디컬 테스트 등 입단 절차를 밟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FA(프리에이전트) 신분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김현수에 대해 샌디에이고, 피츠버그, 오클랜드 등도 관심을 보였으나 김현수의 선택은 바로 볼티모어였다.

포스팅 시스템으로 미네소타 입단에 성공한 박병호와 달리 김현수는 FA(프리에이전트)라는 점에서 메이저리그 구단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이저리그와 일본 구단 스카우트들은 2009년부터 김현수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는 김현수의 타격 변화상과 수비 발전 등까지 폭넓게 지켜봤기 때문이다. 한화 시절 류현진(LA 다저스), 볼티모어를 먼저 경험했던 윤석민(KIA) 등에 비해 관심은 적었을 지 몰라도 국제 대회와 KBO 리그 경기력으로 김현수의 존재를 일찌감치 파악했다.

김현수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정확한 타격. 9시즌 통산 0.318의 타율을 자랑했으며 올해는 63개의 삼진을 당하는 동안 101개의 볼넷을 얻었다. 정확성과 선구안을 모두 높게 평가 받았다.. 김현수의 볼티모어행을 가장 먼저 보도한 '볼티모어 선' 댄 코널리 기자는 “김현수는 1번 타자로 써도 될 정도로 좋은 출루 능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볼티모어가 단순히 김현수의 방망이만 본 것은 아니다. 김현수의 일취월장한 좌익수 수비도 한몫했다. MLB.com은 지난 17일 김현수와 볼티모어의 2년 계약 합의를 보도하며 김현수의 활약 영상을 준비했는데 2013년 3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에서 다이빙캐치는 물론 네덜란드전에서 앤드류 존스를 홈 송구로 잡는 영상 등을 첨부했다.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강한 어깨는 아니지만 송구 정확도가 좋다는 점을 보여 준 대목이다.

2010~2012년 시즌 롯데에서 외국인 투수로 활약했던 라이언 사도스키 롯데 코치는 김현수에 대해 “강한 송구는 아니지만 정확하다”며 김현수의 송구 능력을 평했다. 고교 시절 1루수가 본업이었으나 프로 데뷔 후 좌익수로 대부분을 출장했던 김현수는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수비를 펼쳤다.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도 김현수가 '슈퍼 캐치'로 상대 기세를 꺾은 장면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진영(kt)이 '국민 우익수'로 불렸던 것처럼 김현수를 '국민 좌익수'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수비력이 뛰어나다.

아시아 야구와 달리 메이저리그는 외야 세 포지션을 다르게 생각한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은 왼손 타자보다 오른손 타자가 많아 오른손 타자가 당겨치는 타구가 꽤 많다. 외야로 가는 가장 많은 타구가 좌익수 쪽인 만큼 낙구 지점 포착 능력 및 괜찮은 송구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김현수는 이 부문에서 합격점을 얻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김현수가 1루수를 같이 볼 수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프리미어12가 한창이던 11월 강정호의 소속팀이자 김현수의 종착지 후보 가운데 한 팀인 피츠버그는 '김현수가 1루수로도 뛸 수 있는가'라고 문의한 바 있다. 올 시즌 피츠버그 주전 1루수였던 페드로 알바레스의 수비는 한국의 야구 팬들도 익히 알고 있다. 김현수는 주전 좌익수로 출장하는 가운데서도 1루 수비에도 나서며 수비 감각을 유지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김현수에게 타격만 기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던 아시아 야수들을 보면 한 부문에 특화된 선수를 뽑은 예는 없다. '안타 제조기'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도 오릭스 시절에는 한 시즌 20홈런 이상을 쳤을 정도로 장타력도 과시한 5툴 플레이어였다. 아오키 노리치카(시애틀)도 마찬가지이며 빅리그 유격수로는 성공하지 못했던 마쓰이 가즈오(라쿠텐)도 공수주를 모두 갖춘 유격수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강정호(피츠버그)가 1년 전 500만 2,015달러, 박병호가 1,285만 달러의 포스팅 시스템 입찰금을 제시 받았던 데는 장타력도 있으나 2012년 나란히 20홈런-20도루에 성공하며 호타준족 면모를 뽐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김현수는 20-20 클럽이었던 적이 없으나 대신 좋은 좌익수 수비를 자랑했다. '타격 기계'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는 방망이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영상] 2013년 WBC에서 앤드류 존스를 잡은 김현수의 송구 ⓒ 영상편집 송경택.

[사진] 김현수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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