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4대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정몽규 전 회장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정말 나올 사람이 없답니까?"

한국 축구계는 다사다난한 2020년을 보내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고 가장 약한 고리인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축구 역시 모든 경기가 멈춰 섰다가 무관중과 일부 유관중을 오가는 상황에서 일단 종료됐다.

대표팀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최상위 대표팀인 A대표팀은 11월 오스트리아 빈 원정 A매치를 치렀지만, 코로나19를 피하지 못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 예산을 들여 전세기를 보내 확진 판정을 받았던 선수들과 스태프를 수송했다. A대표팀이라는 국내 스포츠 마케팅 도구의 최정점에 있는 콘텐츠도 코로나19 앞에서는 무력했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2021년은 한국 축구가 새로운 환경에서 출발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구성원이 희생으로 2020년을 버텼다면 2021년에는 적어도 희망을 건지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

54대 회장 선거, 정몽규 전 회장의 출마 의사 외에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 출발선에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축구협회는 내년 1월6일 제54대 회장을 선출한다. 지난 2일 정몽규(58) 전 회장이 후보자등록의사표명서를 사무국에 제출했다. 오는 7일까지 다른 출마자들의 접수를 기다린다.
 
임직원이 임금 일부를 삭감할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 메고 있는 축구협회는 새로운 리더와 함께 코로나19 시대를 극복해야 한다. 정 회장의 표명서 제출은 그가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이다. '가족이 출마를 말린다', '정 회장도 축구협회장에 미련이 없다'는 등의 소문이 축구계를 뒤덮었지만, 결론은 출마였다. 새로운 회장 선임 전까지 조병득 부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맡는다.

정 회장의 출마 자격은 대한체육회가 열어줬다고 보는 것이 옳다. 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회원종목단체 임원은 한 차례 연임만 가능하다. 물론 예외 조항이 있다. 재정 기여, 주요 국제대회 성적이나 단체 평가 등 기여도가 확실하면 3선 도전이 가능하다. 지난 10월28일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정 회장과 더불어 최태원 대한핸드볼협회 회장 등의 3선 도전을 허용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시작한 정 회장은 2013년 1월 52대 회장 선거에 나서 어렵게 당선된 뒤 '통합'을 내걸었다. 2016년 7월에는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와 축구협회의 통합에 따라 선거인단 106명 중 참석한 98명의 만장일치로 53대 회장에 당선됐다.

자신이 내건 공약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것이 정 회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중앙 집권적'인 축구협회는 각 시도축구협회의 이해관계에 따라 터져 나오는 불만을 잠재우려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디비전 시스템을 일부 구축하며 완전한 승강제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수도권 이남의 한 지역 축구협회 임원은 "정 회장이 지역을 많이 돌아다니면서 의견을 청하고 도우려 애쓴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각 지역축구협회가 생존할 수 있는 당근을 제시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지역축구협회도 노력해야 하지만, 대축(대한축구협회의 줄임말)에서 진짜로 지역을 생각했는지 한 번 돌아보라"라고 지적했다.

▲ 정몽규 회장은 살아있는 전설 박지성을 유스전략본부장으로 선임했지만, 1년을 가지 못했다. ⓒ곽혜미 기자

공정위에서 3선 도전이 합당하다 평가받은 사유로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금메달이 있다. 또,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이 꼽힌다. 이는 정 회장의 3선 도전의 불쏘시개로 활용됐다.

반대로 정 회장은 지난해 4월 국제적인 지위를 잃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과 아시아 축구연맹(AFC) 부회장 연임에 실패했다.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낼 통로를 상실했다. 당선 가능성이 충분했었지만, 표심은 싸늘했다. 정몽준 명예회장 시절부터 지적됐던 '원톱 외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셈이다.

그렇지만, 성적지상주의가 국제 외교부실을 눌러 3선 도전 조건을 얻었다. 물론 국제대회 성적 안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반영 가능하지만, 정 회장 낙선은 분명 한국 축구 외교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있다. 중동의 오일머니와 중국의 '황사머니', 일본 특유의 치밀한 시스템 안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정 회장의 공과는 그가 정식 후보로 등록된 뒤에 (혹시 출마를 선언하는 다른 경쟁자와 함께) 더 구체적으로 따져도 된다. 지난 임기에서 내세웠던 공약 실천 여부를 정치인들이 선거 출마 시 내세워 유권자나 시민단체로부터 검증받는 매니페스토(manifesto)처럼 말이다.

▲ 대한체육회가 정몽규 회장의 3선 도전 길을 열어주게 만든 것은 국제대회 성과다. 사진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 직후 서울시청에서 열렸던 환영식. ⓒ한희재 기자

회장 자리 놓고 5파전 벌어지는 대한체육회와 극명하게 비교…부담스러워서?

다만, 정 회장과 경쟁할 후보가 과연 나오느냐에 궁금증이 생긴다. 축구협회 회장 선거 관리 규정에 따르면 의사표명서는 '회장을 포함한 비상임 임원이 후보자로 등록하고자 하는 경우 회장의 임기 만료일 전 50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또, 후보자 등록은 선거일 14일 전부터 3일간 선거관리위원회에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12월 23~25일 사이에는 후보자 등록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협회는 21~23일 사이에 등록을 받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현재까지 정 회장의 선거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 후보자 등록 전 표명서 제출이 사실상 출마를 의미하는 것이라 그렇다.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거론됐지만,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조광래 대구FC 대표이사는 대구 구단을 지키기에도 바쁘다. 차 전 감독 측 관계자는 "다른 일도 많아서 (출마를)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만약 정 회장 단독 출마일 경우 축구협회 수장은 두 번 연속 경쟁자 없이 사실상 추대 형식으로 선출하게 된다. 협회 선거 규정 28조 '회장 당선인의 결정방법 및 결정' 2항에 따라 '후보자가 1인인 경우, 선관위는 임원의 결격사유를 심사하고 하자가 없을 경우 그 1인을 투표 없이 당선인으로 결정한다'에 따른다. 즉 무투표 당선이라는 뜻이다. 체육회의 선거 규정 개정에 따라 심사로 당선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2013년 무려 4명의 후보(정몽규, 허승표, 윤상현, 김석한)가 2차 투표까지 갔던 치열함과 비교하면 너무 썰렁하다.  

상위 기관인 체육회와는 180도 분위기가 다르다. 체육회는 이기흥 현 회장부터 강신욱 단국대 교수,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원장, 유준상 대한요트협회 회장에 국회의원을 지냈던 장영달 우석대 총장까지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의미야 서로 다르지만, '개혁'을 내세웠고 땅에 떨어진 체육계 위상을 높이겠다며 경쟁 중이다.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경쟁 없는 축구협회장 선출은 단기적으로는 리더십 일관성이라는 점에서 다행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분야에서의 도전이나 투자를 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축구계는 '현대가(家)'가 이끈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또, 정 회장의 공과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절차적 정당성만 지키고 검증은 연속성을 이유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협회 고위 임원을 지냈던 B씨는 "정 회장에 대해 평가를 하기 전에 회장직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정말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몇몇 분이 거론됐었는데 그냥 소문인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코로나19 시대에 리더가 바뀌지 말라는 뜻이지만, 반대로 보면 축구계 다양한 목소리가 정 회장에게 닿기 어렵다는 이야기지 않나. 축구인들 입장에서는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한국 축구 전체를 이끄는 수장은 매력이 있는 자리일까 없는 자리일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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