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넷'의 크리스토퍼 놀란(오른쪽) 감독. 제공|워너브러더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2021년 개봉 예정작 모두를 OTT-극장 동시공개 하겠다는 워너브러더스의 선언 이후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는 코로나19팬데믹의 여파로 내년 개봉 예정인 영화 17편을 모두 자사 OTT서비스인 HBO맥스와 극장에서 동시 공개하겠다고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밝혔다. 워너브러더스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시즌 '원더우먼 1984'를 HBO맥스와 극장에서 동시 개봉키로 한 바 있다. 여기에 내년 개봉 예정작들이 모두 같은 길을 걷게 된 셈.

라인업은 대충 훑어도 엄청나다. 2003년 3편 이후 18년 만에 돌아오는 '매트릭스4'를 필두로 괴수 블록버스터 '고질라 대 콩', 히어로물 '수어사이드 스쿼드2', 공포물 '컨저링4', SF대작 '듄' 등이 포함됐다. 이밖에 극장판 '톰과 제리', '모탈 컴뱃', '유다 앤드 블랙 메시아', '주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 '인 더 하이츠', '레미니선스', '도즈 후 위시 미 데드', '스페이스 잼:어 뉴 레거시', '말리그넌트', '더 매니 세인트 오브 뉴욕', '크라이 마초', '킹 리차드' 등이다.

북미의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은 가운데, 라인업 전체를 OTT에 동시 서비스하겠다는 워너의 이같은 결정은 내년에도 정상적인 극장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워너브러더스는 제작비 2억 달러를 넘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을 지난 9월 북미에서 개봉했다가 57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쓴맛을 본 터다. '테넷'의 전세계 극장수입은 3억5000만 달러로 집계됐지만 마케팅 등 개봉에 쓴 비용을 따지면 막대한 손실이 됐다.

동시에 코로나19와 함께 대세 플랫폼으로 자리를 굳힌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을 염두에 두고 지난 5월 북미에 론칭한 OTT후발주자 HBO맥스에 힘을 싣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세계 가입자 2억 만명을 내다보는 막강한 1위 주자 넷플릭스, 코로나19를 타고 무섭게 성장해 가입자 7000만 명을 넘긴 디즈니플러스와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HBO맥스는 현재까지 가입자가 860만명으로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워너의 이번 결정과 함께 화제의 신작들, 1달 무료 서비스 등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가입자 확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파장은 컸다. 극장 중심의 영화 생태계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결정에 AMC 등 그렇지 않아도 막대한 손실에 시달리던 미국 대형 극장의 주식은 워너 발표 직후 일제히 폭락했다. 우려가 이어지자 워너 측은 "1년에 한해서"라며 "극장을 믿는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그 여파는 쉬 가시지 않고 있다.

▲ 출처|HBO맥스
7일에는 워너의 오랜 동반자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공개 비판에 나섰다. 열렬한 극장 옹호론자로 이름 높은 그는 미국 매체 할리우드리포터에 장문의 공개 서한을 보내 이번 조치가 모욕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놀란 감독은 "영화산업의 가장 중요한 필름메이커와 스타들은 위대한 영화 스튜디오와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전날 밤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 최악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일하게 됐다는 걸 깨닫게 됐다"면서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잃고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적으로도 타당하지 않고, 월가의 평범한 투자자들조차 붕괴와 기능장애(disruption and dysfunction)의 차이를 구분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놀란 감독은 워너브러더스가 이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고질라 대 콩' '듄'의 레전더리 픽쳐스와 OTT 서비스와 관련한 명확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인 더 하이츠'의 존 추 감독도 "충격을 받았다"고 언급하는 등 사전 합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워너의 이같은 결정은 한국 극장가, 영화계에도 연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극장 개봉이 주 수입원인 한국의 상황은 이미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관객이 크게 줄면서 극장 수입만으로 수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사냥의 시간'을 필두로 200억 대작 '승리호', 4대배급사 NEW의 '콜',극장체인을 지닌 롯데엔터의 '차인표' 등 한국영화 기대작들이 줄줄이 넷플릭스 행을 택했다. 

디즈니의 디즈니플러스, 워너의 HBO맥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은 탓에 디즈니플러스에서 독점 공개된 '뮬란' '소울'이 국내에선 극장에 걸리고, '원더우먼 1984'을 비롯한 워너의 대작들도 한국에선 극장에서 개봉할 전망. 허나 글로벌 OTT경쟁이 본격화된다면 극장은 더한 위기를 마주할 수 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연말 대작이 줄줄이 연내 개봉을 포기하고 하루 관객이 2만명 대로 주저앉은 12월의 초입, 극장가의 고민은 더 깊어져가고 있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