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기자회견에 나섰던 정조국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패트리어트' 정조국(36)은 2003년 안양LG를 통해 화려하게 등장했다. 2002년 아시아 청소년선수권대회(현 20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놀라운 활약으로 우승을 이끌었고 한국 축구 정통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상당히 컸다.

패기 넘치는 정조국은 2003년 3월23일 포항 스틸러스전을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다. 대기 명단이었지만, 뛰는 그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기대감과 달리 전남 드래곤즈, 전북 현대, 대구FC, 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전까지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골을 터뜨리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기와 불안감이 공존했던 정조국은 7번째 출전 경기였던 5월4일 부천SK(현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1-0으로 앞선 전반 6분 페널티킥 기회가 오자 키커였던 마에조노를 밀어내고 자신이 차겠다며 벤치에 신호를 보냈다.

껄걸 웃은 조광래 감독(현 대구FC 대표이사)은 '네가 차라'고 손짓했고 정조국은 키커로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마에조노는 이미 2분 만에 코너킥으로 이준영의 선제골에 도움을 기록하며 치고 나갔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조국은 12골을 넣으며 신인왕에 올랐다.  

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정조국은 K리그 통산 392경기에서 넣은 121골 중 가장 소중한 골로 부천전 페널티킥 골을 지목했다.

그는 "(소중했던 골은) 데뷔골이다. K리그 데뷔골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 정말 큰 기대를 받고 당차게 프로에 도전했는데 와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정말 어려웠다. 좋은 선수가 많았고 힘들었다. 10경기 넘게 골을 넣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회상했다.

제주의 전신 격인 부천전을 반등의 기회로 삼은 정조국이었다. 그는 "마에조노가 페널티킥 키커였는데 무조건 넣어야겠다 싶어서 벤치를 보면서 제가 차겠다고 했다. 그 골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라며 욕심을 낸 결과가 신인왕과 더불어 오래 뛰는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프로에서는 꽤 괜찮은 기록을 냈던 정조국이다. 외국인 공격수와 경쟁하면서 골을 넣기 위한 투쟁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10년 13골로 FC서울이 2004년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 이전을 한 이후 첫 우승에도 기여했다.

▲ 2016년 광주FC에서 20골로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던 정조국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는 "2003년 데뷔 후 외국인 선수들과 엄청나게 경쟁했다. 저렇게 비싼 돈을 주면서 왜 바꾸나. 돈 조금 받는 저를 쓰며 키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회 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패기 넘쳤던 시절을 추억했다. 이어 "지금 돌이켜보면 많이 알았던 것이 외국인 선수들과 싸우면서 제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본다. 그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들이 없었으면 이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실력 좋은 외국인 공격수들을 지속해 만났던 것이 행운이었다는 자세를 보였다.

경쟁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특징을 보여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후배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감히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친구들을 닮으려 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이 이 정도의 역량인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손흥민, 이동국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자신만의 특징, 무기를 가졌으면 좋겠다"라며 생존을 위한 장점 극대화를 보여달라고 말했다.

2011년 프랑스 리그앙 오세르 진출도 그런 도전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저 나름대로는 최선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제가 없었다면,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던 것 이상으로 아쉬웠을 것이다. 지금이야 중국, 중동 등 원하는 곳이 다양했지만 저는 오직 유럽 진출이 꿈이었다. 축구를 보는 시점이 인간 정조국으로 시야가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2015년 서울에서 밀려나 광주FC로 이적해 2016년 20골로 득점왕을 차지하고 우승팀 아닌 팀에서 최우수선수(MVP)가 되는, 첫 사례도 만들었다.

정조국은 "서울은 첫사랑이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아들 한마디에 도전했다. 축구 인생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광주에 가서 잘못됐다면 이런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조용히 선수 생활을 끝냈을 것이다"라며 담대한 도전이 결과물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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