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민규 기자]유격수는 ‘수비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우타자들이 많고 당겨 치는 타구의 비율이 높은 야구의 특성상 필드의 왼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많은 타구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유격수는 모든 포지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운동신경이 필요하다.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있었기에 유격수는 가장 매력적인 포지션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유격수로서 훌륭한 활약을 펼친 스타플레이어들이 보인 문제점은 뛰어난 타격 능력을 가진 유격수에 대한 환상을 많은 이들에게 심어 줬다는 것이다. 그들이 심어 준 환상과는 달리 유격수는 가장 떨어지는 타격 성적을 기록하는 포지션 가운데 하나다. 2010년, 유격수 포지션의 OPS는 .700대가 무너졌는데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유격수들의 OPS는 .687, 조정 OPS는 92에 불과하다.
지난 5년(2010~2014년) 동안 전체 포지션 가운데 가장 낮은 OPS를 기록한 유격수는 그러나 올 시즌에는 눈에 띌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홈런(366개)을 때려 낸 올 시즌 메이저리그 유격수들의 OPS는 지난해보다 .010이 높은 .686이며 조정 OPS 역시 91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포수 포지션(89)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올 시즌 유격수들의 조정 OPS가 지난해(94)보다 낮은 이유는 메이저리그 평균 OPS가 .700에서 .722로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유격수 포지션의 성적이 비교적 나아진 데에는 25세 이하 유격수들의 공이 컸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OPS를 .657에서 .693으로 .036을 끌어올린 이들의 올 시즌 fWAR은 34.5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25세 이하 유격수들이 기록한 단일 시즌 fWAR 가운데 가장 높으며 홈런 역시 191개로 1999년(204개)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젊은 유격수들 가운데 가장 뜨거운 활약을 펼친 이는 가장 나이가 어린 선수들인 잰더 보가츠(23·보스턴 레드삭스)와 프란시스코 린도어(22·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그리고 카를로스 코레아(21·휴스턴 애스트로스)다.
2013년, 20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보가츠는 올해로 빅리그 3년째 시즌을 맞이했다. 올 시즌 보가츠는 수비와 콘택트 능력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뤄 냈다. 그의 Def(수비 기여도)는 8.0으로 아메리칸리그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유격수 가운데 3위이며 타격에서는 타율 .320과 196안타를 기록했다. 보가츠가 기록한 4.3 fWAR은 무키 베츠(4.8)에 이어 팀 내 2위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올 시즌 보가츠의 홈런이 7개에 그쳤다는 것이다. 보가츠는 유망주 시절 보스턴 팜 시스템 내에서 파워가 가장 뛰어나며 빅리그에서 한 시즌에 25개 정도의 홈런을 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만약 보가츠가 장타에 조금 더 신경을 쓴다면 충분히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 낼 수 있을 것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코레아와 린도어는 99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다른 유격수들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올 시즌 400타석 이상 들어선 유격수 가운데 유일하게 .500대 장타율(.512)을 기록한 코레아는 메이저리그 유격수 가운데 가장 많은 홈런(22개)을 치며 2005년 이후 처음으로 휴스턴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코레아보다 한 살이 많은 린도어 역시 4.6 fWAR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유격수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 보가츠와 린도어 그리고 코레아의 활약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Three of a kind’로 불리며 아메리칸리그를 휘어잡았던 유격수 3총사를 회상하기에 충분했다.
‘유격수 트로이카 시대’는 먼저 빅리그에 데뷔했던 알렉스 로드리게스(40·뉴욕 양키스)와 데릭 지터(41)에 이어 1996년 노마 가르시아파라(42)가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세 유격수는 1996년부터 로드리게스가 양키스로 팀을 옮기고 유격수에서 3루수로 포지션을 이동한 2003년까지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1996년, 이미 20살에 타율 .358, 36홈런 2루타 54개를 기록한 바 있는 로드리게스는 이듬해 타율 .300 23홈런 84타점으로 잠깐 주춤했지만 1998년에는 호세 칸세코(1988년 42홈런-40도루), 배리 본즈(1996년 42홈런-40도루)에 이어 메이저리그 역대 세 번째 40홈런(42)-40도루(46)를 달성했다. 2001년과 2002년에는 2년 연속 50홈런(52홈런, 57홈런)을 기록했으며 2003년에는 47홈런 118타점으로 아메리칸리그 MVP에 선정됐다. 그러나 로드리게스의 모든 기록은 금지 약물 복용으로 의미가 퇴색햇다.
지터는 양키스의 전성기와 함께했다. 양키스가 1981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96년, 지터는 신인왕이 됐다. 또한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룬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지터는 연평균 .337/.413/.505 19홈런 86타점 24도루를 기록했으며 1999년에는 8.0 bWAR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높은 bWAR을 기록한 야수였다. 그해 지터는 .349/.438/.552 24홈런 102타점을 거뒀다. 지터의 활약은 포스트시즌에서 더욱 빛났다. 3년(1998~2000년)간 포스트시즌에서 지터는 41경기에 출장해 .309/.398/.475 5홈런 16타점 7도루를 기록하며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2000년 월드시리즈에서는 타율 .409 2홈런으로 MVP로 뽑혔다.
최연장자인 가르시아파라는 1997년 타율 .306 30홈런을 기록해 1996년 지터에 이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이 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또한 그는 209안타로 보스턴의 단일 시즌 신인 최다 안타 기록을 다시 세우기도 했다. 종전 기록은 1942년 자니 페스키의 205안타. 이듬해 타율 .323 35홈런 122타점으로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에서 2위에 올랐던 가르시아파라는 1999년과 2000년, 각각 타율 .357와 .372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했다. 가르시아파라가 2000년에 기록한 타율 .372는 1940년 이후 우타자 단일 시즌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1년 허리 부상만 아니었다면 가르시아파라는 더 좋은 성적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해 21경기 출장에 그쳤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8년간 아메리칸리그에서 최소 3,0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 가운데 로드리게스(64.1 bWAR)보다 더 높은 bWAR을 기록한 야수는 없다. 같은 기간 가르시아파라(41.2 bWAR)와 지터(40.7 bWAR)는 각각 3위와 4위에 올랐는데 이 두 선수보다 더 높은 bWAR을 기록한 야수는 매니 라미레스(42.8 bWAR) 뿐이다.
2009년에는 가르시아파라, 지난해에는 지터가 은퇴하며 이제 ‘유격수 트로이카 시대’의 주역은 로드리게스 한 명만 남았다. 그리고 2015년, 보가츠와 린도어 그리고 코레아라는 젊은 유격수가 아메리칸리그 3대 유격수 시대를 재현하려하고 있다. 과연 그들은 가르시아파라와 지터 그리고 로드리게스와 같이 아메리칸리그를 장악하며 팬들을 설레게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의 전성시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사진] 노마 가르시아파라, 데릭 지터 ⓒ Gettyimages
[그래픽 1] 새로운 유격수 3총사의 2015년 성적 ⓒ SPOTV NEWS 디자이너 김종래
[그래픽 2] 가르시아파라, 지터, 로드리게스 성적 ⓒ SPOTV NEWS 디자이너 김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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