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시대에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는 K리그. 사진은 전주월드컵경기장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다른 구단은 어떻게 하는지 눈치 좀 보고 있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5일 권오갑 총재의 연임을 발표했다. 다른 입후보자가 없어 무난하게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도 무사히 K리그를 치렀다는 '성공'을 강조하며 미래를 이야기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재임하면서 승강제 정착과 클럽 수 확대, 구단 경영공시와 객단가 공개, 전면 유료 관중 집계를 통한 재정 투명성 강화, 중계방송 확대, 리그 공정성 강화, 지역 밀착 및 사회공헌활동을 통한 팬 기초 강화 등에서 성과를 냈다고 자랑했다.

공은 좋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23세 이하(U-23) 출전 선수 규정 신설로 어린 선수들이 출전 보장을 열어줬다는 점이다. 22세 이하(U-22)까지 내려 구단이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도록 독려했다. 이는 연령별 대표팀의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어졌다.

K리그1 12개, K리그2 10개 구단 체제로 승강제를 정착시킨 것도 긍정적이다. 시즌 말이면 늘 살아남아 '생존왕' 이미지가 붙은 인천 유나이티드처럼 스토리를 만들었다. 또, 우승을 목전에 두고 밀려 2인자 딱지가 붙은 울산 현대처럼 재미난 사례로 있었다. 판정 시비를 줄이려 빠르게 비디오 분석(VAR)을 도입한 것도 긍정적이었다.

반면, 부정적인 기억은 철저히 지웠다. 2015년 경남FC의 심판 매수 파문으로 승점 10점 삭감과 제재금 7천만 원의 중징계가 있었다. 1983년 프로 축구 시작 후 구단이 심판 매수는 처음이었다. 심판들이 구속되면서 리그 신뢰에 금이 갔다.

2016년에는 전북 현대가 심판 매수로 승점 9점 삭감에 1억 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당시 전북은 2부리그 강등까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연맹은 어정쩡한 징계로 솜방망이만 휘둘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프로연맹이 사과하며 고개 숙였지만, 부족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백서를 통한 통렬한 반성이 기대됐지만, 고개 한 번 숙인 것으로 끝났다. 

▲ 2016년 프로축구연맹 수뇌부는 전북 현대, 경남FC 등의 심판 매수 파문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권오갑 총재는 자리에 없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과 없이 공만 강조, 구단들의 반발은 휴화산

구단의 반발이 여전한 제도들도 상존한다. 대표적인 것이 2013년 시작했던 선수들의 연봉 공개다. 구단들의 과한 인건비 지출을 막아보겠다는 의도였지만, 이는 독으로 작용했다. 축구는 세계 시장과 연동된다. 조금이라도 좋은 선수를 영입하려면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막는 꼴이 됐고 구단은 투자를 더 줄였다.
 
이는 연맹에서 향후 권 총재가 2024년 말까지 이끌 핵심 정책으로 설명한 미래 공약과 맞닿아 있다. 지난해 12월, 2020년도 8차 이사회를 의결했던 '구단 경영 효율화 방안'이다. 코로나19으로 경영 위축이 우려되는 구단들의 개선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골자는 이렇다. 2023년부터 '비율형 샐러리캡 제도' 도입하고 '로스터 제도'를 실시하며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간 '승리수당 상한선 설정' 등을 결정한 것이다.

눈에 띄는 결정은 두 가지다. 먼저 '비율형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다음으로 '상업적 능력이 뛰어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시행 중인 제도라는 것이 연맹의 설명이다. 구단의 총수입 중 선수단 인건비 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승리수당 상한선 제한이다. 2년 동안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승리수당의 상한선을 K리그1은 경기당 1백만 원, K리그2(2부리그)는 경기당 50만 원으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실제 프리메라리가는 구단 규모가 제각각이라 맞는 제도다. 이 경우 지출 가능한 연봉 총액의 상한선이 구단 총수입과 연동된다. 그 규모에 따라 구단별 연봉 상한액이 달라지는, 설명으로만 보면 K리그에도 합리적인 제도로 보인다.

K리그는 그동안 상업적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선수단 인건비 지출이 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체 구단 예산 중 70% 또는 80%가 선수단 연봉이나 수당 지급으로 왜곡된 구조였다. 15~20%가 구단 운영비, 나머지는 마케팅 등에 쓰는 비용이라 이에 대한 개선이 끊임없이 요구돼 왔다. 구단 자체적으로 팬이 어디에서 왔고 경기장에서 무엇을 먹기를 원하며 어느 선수의 유니폼을 사는지 등의 조사는 언감생심이었다.

승리수당은 구단별로 차이가 크다. 비교적 재정 상황이 좋은 기업 구단은 천 단위로 설정한 곳도 있다. 풀타임 출전, 45분 출전 등으로 세분된 구단도 있다. 승리수당과는 별개로 골, 도움 수당까지 설정한 곳도 있어 연봉보다 수당을 더 많이 가져가는 선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도민구단은 연승을 거둬야 수당을 지급, 동기부여 수단으로 활용했다.

▲ 경쟁자 없이 연임에 성공한 권오갑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한국프로축구연맹

비율형 샐러리캡 제도가 낳을 부작용은?

이론과 취지로만 본다면 두 제도는 위기의 K리그에 중요한 처방전이다. 모두 구단의 재정 건전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인건비를 줄여야 그나마 손해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K리그 구단들의 구조는 '자생'이 핵심인 유럽과 다르다. 기업구단은 독립 경영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모기업의 지원을 받고 있다. 시도민구단은 해당 지자체의 조례를 통해 안정적으로 지원 받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재난지원금 등에 예산이 집중됐음에도 추가경정(추경) 예산까지 확보하는 등 놀라운 구조(?)를 보여줬다.

이는 스포츠산업진흥법이 있어 가능했다. 애초에는 지차제의 지원 근거가 되는 모법이 없어 불가능했거나 의회를 읍소해 사회공헌 예산 명목으로 받아내는 등 돌려치기가 필요했지만, 스포츠산업진흥법이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프로스포츠단 창단 출자는 물론 지원 경기 범위까지 정하게 해줬다. 프로스포츠단 창단과 지역 스포츠 활성화 기반 구축이라는 명분이 만든 결과다.

한마디로 돈을 벌지 못해도 고정적 예산 지원은 정말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가능하다는 뜻이다. 시도민구단의 경우 지자체장의 낙하산용 인사로 자리하는 경우도 많아 오히려 구단 활용도가 더 커졌다. 구단을 거쳐 지차제 산하 기관으로 영전(?)하는 경우도 꽤 있다. 여기에 체육진흥투표권사업 수익금(스포츠토토 지원금)까지 더하면 더 그렇다.

구단들의 특수한 구조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 도입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는 것과 같다.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일정 비율의 운영비만 계속 유지하며 모험을 피하게 될 우려가 있다. 권 총재의 재임 첫 해와 비교해 22개 구단 운영비가 늘었을까? 더 줄어가고 있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국가대표급 선수 여럿을 관리하는 익명의 대리인은 "이미 선수들은 구단과 계약 과정에서 연봉의 일부를 구단 사회공헌사업에 활용하기로 합의하고 도장을 찍는다. 그런데도 고연봉자라며 낙인이 찍힌다. 기록으로 평가받는데도 말이다. 돈을 쓰고도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A기업구단 고위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과거처럼 구단이 모기업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시절은 지난 지 오래됐다. 그렇게 되면 모기업이나 지자체가 구단에 예산을 지원하든, 또는 자생을 위해 우회 지원하든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 돈 많이 쓴다고 지적당하면 지갑을 닫는 것이 생리다. 연봉공개는 대표적인 소탐대실 정책이다. 이후에 무슨 효과가 있었는가. 선수들이 밖으로(해외)만 더 나갔지 않은가. 샐러리캡도 구단 총수입 규모에 따라 연봉의 상한선이 정해지는 것이면 과감한 투자보다는 격차만 더 커질 뿐이다. 다른 구단이 실제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지 조용히 알아보려 한다"라고 꼬집었다.

B시도민구단 단장도 "역설적으로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가 많았다. 관중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 고용 등의 비용 지출이 줄었다. 경기 수가 줄게 되니 예년과 비교하면 오히려 손해를 덜 봤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경기를 치러서 돈을 버는 것이 정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웃픈일이다"라며 "그래도 수준급 선수들과 유망주들로 팀을 잘 운영해 적당한 성적을 냈고 팬들도 기뻐했다. 하지만, 규모 대비 지출을 정해버리면 유망주 영입은 더 힘들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물론 연맹은 제도의 취지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구단의 재정 상황을 고려한 합리적인 예산 배분, 장기 발전 분야에 대한 투자 병행으로 궁극적으로 구단 수입이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라며 우려는 기우에 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대구광역시에 제대로 뿌리 내린 대구FC, 구단이 지역 구성원 속으로 철저하게 들어가 흥행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

2009년에도 승리수당 철폐 시도, 조용히 부활…연고지에서의 경쟁력 강화 필요

냉정하게 따져 '법의 보호'를 받는 구단들이다. 지난해 유럽 5대 리그에서는 임직원들이 해고됐거나 구단이 파산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FC바르셀로나도 선수단 연봉을 줄이겠다며 고통 분담을 호소할 정도였다. K리그가 유럽에서 운영되는 리그였다면, 2~3개 구단을 빼고는 모두 파산을 선언하고도 남는 것이 옳다.
 
구단 나름대로는 발버둥을 치고 있다. 경기장 개선 사업부터 홍보, 마케팅 등 새로운 방안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승패만으로 구단이 존재하던 시절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존재 이유'를 알려야 한다. DGB대구은행파크 건축 후 완벽하게 달라진 대구FC가 좋은 예다.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섰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점점 투자가 줄고 있는 수원 삼성의 경우 2018년 초 수원월드컵경기장과 보조경기장 등 주변 시설을 활용해 농구, 핸드볼, 육상팀 등을 운영하는 FC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처럼 종합형 스포츠클럽(SC) 확대를 모색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을 들이는 공공스포츠클럽 확장에서 프로구단이 경영에 나서는 형태다. 내부 고위 인사가 '불필요하다'며 꺾어버렸지만, 수익과 공익성, 공공성을 모두 잡고 싶었던 구단의 의지가 드러난 검토였다.

SC 확대를 원하는 수원의 경우 홈구장 수원월드컵경장을 운영하는 월드컵경기장 관리재단 문제부터 해결이 필요하다. 관리재단의 관리와 감독은 경기도가 하고 운영은 수원시가 하는 이상한 구조다. 관리재단 이사장직의 경우 선거 후 논공행상 자리로 꼽혔다. 지방선거가 끝나 단체장이 바뀌어 수원시에서 모든 권한을 가져와야 수원도 문제를 풀 수 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부산 아이파크도 애물단지로 전락한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을 활용하는 SC 전환을 꿈꿨지만, 부산광역시에 프로 구단이 공공 시설을 수익 시설로 활용 시 사용료를 감면 받는 등의 관련 조례가 없어 좌절했다. 다른 아마 스포츠 종목들의 반발까지 끼면서 하이브리드형 축구단으로의 변신을 도모는 멈춤이다.

이럴 때 스포츠, 특히 축구의 가치와 특수성을 정치인, 공무원 등 관계자들에게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라고 있는 조직이 프로연맹이다. 프로연맹 주도형 정책은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할때 필요한 것이다. 이른바 '대관 업무'를 통해 리그 발전을 꾀하라는 것이다. 구단의 특수성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무 자르듯 제도 시행은 체하게 마련이다.

2009년에도 프로연맹은 구단 경영 정상화를 위해 승리 수당을 폐지하고 보수는 기본 연봉과 출전수당만 지급하기로 결의했다. 그렇지만, 성적이 우선 기준인 상황에서 수당 폐지는 말뿐이었다.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합리적 연봉을 받고 싶은 좋은 선수가 일찌감치 해외로 빠져 나가는 현상을 어떻게 막아 K리그 안에서 뛰게 할 것인지 고민도 필요하다.

사실 권 총재는 K리그 정책 집행을 의결하는 수준의 일만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사회나 시상식 등 주요 행사가 아니면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회장으로 조선업 부활이 더 큰 숙제로 남아 있어 프로실무자들이 사실상 정책을 짜고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냉철하게 공 이상으로 과를 따지며 정책을 수립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개별 구단이 연고지에서 다른 문화 콘텐츠와 견줘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더 도와야 하는 프로연맹이다. 구단의 경기력이 아시아 정상이어도 상업적 능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소용 없다. 중앙 집권적 일률적 정책 집행이 우선이 아님을 자각하고 움직이면서 구성원의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FA컵 우승으로 K리그를 포함해 2관왕을 해낸 백승권 전북 단장은 취재진이 모인 축승연 자리에서 수원, FC서울, 포항 스틸러스 등 흥행 구단의 투자가 줄고 전북과 울산만 돈을 쓰는 K리그의 상품성을 걱정하며 이런 말을 전했다.
 
"K리그의 상품성이 더 좋아져야 해요. 중계권료를 예로 들어볼까요. K리그 중계권료가 얼마인가요. 일본 J리그가 수백 배는 더 많지 않나요. K리그도 그만한 시장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꼭 프로연맹이 들어야 할 이야기처럼 들린다. 프로연맹의 경쟁력보다 구단의 연고지 경쟁력 강화가 더 우선인 K리그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제보> elephant37@spotvnews.co.kr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