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부상 불운에 시달렸던 한동민은 새 등번호와 함께 새 꿈을 꾼다 ⓒSK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설마설마했는데, 그 설마가 현실이 됐다. 정밀검진 결과를 보던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억울하고, 짜증도 났다. 한동민(32·SK)은 “속상했다”라고 떠올리더니 이내 “속상하다는 말도 부족했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한동민은 2018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홈런 41개를 쳤다.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는 날, 결승 홈런이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2019년은 기대에 못 미쳤다. 장타력이 뚝 떨어졌다. 이를 악물었다. 2020년 베로비치는 한동민의 땅이었다. 동료들의 훈련이 끝난 뒤에도 주차장에서 밤늦게까지 방망이를 휘둘렀다. 결실이 있었다. 타구는 힘이 있었고, 공을 찢어버리는 듯한 스윙이 돌아왔다. 모두가 한동민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시즌 초반도 괜찮았다. 5월 첫 17경기에서 타율 0.317, 6홈런을 기록했다. “40홈런 타자가 돌아왔다”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의 부상이 2020년을 망쳤다. 5월 24일 KIA전에서 파울 타구가 오른쪽 정강이를 강타했다. 파울 타구에 맞는 건 자주 있는 일인데 이 부상이 6주 이상 갔다. “첫 번째 부상은 황당했었다. 그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는 게 한동민의 솔직한 이야기다. 부상으로 리듬이 완전히 꼬였고, 심지어 9월 8일 키움전에서는 수비를 하다 왼쪽 엄지손가락 인대가 파열됐다. 수술은 시즌 아웃을 의미했다.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팠다. 한동민은 “많은 생각을 했다”고 입을 열면서 “손가락 수술 판정을 받을 때 ‘아무리 좋아서 야구를 한다고 하지만, 정말 야구가 전부가 아니구나. 과연 이게 맞는가’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페이스가 좋을 때 두 번이나 고꾸라졌으니…”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을 다잡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정강이와 손가락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 듯이,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은 지워져갔다. 불운에 맞서기 위해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비시즌에도 매일 새벽 공기를 가르며 훈련 시설에 출근한다. 한동민은 “보강 운동을 주로 하고 있고, 기술 훈련도 들어갔다. 티배팅을 80% 정도 힘으로 소화하고 있다. 아직 프리배팅에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재활 일정에 연연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움직이겠다”고 했다.

뭔가 분위기도 바꿔보고 싶었다. 2년차부터 달았던 등번호 ‘62번’과 안녕을 고했다. 많은 팬들과 관계자들이 놀란 결정이었다. 꼭 지난해 불운과 단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한동민은 이에 대해 “레전드 선배(박재홍)님의 번호였다. 무게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등번호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했는데 이번 계기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면서 “35번은 대학교 1~3학년 때 달았던 번호다. 애착이 있는 번호다. 35번을 달고 프로에서 뛰는 게 꿈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의욕적으로 달려가는 한동민이지만, 목표는 아주 단순하다. 그는 “이제 10년차인데 생각보다 출전 경기 수(605경기)가 많지 않다. 풀타임도 두 번밖에 없다. 부상이 많았다”면서 “올해는 잘하고 싶다. 그렇다고 홈런이나 타율 등 수치에 신경을 쓰는 건 아니다. 단지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속 뛰면 타격이 좀 안 되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같다. 안 아프고 뛴다는 자체가 잘하고 있다는 의미 아닐까”라고 했다. 

동료들에 한 발 앞서 제주도에 간다. 따뜻한 곳에서 재활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그는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시즌이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도 기다려진다. 2021년 시즌은 잘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불운을 떨친 거포가 대학 시절 꿈을 키웠던 등번호와 함께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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