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트넘 홋스퍼가 FA컵 64강에서 만났던 8부리그 마린FC의 홈구장, 주택가 안에 조성됐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최근 영국축구협회(FA)컵 64강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만남은 단연 영국 머지사이드주 크로스비를 연고로 하는 8부리그 팀 마린FC와 최상위리그인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의 만남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영국 현지 매체에서는 1894년에 창단했다는 마린의 역사를 알리는 기사를 쏟아냈다. 마린 구단이 창단해 하부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 구성하는 선수들의 직업은 무엇인지, 토트넘에 응대하는 마린 구단의 준비, 토트넘전 각오 등 다양한 기사들이 나왔다.

8부리그 Vs 1부리그의 대결 전국적으로 중계, 최대 20년 치 운영비 벌어 화제몰이 

취재해 기사를 만들고 또 독자의 눈으로 읽는 처지에서는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1871년 초대 대회를 시작해 149년의 역사를 이어온 FA컵 최초로 1부리그와 8부리그 팀의 만남이라는 화제성도 있는데 주변 이야기들이 다 관심거리였기 때문이다. 

영국 축구는 프리미어리그부터 리그2(4부리그)까지 프로, 5~6부리그가 세미프로고 그 이하 리그는 아마추어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동등하게 섞여 뛰는 FA컵은 종종 이변을 보는 재미로 기대감을 높인다. 올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한 리즈 유나이티드가 리그2의 크롤리타운에 0-3으로 지는 망신을 피하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토트넘의 5-0 승리로 끝났지만 크로스바를 맞힌 슈팅으로 잉글랜드 국가대표 수문장인 토트넘 조 하트 골키퍼를 놀라게 했던 공격수 닐 캥니의 직업이 배관공이라거나 배가 나온 주장 나이얼 커민스가 교사라는 사실을, 최소 현지 언론을 번역한 기사나 관련 영상 콘텐츠를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한 번이라도 접했던 국내 팬들이라면 알 정도였다. '투잡'을 뛰는 마린 선수들이 기성 언론이나 뉴미디어 관심 대상에 오르는 당연한 구조와 환경이다.

마린-토트넘전이 열린 지난 11일 국내 포털사이트 해외축구 섹션에는 관련한 기사가 무려 124개나 올라왔다. 단순한 경기 결과나 소감은 물론 인근 연고지 팀 수장인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 등신대 등장, 경기장 밖 주택에서 관전하는 팬들의 모습, 경기 중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델레 알리로 인해 폭소한 손흥민과 세르히오 레길론, 유니폼 교환 불발, 가상 티켓을 팔아 얻은 수익으로 최대 20년 구단 운영 효과, 주요 축구 전설들이 마린 구단 용품을 입고 경기 분석, 경기장 시설, 후원사 홍보 효과 만발 등 '기사가 되는 아이템'이 넘쳐났다. 

해외축구에 대한 관심이 국내축구(K리그 이하 리그)와 비교해 훨씬 크다는 냉정한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인터넷 신문이나 스포츠 신문은 물론 종합지, 경제지, 지상파, 종편, 뉴스 보도 전문 채널 등 모두 언론이 마린 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나온 해외축구 기사 467개 중 124개로 무려 26%의 비중을 차지했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전해진 기사 내용 모두가 축구의 '상업적'. '산업적'인 부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린전은 영국 공영방송 BBC(비비시)가 크롤리타운-리즈전과 함께 영국 전역에 생중계했다. 입석 포함해 3천1천여 명 수용 가능한 홈구장 로셋 파크(네이밍 마케팅으로 마린 트레블 아레나라 불림)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탔다. 맨체스터 시티-버밍햄시티나 첼시-모어캠비전이 인터넷 중계로 밀릴 정도로 '산업적'인 측면에서 마린은 속칭 '돈이 되는' 팀이었다.

▲ 결승에나 가야 관심 조금 받는 대한축구협회 주관의 FA컵 ⓒ대한축구협회

역사만 흘러가나 내실은 없는 대한축구협회(FA)컵…요원한 한국 축구의 '상업-산업화' 

영국에만 FA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도 대한축구협회(KFA) 주관의 FA컵이 있다. 1996년 시작해 나름대로 역사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5부리그까지 참가 기회를 줬다.

최근 대회 중 가장 화제가 됐던 2019년은 3부리그(내셔널리그) 대전 코레일이 울산 현대, 강원FC, 상주 상무 등 K리그 강호들을 완파하고 결승까지 올라 준우승을 해내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32강에서도 울산을 비롯해 인천 유나이티드, 전북 현대가 하부리그 팀들에게 잡혀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32강이 열린 4월17일, FA컵 관련해 나온 기사는 전체 288개 중 118개로 40%나 됐다. 마린-토트넘전과 비교해 적지 않은 비율이었지만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프로팀들의 탈락인데도 단순 결과 전달이 다수였다. 그나마 인천을 이긴 K3리그(4부리그) 청주FC가 늘 당일 원정을 떠나는데 하루 전 인천에 도착해 호텔 숙박으로 경기를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관심을 끌 정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K리그에서도 관심의 편차가 큰 편이라 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FA컵이 관심을 못 받는 이유가 기사의 수와 질로 증명된 것이다. 매체들이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지만, 취재해도 정보 얻기가 어렵고 또 전달 주체의 자세나 체계도 잡히지 않았다.

코레일이 준우승했지만, 팀 구조 자체가 실업축구에 근간을 두고 있었기에 '대전'이라는 연고지에도 빨려 들어가지 못했다. 상주 상주와 4강, 수원 삼성과 결승 1차전에서 코레일을 응원했던 팬들은 진짜 지역 팬들이 아니라 코레일 임직원 일부와 축구에 관심 있었던 관중이었다.

팀의 승리로 인해 인해 파급되는 축구의 '산업', '상업적' 효과가 너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팬들은 생중계가 없어 구단이 핸드폰으로 찍는 실시간 중계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보는 등 궁핍함을 감수하고 있다. 

물론 축구가 생활 속에 뿌리 깊게 박힌 영국과 한국의 FA컵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우리 구단들은 FA컵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K리그로도 벅차다는 지도자들의 인식이 강하고 이는 그대로 선수들에게 전달된다. 그나마 상업적인 자세가 좀 묻어 있는 일부 구단 직원들이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축구협회도 마찬가지다. 1라운드부터 8강까지는 구단에 마케팅 권리를 준다. 그나마도 금융권 후원사가 있는 일부 구단이 '후원 효과'를 조금이라도 낼 수 있게 해달라고 수년 동안 간청을 거듭했고 최근에서야 8강까지는 가능하도록 기회를 열어줬다. 4강부터는 모든 권리를 협회가 가져간다. 비중이 커지니 협회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 행사지만, 구단의 시선으로 본다면 경기 운영 비용 대비 관중이 적은, 치르고 싶지 않은 대회라는 인식을 지우지 못하게 한다. 

이는 완전한 디비전 시스템 구축을 사명으로 삼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의 핵심 정책과 괴리되는 부분이다. 정 회장은 1부리그인 K리그1부터 시·군·구 동호인 리그인 K7리그까지 출범 시켜 놓았다. 2016년 7월, 2번째 임기 시작 당시 생활 축구까지 아우르는 통합축구협회 체제가 되면서 디비전 체제는 더 중요한 정책이 됐다. 

하지만, 완전한 디비전 체제는 아니다. K리그1-2, K리그3-4, K5-7리그 사이에만 승강제가 시행되고 있을 뿐이다. 틀은 잡혔지만, 내부에는 틈이 벌어져 있는 이상한 구조다. 하부리그가 이제야 틀을 잡아가고 있고 정 회장이 당선사에서 2025년 1월까지 예정된 임기 동안 "디비전시스템은 한국 성인축구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라며 통합 승강제 도입을 예고했지만,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공포심부터 먼저 제거해줘야 한다.

▲ 201년 K3리그(3부리그) 대전 코레일은 FA컵 결승에 올랐지만, 축구 안에만 열기가 머물렀다. 지역인 대전광역시에서는 큰 화제가 되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구성만 있는 디비전시스템은 무소용, 4년 더 임기 출발하는 정몽규 회장의 숙제

K리그1, 2는 아시아 축구연맹(AFC)이 요구하는 클럽 라이선스 기준을 맞춰야 한다. 축구협회도 K3, 4리그에는 프로연맹이 요구하는 클럽 라이선스 규정 충족을 바랐다. 그래야 2와 3 사이에도 무리 없이 승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라이선스를 갖춘다고 하더라도 '왜 승강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일부에서는 지우지 못하고 있다.  

K리그2의 A시도민구단 관계자는 "K3리그와 승강제를 하고, 혹시라도 강등이 된다면 제3자 입장에서야 흥미롭게 보겠지만, 그 순간이 전부지 빨리 잊힌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는 돈도 벌지 못하고 성적도 내지 못하는 '돈 먹는 하마'처럼 비질 가능성이 있다. 축구를 잘 모르는 지역 정치인들이 '해체하라'는 소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강등되더라도 구단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환경이나 장치 조성만 되면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인데 축구협회가 너무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형태만 구축하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즉 승강제를 통해 승격과 강등이 되든 '돈이 되는', 내실부터 키우게 충분한 시간을 갖자는 뜻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FA컵에서 하부리그 팀이 상위리그 팀을 이겨 화제가 되는 환경으로 이어진는 것이다. 임기 내에 완전한 승강제를 밀어붙이려다 역효과를 내지 말기를 바란 것으로도 이해 가능하다. 

뛸 수 있는 환경도 마찬가지다. 마린 홈구장은 주택가 한 가운데 자리했다. 발코니나 거실에서 경기를 보는 장면이 잡힐 정도였다. 우리로 치면 소규모 연습구장 수준이다. 그런데도 어디서나 뛸 수 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환경에 딱 맞게 경기장이 자리 잡았다. 거창한 경기장 건립 대신 일정한 관중석이 있는 본부석만 갖추고 나머지는 가변석으로 경기장의 형태만 구축해 분위기를 내는 식의 환경 조성으로도 충분하다. K3리그 이하 팀들이 충분히 참고할 부분이다.

▲ 정몽규 회장은 한국형 디비전시스템 완성에 남은 임기 4년을 걸었다. 상업적 능력을 갖춘 한국 축구의 진정한 산업화는 가능할까 ⓒ대한축구협회

공공시설인 홈구장의 장기 임대도 숙고하고 교육부나 시설관리공단 등 유관 기관과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하부리그들의 환경 정비를 위한 제도 보완이 더 필요한 한국 축구의 산업 기반이다. 학교 체육 활성화를 위해 학교 운동장을 활용하고 싶어도 학교장부터 설득하고 주변 주민들의 인식까지 바꿔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구성원들의 고충을 정 회장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대회의 화제성이나 매력도가 커져야 방송 생중계도 자연스럽게 붙는 FA컵이다. 우리에게도 1부리그 팀과 만나서 10년 이상의 운영비를 벌었다는 팀이 나오도록 차분하게 유도해야 한다. 이들이 뛰는 경기장이 관중석 3백 석이 채 되지 않아도 말이다. 그저 지자체의 도움을 받는다는 이유로 산하기관으로 인식, 논공행상이나 과시의 수단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지역, 동네 기반의 구단들이다. 

정 회장은 코로나19로 축구를 비롯한 운동하기가 힘든 환경에서 정면 돌파가 필요함을 그 누구보다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종식 시점은 미정이지만, 역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에서 국민들의 운동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큰지를 확인하고 있는 요즘이다. '축구의 생활화'에서 잠시 멈춘 이 시점에 지역과 팬들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능력과 방법부터 더 학습 시켜 한국 축구의 상업, 산업화부터 꾀해야 하는 정 회장과 축구협회다. 거창한 이야기도 아니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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