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베어스 김재호는 생애 2번째 FA 계약을 마치고 19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 응했다. ⓒ 잠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우리 딸을 허락할 수 없다."

김재호(36)에게 '두산 베어스 주전 유격수'라는 수식어가 붙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앙중, 중앙고 시절부터 유망주로 평가를 받았고, 2004년 1차 지명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으면서 꽃길만 펼쳐질 것 같았다. 하지만 김재호를 기다린 건 10년이라는 길고 긴 백업 생활이었다. 

19살 유망주는 27살이 됐을 때 오랜 방황을 끝내는 따끔한 한마디를 들었다. 당시는 김재호의 여자친구였던 아내 김혜영 씨(35)의 어머니가 "우리 딸을 허락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 야구로는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던 김재호의 인생을 바꾼 한마디였다.

덕분에 김재호는 18년째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다. 2014년 주전으로 도약해 2015, 2016, 2019년 3차례 우승에 기여했다. 2016년은 주장으로 1995년 이후 21년 만에 팀 통합 우승을 이끄는 역사를 썼다. 2015년과 2016년은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최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았다. 

두산도 김재호의 가치를 인정해 2차례 FA 시장에 나온 그를 붙잡았다. 2016년 시즌 뒤 첫 FA 때 4년 50억 원으로 당시 역대 FA 유격수 최고 대우를 받았고, 이번 겨울 2번째 FA 자격을 얻어 3년 25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 2023년까지 20년 동안 두산에서 원클럽맨으로 뛰는 김재호를 19일 잠실야구장에서 만났다.

▲ 두산 베어스 김재호 ⓒ 잠실, 곽혜미 기자
◆ 방황했던 10년…"야구가 재미없었다"

10년까지 백업 생활이 길어진 이유는 결국 김재호에게 있었다. 그는 "프로에 와서 적응을 못 했고, 야구가 재미가 없으니까 즐겁지 않았다. 그냥 피하고 싶었다. 기대를 많이 받았고, 남들한테 잘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경기를 내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답답했다. 그래서 피했다. '어차피 경기에 못 나가니까'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불성실했고, 훈련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금방 포기하고 그런 시간을 반복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조금 더 끈기를 갖고 계속 노력했으면 조금 더 빨리 기회가 왔을 수도 있었다. 금방 포기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했던 게 내게는 마이너스가 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야구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동안 야구 외적인 것에 더 기대려 했다. 그중 하나가 지금의 아내였다. 김재호는 "야구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믿음, 또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에게서 더 힘을 얻으려 했다"고 밝혔다. 

아내의 어머니는 그런 김재호에게 힘을 실어줄 수 없었다. 김재호는 "장모님은 현실을 깨닫게 해주신 분이다. 운동선수로서 내가 성공할지 안 할지도 모르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딸을 맡기는 것을 불안해하셨다. 장모님이 보시기에 내가 연애하는 것도 정말 좋지만, 연애 말고 운동 쪽으로 더 집중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러지 못하고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데 더 의지하니까. 장모님께서 '미래가 불투명하니 우리 딸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하셨고, 나도 내가 조금 더 야구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김재호는 180도 달라졌다. 그는 "내가 정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운동선수로서 낙오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내 인생이 끝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가 야구를 한번 피하지 말고 부딪혀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때가 27살쯤이었다. 나도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고, 여기서 흐지부지하면 어느 순간 팀을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장모님의 말을 들은 뒤로 내 모든 삶의 초점은 야구가 됐다. 야구를 사랑하게 됐고, 더 파고들려고 했고, 야구를 깊이 생각하려 하니까 야구가 조금씩 삶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글러브도 내가 사서 써보고, 가지고 있던 것도 써보고 이런 게 다 즐거웠다.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2013년 당시 주전 유격수 손시헌의 부상 이탈이 김재호에게는 기회가 됐다. 김재호는 그해 91경기에 나서 타율 0.315(248타수 78안타), 1홈런, 32타점, 42득점으로 활약한다. 2013년 시즌 뒤 손시헌이 FA로 신생팀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면서 주전 유격수 김재호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두산 베어스 김재호 ⓒ 잠실, 곽혜미 기자
◆ 대체 불가 유격수, 그리고 누군가의 롤모델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지금도 김재호는 두산의 대체 불가 유격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평소 FA 계약은 구단의 일이기에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김재호는 잡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김재호가 베테랑으로서 보여주는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김재호는 "이번 FA 계약을 하기 전에 감독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다. 내가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부족했지만 감독님께서 필요한 선수로 생각해주시고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감독님께서는 수치로 보이지 않는 가치를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본인은 통산 성적에 아쉬움을 보였다. 김재호는 통산 1454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8(3727타수 1035안타), 48홈런, 515타점, 560득점을 기록했다. 김재호는 "어릴 때 경기에 띄엄띄엄 나가면서 너무 못 쳤다. 통산 타율이 0.278에서 올라가질 않는다. 은퇴하기 전까지 0.280까지는 올리고 싶은데 어릴 때 너무 못 쳐서 쉽지 않다"고 답하며 웃었다. 

현재 많은 후배 선수들의 롤모델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본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김재호는 "후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고맙긴 한데 창피하다. 내가 그 정도 선수로 가치가 있을까. 기록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선수인데 높이 평가해 주니까. 그에 맞는 선수가 되고 싶은데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부끄럽다"고 했다.

수치가 화려하지 않아도 가치를 인정해 준 구단에 감사했다. 김재호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들을 구단에서 많이 인정해줘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사람의 생각, 경기 운영 능력 같은 것들은 같이 생활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가치다. 그래서 감독님도 좋게 평가해줬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선수들은 많지만, 화려하지 않아도 무언가가 있으니까 구단에서 높이 평가해줬다고 생각한다. 그걸 후배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같다. 왜 김재호는 수치상으로 별로 잘하는 것 같지 않은데, 높이 평가해주는지 알고 싶어서 후배들이 롤모델이라고 이야기하나 싶기도 하다"고 했다.  

▲ 김재호는 가족의 힘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왼쪽부터 아내 김혜영 씨, 아들 서한(5), 딸 그루(3), 김재호 ⓒ 김재호 제공
◆ "장모님 덕분에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김재호는 지난 8일 두 번째 FA 계약서에 사인한 뒤 부모님께 인사하고, 그다음 장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재호는 "이번에 계약하고 장모님께 '덕분에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야구를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래서 이렇게 성장했으니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장모님 덕분에 야구에 전념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을 만들게 해주셨다.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마음을 표현했다. 

야구 선수로 키워준 부모를 향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김재호는 "어릴 때 하도 많이 아파서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셨다. 어머니께 '운동선수로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했더니 울컥 하시는 것 같았다.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짠하셨던 것 같다. 만족할 수 있는 효도는 없는 것 같지만, 앞으로도 부모님께 더 잘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야구 선수로 성장하는 동안 늘 든든하게 옆을 지켜준 아내에게도 마음을 표현했다. 김재호는 "아내는 내가 항상 힘들 때 '너는 성공할 수 있어. 내가 아무나 안 만나.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은 무조건 여기서 인정받는 선수가 될 거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웃음). 그럴 때면 내가 과연 될까? 의심을 많이 하고 자신도 없었다. 아내를 힘들게 한 시간이 있었는데, 그 힘든 시간을 내 옆에서 잘 버텨줬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내가 인정받을 수 있다고 늘 강조해줬다. 밝은 긍정의 에너지가 큰 도움이 됐다. 아내를 잘 만나서 운동선수로서 남편으로서 사람들이 좋게 봐주시니까. 좋은 아내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2편>에서 계속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제보>kmk@spotvnews.co.kr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