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노윤주 기자, 송승민 영상기자]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시대, 현대 축구에서 감독 선임과 경질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지난 25일 첼시는 프랭크 램파드 감독의 경질을 알렸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동행을 중단했다.

현역 시절 첼시의 심장과도 같았던 램파드 감독, 프로 입문은 첼시가 아님에도 그에게는 '푸른 피의 DNA'가 있었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총 429경기 147골로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프리미어리그 3회, FA컵 4회, 리그컵 2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1회 우승. 램파드가 첼시의 상징인 이유다. 그러나 지도자 입문 후 친정의 리더가 됐지만, 성적을 내지 못하면 레전드라는 예우는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첼시는 올 시즌 시작 전 대형 선수 영입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티모 베르너, 카이 하베르츠, 벤 칠웰, 하킴 지예흐. 이 네 명의 영입에만 2억 2천만 유로, 우리 돈 2천944억 원을 뿌렸다. 에두아르 멘디 골키퍼까지 포함하면 3천378억원에 달한다. 

30대 중반의 중앙 수비수 티아구 실바를 자유계약 선수로 영입, 공수 균형까지 잡는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19로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이례적인 지출이다. 거액을 시장에 뿌린 것과 달리 베르너는 리그 19경기 4골로 부진하고 하베르츠도 1골이 전부다. 

지예흐도 마찬가지다. 

골 좀 넣을 줄 아는 영입생 3명이 6골로, 태미 에이브러햄 혼자 넣은 골과 같으니 램파드 감독의 지도력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겠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장기 집권이 끝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데이비드 모예스를 시작으로 루이스 반 할, 무리뉴를 거쳐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이 지휘 중이다. 

만족을 모르는 팬들의 성화에 후원사로 통칭되는 자본의 힘이 섞여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올 시즌도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이 슬라벤 빌리치 감독을 경질하고 샘 앨러다이스 감독을 선임, 가장 빠른 교체를 선택했다. 경질 당시 19위였던 웨스트 브롬위치, 19라운드 종료까지도 그대로 19위에 있다. 

6경기 1무 5패, FA컵도 2부 리그 블랙풀에 승부차기로 패해 얻은 것이 없다.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1994년 블랙풀을 시작으로 이번 웨스트 브롬위치까지 11개 구단을 지도했다. 적당히 성적을 내고 경험이 풍부해 임시처방으로 자주 선임한다. 

18개 팀을 지휘했던 크리스탈 팰리스의 로이 호지슨, 11개 팀을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스티브 브루스, 앨러다이스 같은 지도자를 두고 '공공재 감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감독 바꾸기를 돌같이 하던 독일 분데스리가도 조급증에 걸리기는 마찬가지이다. 

개막 2주도 지나지 않았을 당시 샬케 04와 마인츠 05가 감독을 바꿨다. 뒤이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헤르타 베를린도 무 자르듯 감독을 바꿨다. 감독이 잘리고 새 감독이 선임되는 것이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늘 있는 일이니 사임이나 경질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분위기 전환을 통해 순위 상승이라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자본의 힘이 점점 더 커지는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지도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너무 쉽게 활용하고 내친다는 비판도 상존한다. 첼시만 보더라도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재력에 영향을 받는다. 1백억 파운드, 우리 돈 14조 6천6백억 원의 자산을 보유해 선수 수급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힘으로 지도자의 명운을 좌우한다. 

아브라모비치는 2003년 첼시를 인수했다. 그 체제에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조제 무리뉴, 아브람 그란트,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거스 히딩크, 카를로 안첼로티, 로베르토 디 마테오, 라파엘 베니테스, 안토니오 콘테, 마우리치오 사리에 이번 램파드까지 무려 8명이 지휘봉을 잡았다.

18년 동안 감독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15개월여, 두 번 첼시를 맡았던 무리뉴가 그나마 가장 길었다. 감독 교체로 지불한 비용만 1억 1천50만 파운드, 무려 1천635억 원이나 된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니", 뭐 이런 걸까.

램파드는 2부 리그 더비 카운티를 거쳐 2019년 7월 첼시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국제축구연맹의 선수 영입 금지 징계로 한계가 있었는데 메이슨 마운트, 리스 제임스, 에이브러햄 등 유스 출신 어린 선수들을 1군으로 호출에 키워 4위로 시즌을 마치는 능력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우승을 원하는 첼시는 램파드를 기다려주지 못했고 지도력이 농익기도 전에 잘랐다. 램파드는 너무 빨리 리더십에 상처를 받게 됐다. 그래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독설가인 게리 네빌은 "첼시에서는 램파드마저 평균 12~18개월마다 감독을 바꾸는 위험에 노출됐다"라며 제아무리 전설이어도 자본을 앞세운 구단주의 압박에는 누구도 견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리뉴 감독은 '동료들이 직업을 잃을 때면 언제나 슬프다. 램파드는 그저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내 경력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보였다. 

첼시는 토마스 투헬 전 파리 생제르맹 감독과 1년 6개월의 계약을 맺었다. 투헬은 독일 마인츠, 도르트문트에서 나쁘지 않은 지도력을 선보였고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2019-20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성격이 상당히 강해 경영진과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잦은 편이다. 

과연 아브라모비치의 자본을 견디며 소신 있게 팀을 운영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스포티비뉴스=노윤주 기자, 송승민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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