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구 프로화'를 표방한 PBA(프로당구협회)가 거듭되는 내분으로 혼란스럽다.

스포티비뉴스가 지난 1월초 보도한대로 지난해 12월 계약 해지를 통보한 마케팅 대행사 '브라보앤뉴'와 갈등은 봉합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법정 다툼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PBA는 브라보앤뉴의 경영권 남용을 주장하지만 이에 맞서 PBA 임원진의 사유화 시도, 흥행에만 매몰된 아마추어적 운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양 측의 갈등에 당구인과 후원 기업, 당구계 최대 프로퍼티(자산)인 선수들은 불안감과 피로감을 동시에 호소하고 있다. PBA의 "문제없다"는 주장에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당구의 건설적인 발전은 도외시한 채 ‘수익 추구’에만 골몰한 PBA식 프로화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스포티비뉴스는 PBA와 브라보앤뉴 임직원은 물론 선수와 후원 기업 관계자까지 다각도로 인터뷰하면서 내분에 휩싸인 PBA 문제점을 짚어봤다.

▲ PBA가 내분 봉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 PBA

① 진흙탕 싸움 빠진 PBA…"이희진 사유화 시도" vs "경영권 남용"

2019년 1월 출범한 PBA의 실질적 운영 주체는 브라보앤뉴였다. 브라보앤뉴는 PBA의 마케팅 독점 대행사로서 후원 계약과 중계권 판매 등 실무를 책임졌다. 그러나 브라보앤뉴 이희진, 장상진 대표가 모회사인 '뉴(NEW)'의 오너와 갈등을 빚고 퇴사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장 전 대표는 PBA 부총재 자격으로 이사회를 열어 브라보앤뉴와 계약 해지 방침을 세웠다.

지난 1월 8일 이희진 전 대표는 입장문을 발표하며 계약해지의 귀책 사유로 NEW 김우택 회장의 경영권 남용을 언급했다. 이 전 대표는 “김 회장은 동업자이자 주주인 이희진, 장상진의 동의 없이 전환사채(CB)를 발행한 뒤 주식 전환권을 행사했고 이를 통해 본인 지분율을 늘리고 주주의 지분율은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CB 전환 과정에서 자신과 장 전 대표의 통합 지분율이 기존 40%에서 20% 이하로 급감했고, 브라보앤뉴의 대여금 상환 부당 독촉과 회삿돈 30억 원 무단 차용도 함께 적시했다.

PBA의 주장에 맞서 브라보앤뉴는 1월 15일 성명서를 내고 이 전 대표를 정면 반박했다. "PBA 입장문에 기술된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면서 “갈등의 본질은 이 전 대표의 ‘PBA 사유화’ 시도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표가 브라보앤뉴에 재직하던 당시 업무와 무관한 개인 목적으로 3억9000만 원 상당의 법인카드를 사용했고, 이에 대한 소명을 요청하자 설명은 회피한 채 일방적인 주장을 나열한 입장문으로 국면 전환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 이희진 PBA 이사는 지난달 8일 브라보앤뉴와 갈등 배경을 설명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 지난 1월 15일 브라보앤뉴가 발표한 입장문
브라보앤뉴 관계자는 스포티비뉴스와 통화에서 "퇴사부터 입장문 공표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 행보는 브라보앤뉴와 계약을 해지한 뒤 본인이 설립한 회사에 PBA 마케팅 권리를 넘겨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대한 정황 증거도 갖고 있다"면서 "PBA 김영수 총재 역시 2019년부터 2년간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사용한 흐름이 포착돼 정확한 소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소명을 요구한) 자사 임원을 PBA 이사직에서 해임하는 등 독단적인 대응을 보여 건설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이 전 대표는 (브라보앤뉴와 브라보앤뉴 계열사에) 추가 부채 포함, 총 50억 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선수들과 관계자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PBA 재무 상태에 대한 (정확한 현황을)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 선수들이 단체의 재정 안정성에 대한 문제를 모르고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② PBA, 브라보앤뉴와 선 긋기 본격화…"목적은 오직 돈" 비판

이희진‧장상진 전 대표는 브라보앤뉴 대표로 PBA 설립을 주도했다. 그러나 브라보앤뉴와 관계가 악화되자 곧바로 선 긋기에 나섰다. 이희진 전 대표는 “스포츠비즈니스에서 주체는 PBA이고 객체가 마케팅 대행사”라며 “브라보앤뉴는 대행 일꾼이지 주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브라보앤뉴와 관계 재정립에 나선 이희진‧장상진 전 대표는 PBA의 ‘주인이자 대행 일꾼’이 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브라보앤뉴를 대체할 신설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장 전 대표는 “이희진 대표와 법인은 다르지만 서로의 회사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PBA 장상진 부총재가 만든 ‘와우매니지먼트그룹’은 브라보앤뉴의 핵심 인력 및 선수 대부분을 데려갔다. 이 과정에서 'PBA 부총재' 권한을 앞세워 선수들을 협박‧회유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브라보앤뉴 류석 총괄대표는 “29명의 당구 선수 가운데 24명이 와우매니지먼트로 갈 예정이다. 현재 5명의 선수만 남아있다. (브라보앤뉴 소속이었던)골프 선수들은 모두 이적했다. 선수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협박‧회유를 했다. 장상진 부총재나 김치빌리아드 김종율 대표가 PBA 팀 리그 선발과 운영권을 갖고 있으니 브라보앤뉴에서 나오지 않으면 대회에 참가시키지 않는 페널티를 주고, 후원도 하지 않겠다고 협박하며 회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류 대표는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국내 선수 29명 중 9명에게는 계약금을 줬다. 계약금까지 다 주고 3~4년 계약을 맺었는데 해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법정 소송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지난해 PBA 장상진 부총재와 이희진 이사가 브라보앤뉴의 대표를 겸했을 때는 협회 권한을 남용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PBA가 선수들에게 특정 브랜드 의류를 경기복으로 강요했다는 것이다. PBA 1부 리그의 한 선수는 “PBA가 처음에는 '골프 의류'를 경기복으로 입어야 한다고 공지했다. 골프웨어가 상당히 고가라 부담됐지만 그래도 모든 선수가 사비를 털어 경기복을 마련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회사 골프웨어는 입지 말고 특정 J브랜드의 옷만 사서 입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J가) PBA 팀을 창단하면서 모종의 얘기를 나누지 않았나 싶다. 이미 여러 벌 옷을 맞추느라 상당한 사비를 들였는데 누가 봐도 명분도 없고 실리도 적은 지시를 내려 회사 측에 항의하니 '계약상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PBA가) 정말 말도 안 되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에 저질러졌던 이런 사건들 때문에 PBA 주요 임원이 요직을 꿰찬 회사에 PBA 마케팅 대행을 주는 기형적 구조가 지속되는 한 ‘개인 사유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한 당구계 원로 인사는 “PBA는 목표가 돈밖에 없어 보인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번 갈등도) 본인들의 주식과 지분이 (브라보앤뉴에) 들어 있는데 문제가 생기니 또 다른 방법을 찾은 것뿐이다. 당구인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용만 당하고 끝날 수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③ 선수는 뒷전…'프로' 이름만 주고 흥행에 혈안 된 PBA

PBA는 출범 초부터 각종 논란에 시달렸다. ‘프로’를 내세웠지만 아마추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기 룰을 사용했고, 하루아침에 ‘프로’가 된 선수들의 경기력 논란도 꾸준히 제기됐다. 협회의 운영 방식이 선수가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오직 흥행에만 초점을 맞춰 나타난 결과였다.

한국 당구 대표팀 감독 출신의 한 인사는 "프로는 첫째가 경기력이다. 지금 PBA가 시끄러운 것도 기본이 미흡해 빚어지는 현상이다. PBA는 대회마다 우승자가 바뀐다. 이게 무슨 프로인가. 지금 경기 방식으로는 가위바위보로 승패를 결정하는 게 나을 정도다. 프로스포츠는 경기력이 최고여야 한다. 지금 PBA는 일반인들이 당구장에서 하는 게임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당구를 잘 치는 선수가 우승해야 되는 게 프로인데 (현 체제에선) 운 좋은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PBA가 도입한 뱅크샷 2점제와 4인 1조 서바이벌 방식, 공격제한시간, 낮은 점수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러한 룰들이 선수의 경기력은 뒷전이고 흥행에만 혈안이 된 PBA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경기의 변수를 크게 늘려 누가 우승할지 끝까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데만 골몰한 규칙이라는 것이다.

선수들도 PBA의 전면적인 룰 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선수의 실력보다 요행이 승패에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일침이다. PBA를 대표하는 한 선수는 "4인 1조 서바이벌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예선 128강과 64강을 하면 4명 중 2명이 올라간다. 그게 변수가 가장 크다. 첫 순서로 배정된 선수는 3번째 선수와 한 번도 공수를 교대하지 않는다. 2번과 4번 선수도 마찬가지다. 서로 영향을 줄 수 없는 상대와 경기를 펼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간을 정해놓고 마무리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상대가 고의로 특정 선수를 떨어뜨리기 위해 시간을 끌고 디펜스를 할 수 있다. 어떤 때는 1게임에 14큐나 15큐밖에 안 돌아온다. 서로 전혀 관계없는 선수와 함께 치른 경기지만 스코어는 애버리지에 기입돼 왜곡될 수밖에 없다. 대회마다 우승자가 바뀌고 있는데 실력이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서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 PBA에서 뛰는 한 선수는 "대회 흥행을 구실로 PBA가 '쿠드롱(사진)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 PBA
특정 선수 몰아주기 의혹도 제기됐다. 당구는 테이블 적응이 매우 중요하다. 테이블마다 공이 길고 짧게 떨어지는 정도가 천양지차다. 그래서 배팅과 두께 조절, 길 선택을 대대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단기 레이스일수록 테이블 파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런데 PBA에서 활약하는 한 선수는 "쿠드롱 같은 경우 128강부터 결승까지 오로지 한 대대에서만 플레이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폭로했다. "쿠드롱은 방송용 카메라가 장착된 테이블에서 128강부터 결승까지 오로지 (한곳에서만) 공을 친다. 쿠드롱과 싸우는 선수는 테이블 파악을 2~3분 안에 끝내야 하는, (상대는 겪지 않아도 될) 중요 과제를 안고 전장에 임하는 것이다. 쿠드롱은 이틀, 사흘을 그 테이블에서만 치니까 전혀 이런 과정을 밟지 않아도 된다. 해당 테이블에 완전히 최적화돼 있는 셈이다."

"특정 선수를 감싸고도는 건 그만했으면 한다. 스타플레이어를 방송에 노출해 흥행을 유도하겠다는 발상을 접었으면 하는 것이다. 선수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선이란 게 있는데 PBA가 그 선을 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라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④ “PBA는 문제없다” 주장하지만…선수-후원사는 불안 호소 

이희진 전 대표는 “PBA 투어를 후원하겠다는 대기업 문의가 쇄도하고, TV 중계권을 달라는 방송사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PBA는 아무런 차질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재 결과 균열의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드러났다.

현재 PBA 방송 중계는 제작과 송출 모두 빌리어즈 TV가 맡고 있다. 빌리어즈 TV는 PBA와 갈등을 빚고 있는 브라보앤뉴에서 운영하는 당구 전문 채널이다.

PBA와 빌리어즈TV의 중계권 계약은 올해 4월 만료된다. 브라보앤뉴 관계자는 “현재 다른 중계권사들은 PBA 중계권료가 저렴하고 제작‧송출을 빌리어즈TV가 맡아줘 제작비 절감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PBA가 (이번 재계약 협상에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면 빌리어즈TV는 (계약 만료 이후) 중계를 맡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됐을 때도 타 방송사가 PBA 중계를 지속할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지상파에서 인기 종목 중계권이 없기 때문에 ‘가성비’ 높은 당구 중계를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중계권 금액이 크지 않으니 효율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PBA를 후원하는 기업들도 양 측의 갈등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PBA를 후원하는 A기업 관계자는 “내부적인 일이 불거져서 이슈가 생긴 것은 물론 좋지 않다. 후원사 입장에서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 지켜보고 있지만 잘 마무리됐으면 한다. 현재 계약은 기존의 브라보앤뉴랑 되어 있다. 올해 후원 계약이 마무리되는데 계속 후원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B기업 관계자는 “PBA의 내부 갈등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사실을 파악하진 못했다. 후원하면서 보니 당구계에 파벌싸움이나 용품 관련 이권 다툼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PBA 선수들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코로나 여파로 대회가 취소돼 수입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PBA를 둘러싼 법정 다툼이 반가울 리 없다. PBA를 대표하는 한 선수는 “처음에 PBA에 합류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점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선수 생활을 하면서 3번 정도 프로화가 실패한 걸 지켜봤다. PBA도 계획했던 것을 진행하다 중간에 끝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이적 당시) 많이 고민했다. 갈등이 해결되고 PBA가 안정적으로 잘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스포티비뉴스=정형근, 박대현 기자
제보> jhg@spotvnews.co.kr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