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요다노 벤추라.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누군가 그 번호를 달아야 한다면 친구가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캔자스시티 로열스 좌완투수 대니 더피(33)에겐 최근 깊은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바로 자신의 등번호와 관련된 문제였다.

2011년 캔자스시티에서 데뷔한 더피는 지난해까지 41번을 달고 뛰었다. 그런데 최근 FA 1루수 카를로스 산타나(35)가 캔자스시티와 2년 계약을 맺으면서 고민이 생겼다. 산타나가 지난 11년간 사용한 번호가 41번이었기 때문이다.

백넘버가 겹치게 된 더피는 새 동료에게 자신의 41번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 달 번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 후보 중 더피의 눈길을 사로잡는 번호가 있었다. 바로 30번이었다. 지난 4년간 캔자스시티에서 30번을 단 선수는 없었다. 이 번호는 2017년 1월 세상을 떠난 우완투수 요다노 벤추라의 백넘버였기 때문이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으로 2013년 캔자스시티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벤추라는 2017년 1월 고향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평균시속 150㎞대 중반의 강속구를 던지며 미래의 에이스로 촉망받았지만, 26세 나이로 생을 달리했다.

벤추라의 데뷔부터 성장을 함께한 동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캔자스시티 선수들은 도미니카공화국으로 건너가 벤추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또, 구단은 홈구장 카우프먼스타디움에서 벤추라 추모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슬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동료들은 벤추라가 생전 달았던 30번을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이너리거 시절부터 벤추라와 친밀하게 지냈던 더피는 최근 자신의 등번호를 고민하던 찰나, 하늘로 떠난 동료를 떠올렸다. 만약 누군가 30번을 달게 된다면, 이는 절친했던 친구가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고, 유족과 동료들의 동의를 얻어 새 등번호로 30번을 택했다.

▲ 대니 더피(오른쪽)가 30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훈련하는 장면. ⓒ캔자스시티 로열스 SNS
이러한 사연은 최근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미국 MLB닷컴을 비롯한 주요 외신은 21일(한국시간) “더피는 사실 자신의 등번호를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선수였다. 그러나 최근 동료들 사이에서 벤추라의 30번 사용을 놓고 이야기가 나왔고, 더피가 ’만약 누군가 30번을 달아야 한다면, 이는 친구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30번을 택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더피는 “이는 전적으로 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벤추라를 대표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 등번호를 선택하게 됐다”면서 “벤추라의 어머니인 마리솔 헤르난데스 여사께서도 30번 사용을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어머니는 ’오히려 내가 이를 허락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한편 캔자스시티는 구단 SNS를 통해 더피가 30번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훈련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하늘로 먼저 떠난 벤추라는 여전히 캔자스시티맨으로 뛰고 있었다.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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