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탑 부임 후 처음 사직구장을 찾은 LG 트윈스 류지현(50)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스프링캠프가 잘 진행되고 있고, 투타 신예들이 차근차근 적응해가고 있는 점도 만족스러웠지만, 이날 미소가 더욱 짙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동갑내기 친구’ 허문회(49) 롯데 자이언츠 감독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오늘 오자마자 친구를 보러 갔다. 요새도 종종 안부를 묻는다. 서로 감독이 처음 됐을 때도 축하를 주고받았다”면서 활짝 웃었다.
허문회 감독과 류지현 감독의 우정은 야구계에서 익히 알려져 있다. 1972년 2월생인 허 감독은 1971년생인 류 감독보다 호적상으로는 한 살 어리지만, 학교를 1년 먼저 들어가 동갑으로 지냈다. 학번 역시 90학번으로 같다.
각각 경성대와 한양대를 다닌 허 감독과 류 감독은 대학 시절 태극마크를 함께 달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1994년 LG 유니폼을 입고 함께 데뷔하면서 우정이 싹텄다. 원래 허 감독은 1994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 2차지명에서 1라운드로 해태 타이거즈의 부름을 받았지만, 본인을 비롯해 한대화와 김상훈 등이 포함된 4대2 트레이드가 12월 성사되면서 LG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묘한 인연이 계속된 둘은 데뷔와 함께 우승도 맛봤다. 허 감독은 주로 대타 요원으로 뛰면서 51경기에서 타율 0.304로 활약했고, 류 감독은 곧바로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해 신인왕까지 수상하면서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때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제패가 이뤄졌다.둘의 우정이 낳은 에피소드도 있다. 허 감독이 결혼식을 올릴 때 웨딩카를 끌어준 이가 바로 류 감독이었다. 허 감독은 “내가 당시 차가 없었는데 류 감독이 도우미를 자처해서 웨딩카를 몰아줬다. 또 여러모로 궂은일을 해줬다”고 고마움을 표하곤 한다.
이후 둘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라운드에서 보냈다. 류 감독은 줄곧 잠실구장을 지켰지만, 허 감독은 이동이 꽤 잦았다. 허 감독이 2001년 트레이드로 롯데 유니폼을 입으면서 잠시 헤어졌고, 2년 뒤 다시 트레이드를 통해 LG로 오면서 재회했다. 또,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코치로서 한솥밥을 먹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함께한 둘은 이제 사령탑으로 변신해 라이벌로서 맞닥뜨리게 됐다. 허 감독이 지난해부터 고향팀 롯데의 지휘봉을 잡았고, 올 시즌 류 감독이 친정팀 LG의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친구들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허 감독은 “류 감독과 처음으로 갔던 1993년 12월 오대산 극기훈련이 생각난다. 트레이드되고 하루 이틀 정도 있다가 합류했는데 얼음을 깨고 계곡물로 입수하는 등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훈련을 많이 했다. 오늘 류 감독과도 옛날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웃었다.이어 “류 감독이 지난해 부임한 뒤 바로 축하전화를 했다. 정말 좋은 감독이 되리라고 믿는다”고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류 감독도 화답했다. 류 감독은 “대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이 감독이 됐다. 의미가 있다. 언제까지 같이 감독으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또, “우리 둘 모두 고향팀에서 감독이 됐다는 점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한편 두 친구의 첫 맞대결은 사령탑 ‘1년 선배’ 허 감독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 롯데는 이대호의 결승타와 전준우의 솔로홈런을 앞세워 3-2로 이겼다. 물론 두 사령탑의 진짜 승부는 이제 시작이다.
스포티비뉴스=부산,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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