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레드 설린저 ⓒ KBL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불과 5~6년 전만 해도 이 선수를 KBL에서 볼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안양 KGC는 지난 3월 크리스 맥컬러를 내보내고 대체 외국선수로 자레드 설린저(29, 206cm)를 영입했다. 설린저 이름을 들은 상당수의 농구팬들은 깜짝 놀랐다. 고교시절부터 미국에서 손꼽히는 유망주였고 NCAA(미국대학체육협회), NBA(미국프로농구)에서 이름을 떨친 선수였기 때문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의 설린저는 떡잎부터 남다른 대형유망주였다. 2010년 당대 최고의 고교 농구선수에게 주는 '네이스미스 올해의 고교선수'에 선정됐고 미국 전역의 유망주들만 나갈 수 있는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에 출전해 MVP에 올랐다. 당시 설린저와 함께 공동 MVP 오른 선수가 현재 새크라멘토 킹스 주전 포워드인 해리슨 반즈다.

대학 진학 후엔 가치가 더 올랐다. 오하이오 주립대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2011-12시즌 팀을 NCAA 토너먼트 4강으로 이끈다. 

2012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한 설린저는 전체 21순위로 보스턴 셀틱스의 지명을 받는다. 이후 2017년까지 보스턴, 토론토 랩터스에서 통산 269경기를 뛰며 평균 10.8득점 7.5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NBA를 떠나 중국 리그로 갔지만 2018년 허리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놓쳤고 그 후 2년 간 재활과 휴식을 취했다.

경력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KBL에 온 외국선수 중 가장 화려하다. 게다가 1992년생으로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에 한국행을 택했다. NBA에서 활약했던 설린저가 KBL에서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기대한 팬들이 많았다.

설린저는 빠르게 KBL을 폭격했다. 다른 외국선수들과 수준이 달랐다. 설린저는 정규 시즌 10경기에서 평균 26.3득점 11.7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49.7% 3점슛 성공률 45.5%로 펄펄 날았다.

공격과 수비,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특히 공격에선 내외곽을 오가는 득점과 상대 수비를 역이용하는 영리한 공격으로 쉽게쉽게 득점했다. 스크린, 동료들을 살리는 패스, 팀 수비 등 기본기마저 좋았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연일 활약하며 KGC를 6전 전승으로 결승까지 이끌었다.

설린저는 "KBL은 세계 어느 곳과 견줘도 훌륭한 리그"라며 한국농구를 치켜세웠다. 이어 허훈과 송교창을 "NBA에서도 통할 실력을 갖췄다"며 높이 평가했다.

다음은 설린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한국 팬들은 당신을 '설교수'라 부른다. 자신의 별명을 알고 있었나?

알고 있다(웃음). 늘 코트에서 수업을 가르친다는 의미로 팬들이 지어준 걸로 안다. 내 인생에서 '교수'라고 불릴 날이 올 거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설교수'란 별명이 내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Q. KGC에 합류한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직접 겪어본 한국농구는 어떤가?

매우 훌륭하다.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똑똑하게 플레이한다. KBL은 앞으로 더 좋은 리그가 될 것 같다.

Q. 한국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자가격리가 제일 어려웠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4일 동안 3경기를 치렀다. 오래간만에 뛰니 다리가 적응을 못하더라.

▲ 보스턴 셀틱스 시절의 설린저(오른쪽).
Q. 설린저 합류 후 KGC는 다른 팀이 됐다. 우승에 가장 가까워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난 우리 팀이 정말 좋다. 이유는 모두들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같이 농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기든 지든 함께 하려하는 모습이 날 기분 좋게 만든다.

Q. KBL에 오기 전 2년간 공백이 있었다. 이점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정신적인 부문에서 휴식이 필요했다. 득점하는 능력이나 농구 기술은 있었는데 멘탈이 부족했다. 멘탈을 키운 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Q. 대학 때와 NBA, KBL에서 플레이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특별히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준 건 아니다. KBL에 왔을 때부터 나한테 더블팀 수비가 올 거란 걸 알았다. 그렇기에 다른 방식으로 득점하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고교시절 아버지가 그랬다. 1번부터 5번까지 어떤 포지션을 맡든 경기를 이해하고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Q. 상대 수비 움직임을 읽고 공격한다. KGC 김승기 감독은 당신을 "아주 영리한 선수"라 말한다.

일단 경기 시작 후 첫 5분은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려 한다. 어떤 선수가 볼을 들고 어디서부터 움직이는지, 어디서부터 로테이션을 하는지 등을 살핀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모든 농구 경기는 다양한 맛의 음료수처럼 각기 다른 내용을 갖고 있다고 말해줬다.

Q. 경기 시작 단 5분 만에 상대 움직임을 다 간파한다는 뜻인가?

13살 때부터 상대 움직임과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경기를 봤다. 어릴 때부터 해왔던 이 같은 방법들이 상대 수비를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Q. 4강 플레이오프에서 KGC와 붙었던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당신이 KBL에서 뛰는 걸 두고 "반칙"이라 했다. 그만큼 수비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상대방 입장에서 설린저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내 자신뿐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농구할 때는 항상 높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난 슛을 쏠 때 항상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던진다.

Q. 4강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교체없이 모두 40분 풀타임 뛰었다.

출전시간 관련해선 감독에게 물어야 한다. 감독이 40분 뛰라하면 뛰는 거다. 감독은 누가 몇 분 뛰는 게 아닌, 이기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Q. NBA에서 오래 뛰었다. 상대한 선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

안드레 이궈달라와 마커스 모리스. 이궈달라는 나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나와 이궈달라 모두 안쪽, 바깥쪽에서 모두 슛을 쏠 수 있고 볼 핸들링도 좋다. 모든 걸 잘하는 선수다. 모리스는 내가 하는 공격을 다 막았다. 정말 크게 느껴졌다.

Q. 한국선수 중 NBA에서도 통할 수준의 기량을 갖춘 선수가 있을까?

한국엔 잘하는 선수가 많다. NBA에 통할 선수로는 KT 허훈과 KCC의 송교창을 꼽겠다. 먼저 허훈은 플레이 스타일이 정말 좋다. 막기 까다로웠다. 특히 지난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이 인상적이었다. 부상을 안고 있는데도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써가며 볼을 긁어내는 걸 보고 팀 동료들과 대단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송교창도 훌륭하다. 볼 핸들링이 좋고 내외곽 어디서든 슛을 쏠 수 있다. 또 우리 팀의 전성현은 내 인생 탑 5안에 드는 슈터다. 어려운 슛도 성공시킨다. 슛을 넣을 줄 안다.

▲ 덩크슛을 시도하는 설린저 ⓒ KBL
Q. 빅맨이지만 기본기가 탄탄하다. 어린선수들이 보고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

농구를 잘하기 위해선 먼저 경기를 이해해야 한다. NBA 선수 중 90% 이상은 정말 똑똑하다. 그들은 경기를 읽을 줄 안다. 농구를 잘하고 싶으면 경기를 배워라.

많은 사람들은 타고난 운동능력이나 기술이 뛰어나야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명 NBA 선수들을 보면 모든 농구 경기를 이해하고 플레이하는 공통점이 있다. 언제, 어떻게 득점해야 하는지, 공격과 수비에서 힘을 쓸 때는 언제인지 등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포인트들을 잘 알고 플레이한다.

Q. 벌써부터 KGC와 재계약을 바라는 팬들이 많다. 다음 시즌에도 한국에서 당신을 볼 수 있을까?

그때 가봐야 안다(웃음). 지금은 챔피언결정전이 중요하다. 다가올 경기에 모든 걸 집중하고 있다. 재계약 문제는 다 끝나봐야 알 수 있다.

Q. 끝으로 한국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팬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KBL은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정말 훌륭한 리그다. 이곳에서 뛰는 게 행복하다. 특히 농구장이든, 밖이든 어디서나 응원해주는 KGC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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