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현철 기자] “프로 스포츠도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NBA 수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재미있는 KBL을 만들고 싶다.”

KBL 출범 초창기는 193cm 기준 장신-단신 외국인 선수로 나뉘어 선발했다. 2000년대 들어 신장 합산으로 제도가 바뀌었고 출장 쿼터 제한, 1인 외국인 선수 제도 등으로 바뀌던 것이 초창기 장신-단신 외국인 선수 제도로 돌아갔다. 개인기가 뛰어난 외국인 가드를 데려와 경기를 보는 재미를 높이겠다는 김영기(80) KBL 총재의 주도로 실시했고 2015~2016시즌 현재 조 잭슨(고양 오리온), 안드레 에밋(전주 KCC) 등이 맹활약하고 있다. 김 총재는 오는 2017~2018시즌 프로 농구에서 더 뛰어난 가드들이 한국 땅을 밟길 바랐다.

김 총재는 27일 서울 신사동 KBL 센터에서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경기인 출신 총재로서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배재고-고려대를 거쳐 1950~1960년대 농협-기업은행에서 활약한 김 총재는 한국 농구의 ‘원조 테크니션’이다. 비하인드 백 드리블을 가장 먼저 경기에서 보여 줬고 한국 농구 원 핸드 점프슛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 총재의 아들인 김상식 전 오리온스 감독은 정확한 외곽포를 자랑하며 ‘이동 미사일’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2002~2004년 KBL 3대 총재로 재직했던 김 총재는 2014년 7월 1일 KBL 8대 총재로 복귀했다. 취임과 함께 ‘재미있는 농구’를 기치로 걸었던 김 총재는 2015~2016시즌 신장 기준에 따라 외국인 선수 2인 제도를 장신-단신 따로 뽑는 제도로 돌아가도록 했다. 현장과 팬들의 반대는 극심했다. 올 시즌도 초반 언더사이즈 빅맨인 커스버트 빅터(울산 모비스), 웬델 맥키네스(원주 동부) 등이 돌풍을 일으키며 ‘외국인 선수 신장 제도’ 회귀는 실패한 전략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잭슨, 에밋 등 기량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이 KBL 경기력을 높이면서 김 총재의 계획은 재평가되고 있다. 특히 잭슨은 키 180cm에 불과한 데도 207cm 김종규(LG)를 상대로 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꽂는 등 하이라이트 장면을 연달아 만들고 있다.

“키가 큰 외국인 선수들의 기술에서 국내 선수들이 보고 배울 점은 사실 많지 않다. 그들에게 배울 점이라면 골 밑에서 포스트업 등의 기술 정도인데 반대로 키가 작은 선수들은 스피드와 개인기가 뛰어나지 않은가. 우리 가드들은 매치업 상대가 앞에 있을 때 마크맨을 등지고 볼을 간수해 템포를 죽인다. 그러나 잭슨은 상대를 앞에 두고 크로스오버 드리블에 이어 빠른 돌파를 펼친다. 키가 크지 않아서 NBA에 가지 못하고 풀타임 선수로 뛰지 못해도 기술만큼은 국내 선수들이 부딪혀 보면서 배울 점이 많다. 그리고 그 덕분에 KBL 경기도 예년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본다.”

일단 2016~2017시즌까지는 지금의 193cm 기준 장신 1명, 단신 1명 외국인 선수 선발 제도가 유효하다. 그리고 김 총재의 8대 총재로서 임기는 2017년 7월까지다. 재선 여부를 차치하고 김 총재는 더 많은 외국인 가드들이 KBL 무대를 밟길 바랐다. 이를 위해 김 총재가 생각한 것은 신장 기준을 더 낮추는 것. “기준을 188cm로 잡고 싶다”는 것이 김 총재의 생각이다.

“외국인 가드의 화려한 플레이가 코트를 수놓고 국내 가드들도 보고 함께 뛰며 배운다면 KBL의 경기력이 더 좋아지고 팬들께서도 더 재미있게 경기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리그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많은 기술을 익혀 훗날 한국 농구가 ‘토털 농구 화’ 돼 국제 경쟁력까지 키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우려할 점도 있다. KBL 초기 제럴드 워커(SBS, KGC의 전신), 칼 레이 해리스(나래, 동부의 전신), 토니 메디슨(동양, 오리온의 전신) 등 키 작은 공격형 가드들이 각광을 받았으나 대신 국내 가드들의 입지가 줄어들거나 자리를 잃기도 했다. SBS에서는 이상범 전 KGC 감독, 홍사붕 등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나래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정인교 전 신한은행 감독은 은퇴하기 까지 분업화 슈터의 길을 걸었다.

김병철 오리온 코치는 원클럽 스타이자 정확한 외곽포, 개인기로 KBL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가드다. 그러나 데뷔 초기 메디슨, 키스 그레이 등의 존재로 활동 반경이 줄어든 감이 있었다. 고려대 시절 1, 2번을 오가는 콤보 가드 스타일이던 김 코치는 프로에서 포인트가드로 전업하지 못하고 전형적인 ‘스윙맨 형’ 슈팅 가드로 자리를 굳혔다. 김 총재에게 단신 외국인 가드가 국내 가드들의 자리를 잠식할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잭슨의 경우는 1번(포인트가드) 포지션이고 에밋은 2, 3번을 오가는 스윙맨이다. 국내 선수들이 그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배우고 익히되 그 같은 스타일의 선수들과 뛸 때는 임무 분담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궁극적인 목표는 뛰어난 선수들과 리그에서 함께 뛰며 국내 선수들의 전체적인 기량 향상과 NBA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KBL이 되는 것이다. 경기인 출신 총재로서 나의 사명이다."

다른 존재가 무리에 가세했을 때 두 가지를 예측할 수 있다. 미꾸라지 떼 속에 메기를 풀어 넣어 미꾸라지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메기 효과’가 나올 수 있고 외래 어종 배스가 민물 생태계를 파괴한 경우도 있다. 아직 김 총재가 생각한 단계일 뿐이지만 만약 이 계획이 현실로 이어진다면 이는 어떤 결과가 될 것인가.

[영상] 김영기 총재 인터뷰 ⓒ 취재, 영상편집 배정호

[사진] 김영기 KBL 총재 ⓒ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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