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베어스 이영하 ⓒ 스포티비뉴스DB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좋은 공을 가지고 도망가거나 볼카운트가 몰려서 할 수 없이 카운트 잡으러 들어가는 게 가장 바보 같다."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이 팀 내 젊은 투수들에게 한 말이다. 물론 마운드 위에서 던지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전제했다. "던지는 대로 다 되면 메이저리그에 가야지"라는 농담을 곁들였다. 

하지만 자기 공을 믿지 못해 타자와 제대로 붙어보지도 않고 피하고, 또 피하다가 안타나 볼넷을 내주고 실점하는 상황은 본인과 팀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투수가 계속 타자와 싸움을 피해 가면 뒤에 있는 야수들도 지칠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이 언급한 젊은 투수에는 이영하(24)가 포함된다. 이영하는 2019년 17승을 책임지며 통합 우승의 발판을 마련한 차기 에이스였다. 당시 이영하는 두산은 물론 한국 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우완으로 평가받았다. 그때도 제구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시속 150km를 웃도는 묵직한 직구와 예리하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타자들과 싸움에서 이겼다. 프로 무대에 와서 다듬은 포크볼도 쏠쏠하게 써먹었다. 

올해는 다르다. 제구가 크게 흔들렸다. 지난 4월 2군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4경기에서 삼진 7개를 잡는 동안 4사구 11개를 내줬다. 구위 자체가 좋지 않았다. 직구 최고 구속이 140km 중반대로 떨어져 있었고, 슬라이더도 자연히 위력이 떨어졌다. 

결국 4월 4경기에서 1승3패, 15이닝, 평균자책점 11.40으로 고전하자 2군행을 통보했다. 김 감독은 "제구가 너무 안 된다. 이제 이영하 정도면 더는 이런 경기는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며 충분히 재정비할 시간을 줬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45일이다. 

이영하이기에 45일이란 긴 시간을 기다려줬다. 김 감독은 올해 "(이)영하가 잘해줘야 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워커 로켓과 아리엘 미란다, 최원준까지 3명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이영하까지 자리를 잡아주면 선발과 불펜을 운용하기가 수월해진다는 뜻이었다. 

이영하는 9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로켓(오른 무릎 미세 통증)과 곽빈(손톱)이 부상으로 한 차례씩 선발 로테이션을 걸러야 하는 상황에서 이영하의 호투는 꼭 필요했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3⅔이닝 7피안타(1피홈런) 4볼넷 3탈삼진 6실점에 그쳤다. 타선이 폭발해 14-8로 이기면서 패전은 면했다. 

다른 것보다 제구 불안이 반복된 게 가장 뼈아팠다. 5-2로 앞선 4회 선두타자 한동희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내고, 다음 타자 김민수를 3구 삼진으로 잡는 극과 극의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 이후 지시완에게 안타, 민병헌에게 볼넷을 내줘 1사 만루 위기에 놓였다. 지시완과 민병헌 모두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려 안 좋은 결과를 얻었다. 다음 타자 딕슨 마차도와 승부에서도 볼카운트 3-0까지 몰렸다 풀카운트로 끌고 갔지만, 끝내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해 5-3으로 쫓겼다. 

계속된 1사 만루 위기에서 추재현의 유격수 왼쪽 내야안타로 5-4가 됐고, 전준우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5-5 동점이 됐다. 다음 타자 정훈에게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허용해 5-6으로 뒤집힌 뒤 장원준과 교체됐다. 

45일 동안 노력한 흔적은 찾을 수 있었다. 직구 최고 구속을 149km까지 끌어올렸다. 2군에 내려가기 전보다 4~5km 정도 상승했다. 포크볼 대신 전에는 던지지 않았던 투심 패스트볼(8개)을 던진 것도 눈에 띄었다. 1군 타자들에게도 통하는지 확인하는 정도로만 활용했는데, 아직은 더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경기 초반에는 슬라이더가 효과적으로 들어가면서 빠르게 아웃 카운트를 잡기도 했다. 45일을 헛되게 보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결정적일 때 재정비하기 전과 똑같은 패턴으로 무너졌다는 점이다. 결국 제구다. 이영하는 이날 84개를 던지면서 스트라이크 46개-볼 38개를 기록했다. 절반이 볼이니 타자와 싸움에서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두산은 로켓과 곽빈이 이탈한 가운데 이영하와 박정수, 박종기까지 3자리를 대체 선발투수로 채웠다. 당장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영하에게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다음 등판에서는 "바보 같은 투구"를 더 이상 반복해선 안 된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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