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송승민 영상 기자] "사람마다 인생이 다르니까요. 저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국 축구의 유럽 진출 스타일은 5대 리그에 직행 진출하는 것 아니면 셀링 리그로 불리는 네덜란드, 벨기에, 터키 등에서 독자 생존을 모색한다. 유럽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경우 중동, 중국, 일본 등으로 향한다.
유럽에서 동양인이 인정받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 이재성(29)은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2018년 여름 '우승권' 전북 현대에서 안정적인 축구 인생을 던지고 독일 분데스리가2(2부리그) 홀슈타인 킬로 향했다. 3부리그에서 2부리그에 승격한 팀이라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그렇지만, 이재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두 시즌을 보낸 뒤 함부르크 등 다수 팀이 이적을 제안했지만, 결과적으로 성사된 것은 없었다. 계약 기간을 다 채운 이재성은 최근 마인츠와 3년 계약을 확정했다.
마인츠 계약 확정 전 스포티비뉴스와 만난 이재성의 표정은 긍정 그 자체였다. "7월1일부로 백수가 됩니다"라고 웃었지만, 이는 곧 새로운 팀과의 계약 출발선에 섰다는 의미였고 이재성에게 관심을 보여왔던 마인츠의 제안을 수락했다.
"살아남는 법을 알았고…지도자 되면 공부가 되겠죠"
지난달 레바논과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최종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던 이재성은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쉬면서 쿠킹클래스에서 쿠키를 굽는 능력을 발견했다. 스포티비뉴스에 내방해서도 "처음 해봤다"라며 스콘을 구워오는 정성을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지난 3시즌을 복기한 이재성은 "유럽 진출이라는 꿈을 안고 3년 동안 즐겁게 축구를 했다. 유럽 축구를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라며 "더 높은, 좋은 리그를 가고 싶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노력했다. 불만이나 불만족은 없다. 만족하면서 생활했다"라며 차분하게 자신을 단련했음을 전했다.
우승만 바라보는 전북에서 리그 최우수선수까지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지만, 1부리그 승격을 도전하는 처지는 생경함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정말 치열한 축구를 확인한 이재성이다.
"늘 우승하는 팀에 있다가 3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온 신생팀에 들어가서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살아남는 법을 알았어요. 약팀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리그의 한 팀이었지 않나요. 나중에 지도자를 할때 공부가 될 것 같았어요. 한국이라면 승격 도전을 못 했겠죠. 선수들과 친해지고 하나의 목표를 앞세워 얻은 값진 경험이었어요."
독일에는 3~5부리그에 한국 선수가 생각 이상으로 많이 진출해 뛰고 있다. 2부리거지만, A대표팀까지 오가는 이재성이 그들에게는 희망이었다. 때로는 상담을 원해 이재성을 무작정 찾아오거나 메시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이 후배들이었고 이재성은 그냥 보내지 않았다.
"독일에 가서 처음 알게 된 것은 많은 어린 선수가 4~5부리그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는 거였어요.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라는 목표를 가지고 뛴다는 거잖아요. 제게도 목표가 됐어요. (후배들의 멘토 역할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또한 축구 선수로서 해내야 하는 것들이죠. 저를 보고 꿈을 가졌다니 행복했고 모범을 보이고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거요. 사람마다 인생이 다르니까 (2부리그부터 도전하는) 저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도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도 있을 텐데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더라구요."
가장 기억에 남는 '유럽 5대 팀' 바이에른 뮌헨과 포칼 32강전
그래서 2020-21 시즌은 이재성에게도 잊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특히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에서는 4강까지 진출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최강 바이에른 뮌헨과의 32강에서 승부차기로 이기고 16, 8강을 지나 4강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나기까지 그야말로 토너먼트가 주는 짜릿한 승부를 맛봤다.
"조 추첨을 하고 뮌헨과 경기가 결정 난 뒤 기대가 컸어요. 선수들도 팬들도 기대했는데 솔직한 마음은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경기하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도시 전체가 하나가 된다는 것 보고 축구가 힘이 있다고 느꼈죠. 똑같은 선수끼리 하는거 잖아요. 감독님이 하나가 되자고 하더라구요."
뮌헨은 90분 승부가 끝나기 전 킬의 집념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점하며 연장 승부를 벌였고 승부차기에서 무너졌다. 이재성은 4번 키커로 나서 보란 듯 성공했다. 하지만, 페널티킥이나 승부차기에서 쉽게 나서지는 않아 의외였다. 그래도 뮌헨과의 승부였기에 대담하게 도전했다.
"페널티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깨보고 싶었어요. 좋은 기회가 생겨서 이번에는 피하지 말자고 생각했고 감독님께 차겠다고 말했어요. 성공해서 (부담을) 내려놓았죠. 다시 시즌을 돌아봐도 선수, 팬들 모두 감명 깊은 경기로 꼽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기억에 남을 거니까요."
이날 경기에는 그나브리, 르로이 사네, 토마스 뮐러, 조슈아 키미히 등 이름값 있는 선수들이 선발로 나섰다. 나중에는 득점 기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더글라스 코스타, 뱅자맹 파바르 등이 틸을 잡으려 등장했지만, 실패했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그야말로 '드림 매치'였다.
"뮌헨전 승리로 자신감을 얻었죠. 그래서 도르트문트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사람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그 경기를 통해 유명한 경기장(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뛰면서 저 자신이 어느 위치인지 느껴지더라구요. 선수들도 전반에 많은 실점을 해서 지친 것도 있었고 아쉽더구요."
어쨌든 첫 해외 진출팀 킬과는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승격까지 해냈다면 좋았겠지만, 역시 경험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인터뷰 시점에는 백수가 되기 전이었지만, 이제는 더 큰 목표를 찾아가는 데 성공했다.
한국 축구의 중심 1992년생의 책임감
현재 한국 축구대표팀은 1992년생이 끌고 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재성의 동갑내기 손흥민(29, 토트넘 홋스퍼), 황의조(29, 지롱댕 보르도), 손준호(29, 산둥 루넝), 김진수(29. 전북 현대) 등이 포지션마다 선도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재성도 누군가의 롤모델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는 길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연히 (손)흥민, (황)의조를 비롯해 모든 선수가 후배들을 위해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죠. 한국에서 유럽 진출을 하려는 후배들의 길을 열어줘야 좀 더 편안하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구요. 둘과는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였어요.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해외에서 연락하고 의지하고 (좋은 활약을 하면) 축하해주죠. 친밀함이 있는 것 같아요."
손흥민, 황의조가 같은 리그에서 뭉쳐 뛰는 것은 현실화하기 어려울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노력한다면 되지 않을 것도 없다. 일단 이재성이 마인츠로 향하게 되면서 당장은 어렵게 됐다.
"아마 (프리미어리그에 있는) 흥민이는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의조나 저도 한 번 정도는 그런 장면을 만들어보고 싶죠. 정말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들의 좋은 경기력은 A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와 맞물린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2022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을 일단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최종예선 통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숙적으로 자리 잡은 이란을 비롯해 침대축구의 장인 이라크, UAE, 시리아, 레바논으로 구성됐다.
중동 일색의 팀에서 경기 일정도 최악이다. 홈 경기를 하고 중동 원정을 떠난다. 특정 국가에 모여서 치르지 않는 제도 변경이 있지 않은 이상 감내해야 한다. 이재성을 비롯한 유럽파 입장에서는 최악이다. 장거리 이동에 역시차까지 있다. 홈에서 무조건 승점 3점을 만들고 가야 한다.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에 대한 의구심이 걷히지 않은 상황에서 최종예선을 제대로 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초반 이라크(홈)-레바논(원정)전에서 승점 6점을 잡은 뒤 시리아(홈)-이란(원정)전을 기다려야 한다.
"소속팀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대표팀에서도 보여주면 좋겠지만, 팀이 다르니까 이해를 해줘야 한다고 봐요.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셨으면 싶어요. 감독님과 선수들 관계는 신뢰가 두텁습니다. 팬들의 응원을 믿고 있어요.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활발히 소통 중입니다.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싶어요. 물론 밖에서는 아쉬운 이야기가 나올 텐데요. 잘하라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벤투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보여줘야지만 팬들이 수긍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A대표팀 선배 이청용(울산 현대), 박주호(수원FC) 등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본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감독을 경질하고 땜질식으로 지도자를 선임하는 한국 축구 문화가 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성적에 급급한 한국 축구 문화에서는 발전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재성은 어떻게 생각할까.
"감독님이 흔들리면 선수들도 감독님 믿고 따라가는데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그 철학들을 선수들이 구현해줘야 한다고 봐요. 팬들께서 조금만 기다려주셨으면 싶어요.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는 점을 보여줘야 하구요. 선배 형들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경험이 있으니 그런 것이고 저도 경험 중인데 후배들이나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힘이 되고 공감이 되는 이야기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매년 우리 대표팀 문제들이 있는데 이제는 바꿔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한국 축구에 대한 생각과 걱정은 친구들에 대한 응원으로 이어졌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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