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오준서 해설위원] 제리 디포토 시애틀 매리너스 단장은 홈런 타자보다 타구를 멀리 보내면서 잘 달릴 줄도 아는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를 선호한다. 이러한 유형의 선수가 시애틀 홈 구장인 세이프코필드에 더 적합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대호(34)는 그동안 디포토가 데려온 선수와는 조금 다른 성향을 지닌 타자다. 올해 48살의 이 중견 단장은 "우타 거포가 우리 팀에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많은 전문가는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성공에 '디포토의 눈'이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이대호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정글 같은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미국과 미국 야구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한국, 일본에서와 달리 익숙하지 않은 ‘도전자’ 입지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대호는 꽤 오랫동안 확고한 주전으로 캠프에 참가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무언가를 보여 줘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 수 있다. 경기에서 스콧 서비스 감독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플레이를 펼치려는 욕심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디포토 단장의 ‘눈’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누적 기록과 비디오 자료를 토대로 이대호의 장단점 분석이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르다. 이대호는 단장이 자신의 플레이를 직접 봤을 때 숫자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또 다른 장점을 홍보해야 한다. ‘추가 점수’를 받아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리그, 스플릿 계약, 해마다 20홈런을 때릴 수 있는 주전 1루수와 팀 내 최고 유망주가 후보로 나서는 치열한 경쟁 구도 등 현재 이대호를 둘러싼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빅리그 로스터 진입을 자신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가 한국과 일본 프로 야구에서 쌓은 통산 기록은 메이저리그 진출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앞으로 맞닥뜨릴 ‘개막전 명단 등록’이라는 숙제에는 이러한 누적 기록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장타력과 안정된 수비를 현장에서 보여야 한다.

약 60명의 선수가 스프링캠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각자 포지션과 훈련 일정에 따라 경기장을 옮겨 다니면서 2월을 보낸다. 매일 연습경기를 치르고 훈련하기 때문에 구단 관계자는 모든 선수를 두루 관찰할 수 있다. 이때 단장의 관심을 얻는다면 자연스럽게 감독․코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플래툰 경쟁자’ 헤수스 몬테로는 어느 때보다 동기부여가 확실하다. 뉴욕 양키스 시절 잠재력을 올 시즌에도 터트리지 못하면 빅리거로서 자리 잡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강력한 주전 1루수 후보인 아담 린드도 자신의 커리어 후반부를 의미 있게 매조 지으려는 생각이 강하다.

'시간이 돈이다(Time is money)'라는 말이 있다. 이대호는 2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포기하고 고된 도전을 선택했다. 많은 돈 대신 스프링캠프에서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에서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대호가 디포토를 비롯한 여러 구단 관계자의 낙점을 받아 ‘개막전 로스터 진입'이라는 결과물도 이룰 수 있을지 기대된다.

[사진] 이대호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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