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이어지는 전력 이탈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고 있는 키움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키움이 히어로즈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을 때, 냉정하게도 빛보다는 먹구름이 더 많이 보였다. 모기업이 없는 팀은 재정이 항상 빠듯했다. 구단을 운영할 돈이 나올 구멍이 별로 없었다. 

구단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직원들이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그리고 살림살이는 최대한 줄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진 자산도 팔아야 했다. 당장 처분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은 역시 선수들이었다. 추후 알려졌지만 당시 여러 팀과 트레이드에서 거액의 현금을 신고하지 않은 것이 드러나 리그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선수들의 메이저리그(MLB) 진출에도 적극적이었다. 선수의 뜻을 존중하는 차원도 있었지만, 야구계 관계자들은 역시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풀이한다. 강정호 박병호가 차례로 MLB에 건너가며 남긴 포스팅 금액은 구단이 운영적 고비를 넘기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현금 트레이드에 핵심의 메이저리그 진출. 사정이 이렇다보니 키움은 초창기 매년 주축 선수들이 빠져 나가는 구단이 됐다.

그런데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선수 순환이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이뤄지는 하나의 고리가 됐다. 한 전직 감독은 “김하성을 키운 건 강정호”라고 말한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기에 김하성에게 자리가 생길 수 있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김하성이 무럭무럭 성장했다는 뜻이다. 

박병호가 나갔을 때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았고, 김하성의 공백은 일찌감치 모든 구성원들이 대비하고 있었다. 김하성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2년간 벌어졌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키움은 비교적 꾸준히 5할 이상 승률을 유지하곤 했다.

키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키움의 2군 선수들은 언제든지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한다. 사실 대형 프리에이전트(FA)를 잡기는 어려운 살림이다. 심지어 지금 있는 선수를 지키기도 쉽지 않은 살림이다. 어린 선수들은 주축 선수들이 언제까지나 이 팀에 있을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언젠간 찾아올 기회를 잡기 위한 열심히 할 동기부여가 된다. 육성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구단 시스템도 그 기회 제공에 인색하지 않다.

올해도 또 공백이 생겼다. 김하성이 MLB에 갈 것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을 위반한 술자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팀 마운드의 핵심 선수인 한현희와 안우진이 사고를 쳤다. 결국 징계를 받았고 후반기 합류가 불투명하다. 수칙 위반도 그렇지만, 원정 숙소를 무단이탈한 것은 구단에 심각한 사안이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갔던 제이크 브리검도 돌아오지 못한다. 올해 야구에 전념할 수 없는 이유가 공개됐고 임의탈퇴 처리됐다. 주축 타자인 이정후도 아직 부상에서 회복이 덜 됐다. 말 그대로 장기판에 말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장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키움은 무너지지 않고 있다. 전력 이탈에 버티는 DNA가 있나 싶을 정도다.

키움은 후반기 22경기에서 11승10패1무(.524)를 기록했다. 계속해서 약해지는 전력, 그리고 갑작스러운 전력 이탈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전력을 생각하면 고무적인 성적이다. 현재 5위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고 있다. 다른 팀에 비해 경기를 많이 치른 게 시즌 막판 어떻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5할 승률에서 버티면 분명 치고 나갈 기회가 1~2번은 온다. 키움은 그 시점을 재고 있을 것이 확실하다.

사실 기존 선수들의 공백을 그대로 메울 선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 한현희 브리검 안우진 이정후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가 짐을 나눠든 성과다. 일부 팀들이 라인업의 이름값으로 승부할 때, 키움은 2군에서 독하게 자란 실력들이 꿈틀댄다. 겉으로 봤을 때 허약해보여도, 막상 붙어보면 그렇지 않다. 

5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SSG와 경기에서도 경기 중반 어수선한 경기력으로 역전을 허용했다. 그러나 경기 막판 전체 선수들의 강한 응집력을 빛을 발하며 경기를 다시 뒤집고 끝내 승리했다. 키움 선수들은 떠난 자를 잊고, '남은 자'들의 야구를 잘 알고 있다. 다소 우울했던 과거에서 쌓인 저력이라면 저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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