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그런데 질레트는 야구는 전문가에 가까운 안목을 갖고 있었지만 농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게다가 질레트는 1911년 일제에 의해 추방되는 수난을 겪게 되면서 국내에서 농구는 일시 침체기를 맞는다. 1916년 목조였던 YMCA회관이 현대식 건물로 바뀌면서 2층에 우리나라 첫 체육관이 들어서고 체육 전문 강사인 미국인 B.P.벤하트(한국 이름 반하두·潘河斗)가 부임하면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1편에서 계속> 

‘서울YMCA 체육 운동 100년사’는 1907년 7월 23일 YMCA팀과 일본 유학생팀이 우리나라 첫 농구 경기를 치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농구 100년’에는 고증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첫 번째 농구 경기를 1920년 3월 12일 중앙기독교청년회(황성기독교청년회 후신) 회관에서 열린 재경 미국인팀과 ‘중기청’회원팀의 대전으로 적고 있다. 이 경기는 배구와 복싱, 기계체조 등 다른 실내 종목과 함께 열리며 제 1회 실내운동대회로 불렸는데 농구가 가장 인기였다고 한다.

골대가 하늘을 향해 있는 신기한 경기에 매료된데다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은 열광적으로 재경기를 요구했고 나흘 뒤인 3월 16일 다시 경기를 해 이번에는 ‘중기청’회원팀이 이겼다. 아쉽게도 당시 경기 전적은 남아 있지 않다. 

이런저런 주장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농구가 보급된 1907년 이후 1920년까지 공식 대회가 아닌 친선경기 수준의 경기는 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1920년 11월 전국체육대회의 기산점이 되는 제 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열린 것보다 8개월여 앞서 농구 경기가 열렸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YMCA가 주도한 실내운동대회는 1928년 제 12회 대회까지 이어지면서 초창기 학교 체육과 사회 체육이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여자 농구는 1911년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이화학당에서 시작했다고 ‘이화 90년사’는 밝히고 있다. 이화학당 조세핀 페인 학장은 1910년 체조를 교과 과목에 넣었고 1911년에는 농구와 정구 등을 학생들이 하게 했다. 뒷날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게 되는 우리나라 여자 농구의 첫걸음이었다. 

제 1회 실내운동대회에서 국내에 살고 있는 미국인팀을 이긴 ‘중기청’회원들은 자신감을 갖고 더욱 열심히 운동했고 재경기를 한 지 나흘 만인 그해 3월 20일 일본 원정길에 올랐다. 우리나라 농구 사상 첫 국외 원정 기록이다. 일본도 YMCA를 기반으로 농구가 보급되고 있었기에 ‘중기청’팀은 일본에서 주로 지역 YMCA팀과 경기를 치렀다. 도쿄 YMCA팀에 2패, 요코하마 YMCA팀에 1패를 기록했고 교토 YMCA팀과 중국인 혼합팀에 각각 이겨 2승 3패의 전적을 남기고 귀국했다. 우리나라 첫 농구 외국 원정 경기에 나선 이는 인솔자 겸 선수 현동완을 비롯해 김영구 박치중 장권 김수일 김종만 손효준 박정우였고 벤하트가 코치를 맡았다. 

이듬해인 1921년 도쿄 YMCA팀을 초청해 치른 경기에서는 1승1패를 기록했다. 이어 1923년 2차 일본 원정에서 1승4패에 그쳐 일본과 격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191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극동선수권대회(Far Eastern Championship Games, 오늘날 아시아경기대회의 모체) 농구 종목에 교토YMCA가 출전했을 정도로 일찌감치 국제적인 흐름을 타고 있었다. 

1926년 조선에 온 와세다대학은 초창기 우리나라 농구 발전에 자극제가 됐다. 와세다대학은 재경 외국인팀에 2승, YMCA팀에 2승 등 4전 전승을 거뒀다. 와세다대학의 센터는 뒷날 우리나라의 두 번째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상백이었다. 이상백의 수준 높은 경기력에 충격을 받은 우리 선수들은 더욱 훈련에 정진해 1927년 3차 일본 원정길에 올랐고 이번에는 6승 2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왔다. 이상백이 우리나라와 일본 농구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기려 열리고 있는 대회가 '이상백배한일대학선발농구대회'다.  

1929년 4차 원정에서 2승2패를 기록했는데 당시 일본 농구 최강인 도쿄제국대에는 완패(스코어 미상)했으나 역시 강호인 메이지대학과는 21-22로 접전을 벌여 향상된 경기력을 확인했다. 4차 원정 명단에는 뒷날 손기정(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의 일장기 말살 의거를 하는 이길용과 베를린 올림픽에 장이진 염은현과 함께 출전하게 되는 이성구가 포함돼 있다. <계속>  

[사진] 1927년 열린 제 3회 전조선중등부농구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한국 농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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