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피겨스케이팅은 다른 종목과 비교해 선수 생명이 짧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유럽과 북미 그리고 일본과 비교해 장수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부상과 성장기를 이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좋은 기량을 유지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어린 선수들이 점령하고 있다. 올해 종합선수권대회 우승은 만 11세의 유영(문원초)이 차지했다. 2004년 5월 27일 태어난 유영은 김연아(26)가 2003년 이 대회에서 세운 역대 최연소 우승(만 12세 6개월) 기록을 갈아 치웠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유영과 임은수(12, 응봉초) 김예림(12, 군포양정초)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맏언니' 박소연(19, 단국대)과 최다빈(16, 수리고)이 꾸준하게 자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유영은 지난달 열린 동계체전 여자 초등부에서 3위에 그쳤다. 경쟁자인 임은수와 김예림에게 밀렸다. 경기를 마친 뒤 그는 "종합선수권대회가 이 끝난 뒤 붕 떠 있었던 것 같다. 언니들이 종합선수권대회를 마치고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쟁보다 피겨스케이팅을 즐길 시기에 유영은 국내 정상에 올랐다. 한국 챔피언에 올랐지만 이제 11살의 소녀다. 일찍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에 대한 어린 소녀의 심정은 어떨까.

첫 국제 대회 우승, 동계체전 부진 털고 다시 날았다

유영은 지난 9일(한국 시간)부터 13일까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컵 오브 티롤 ADVANCED(고급) 노비스 부문에 출전했다. 쇼트프로그램 46.72점 프리스케이팅 88.03점을 더한 총점 134.75점을 받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노비스 경기는 10일 끝났다. 그러나 유영은 곧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이후 열린 주니어와 시니어 경기를 관전한 뒤 15일 귀국했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배우기 위해서였다. 공항 인터뷰에서 유영은 "배울 점도 많았고 더 많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국제 대회에 많이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이번 대회을 앞두고 다쳤다. 과천아이스링크에서 지상 훈련을 하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이 찢어졌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지 못했다. 유영과 함께 오스트리아에 다녀온 어머니 이숙희 씨는 "다친 부위가 심하지 않다.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노비스는 시니어와 비교해 기술점수(TES)와 예술점수(PCS) 구성 요소가 적다. 한동안 시니어 경기에 출전한 유영은 노비스에 맞춰 스케이트를 탔다. 유영은 다른 유망주들을 압도하며 큰 점수 차로 정상에 올랐다. 러시아와 일본 유망주들이 출전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차원이 달랐다.

유영의 장점은 빠른 움직임이 돋보이는 스케이팅이다. 점프할 때 스피드가 줄어들지 않고 점프와 스핀의 질도 뛰어나다. 여기에 타고난 표현력까지 갖췄다. 김연아처럼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될 재능을 갖고 있다.

유영은 지난해 8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 트로피에 출전했다. 노비스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그는 컵 오브 티롤에서 첫 국제 대회 금메달을 차지했다. 유영은 "지난해 대회는 아시아에서 열렸다. 한국 선수들과 출전해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 멀리까지 가서 조금 외롭고 더 떨렸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성장한 그는 아직 우리말이 서툴다. 인터뷰할 때 실수하지 않으려고 생각을 한 뒤 천천히 한마디씩 한다. 태어난 지 4주 만에 싱가포르로 건너간 그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2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지만 우리말을 잘하지 못해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유영은 영락없는 어린 소녀였다. 그러나 스케이트를 신으면 비범한 재능이 나타난다. 그는 지난해 종합선수권대회 6위에 오르며 주변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10살이었던  유영은 놀라운 기술 구성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1년 만에 언니들을 제치고 한국 챔피언이 됐다. 

유영의 등장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동계체전이 열린 지난달 4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에는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포스트 김연아'에 목말라 있는 상황이 유영을 으로 반영됐다. 일본 취재진까지 오며 자국 유망주들과 경쟁을 펼칠 한국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경기에 주목했다.

유영은 지난해까지 국가 대표였지만 규정에 따라 태극 마크를 반환해야 했다. 국가 대표가 되기엔 어린 나이 때문에 실력과는 상관없이 태릉실내아이스링크를 떠날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이사회를 열어 '유망주 육성 지원 정책'에 따른 특별 규정으로 유영이 태릉에서 훈련할 수 있게 했다. 이번 컵 오브 티롤 출전도 연맹과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의 지원이 있었다. 선수를 도와줄 스폰서까지 생기면 유영의 성장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완성을 위해 다듬어 가는 시기, 애정과 인내심이 필요

유영의 기술 구성은 정상급 선수들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 대회 노비스에서 첫 우승한 것은 시작 단계다.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세계 정상권에 올라가려면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부족한 내용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은 물론 큰 부상도 피해야 한다. 또한 성장기를 무사하게 넘기며 기량을 꾸준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영은 한국 챔피언이지만 아직 출발점에 선 11세 소녀다. 한 그루 나무가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하려면 꾸준한 관심과 인내심이 함께 필요하다. 유영은 다음 달 열리는 종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있다. 임은수와 김예림이 중등부로 올라가기 때문에 경쟁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유영은 "우승은 했지만 클린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며 "종별선수권대회가 올 시즌 마지막 대회가 될 것 같다. 이 대회에서는 깨끗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영상] 유영 인천국제공항 인터뷰 ⓒ 스포티비뉴스 배정호 기자

[사진1] 유영 ⓒ 스포티비뉴스 

[사진2] 유영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사진3] 유영(가운데) ⓒ 올댓스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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