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를 제치고 2003년 시즌 AL 신인왕이 된 캔자스시티 로열스 앙헬 베로아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오상진 객원기자] 2007년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의 한 연구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신인의 평균 선수 수명은 약 5.6년이다. 1902년부터 1993년 사이에 빅리그 선수 생활을 시작한 5,989명의 선수가 3만 3,272년을 뛰면서 나온 결과다. 이 가운데 5년 이상을 뛴 선수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0년 이상 유니폼을 입은 이는 1%가 채 되지 못했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신인왕 수상자들은 어땠을까. 지난해까지 신인왕을 받은 138명의 선수 가운데 현역 25명을 제외한 113명의 평균 선수 생활 기간은 약 13.2년이었다. 자신이 데뷔한 해에 가장 눈부신 신인으로 인정받은 이들은 뛰어난 기량으로 보통 선수보다 2배 이상 오래 선수 생활을 했다. 3분의 1에 해당하는 44명의 선수는 15년 이상을 뛰었고 20년 이상 커리어를 이어 간 선수도 12명이나 된다. 그러나 신인왕 수상 이후 별다른 활약 없이 은퇴하거나 부상 또는 불의의 사고로 날개를 펼치지 못한 선수도 있다.

◆ 3년밖에 밟지 못한 메이저리그 무대

1980년 시즌 아메리칸리그(AL) 신인왕 조 샤르보뉴(당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2년째 징크스’에 시달린 대표적인 선수로 꼽힌다. 샤르보뉴는 메이저리그에서 3년밖에 뛰지 못했다. 신인왕 출신 가운데 가장 활동 기간이 짧다. 그는 데뷔 시즌 타율 0.289 23홈런 87타점을 기록하며 AL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그해 신인 최고 타율인 0.321를 기록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브 스태플레톤과 15승 13패 평균자책점 2.84를 수확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브릿 번스, 23세이브 평균자책점 1.98의 미네소타 트윈스 덕 코베트 등을 제치고 가장 뛰어난 신인으로 뽑혔다. 그러나 이듬해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이때부터 불운은 시작됐다. 1981년 시즌에 고통을 참고 뛰었지만 타율 0.210 4홈런 18타점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이 끝난 뒤 수술을 받고 재기를 노렸지만 1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2경기에 나서 타율 0.214 2홈런 9타점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없었다.

부상으로 날개를 펼치지 못한 샤르보뉴도 안타깝지만 이보다 더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선수가 있다. 1962년 시즌 내셔널리그(NL) 신인왕 켄 허브스는 샤르보뉴와 마찬가지로 3년 밖에 빅리그 무대를 누비지 못했다. 허브스는 1961년 9월에 데뷔했지만 그해 10경기만 뛰었기 때문에 이듬해에도 신인왕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타율 0.260 5홈런 49타점으로 평범한 타격 성적을 기록했다. 129개의 삼진을 당해 이 부문 1위를 차지했고 병살타를 20개나 쳐 1위에 올랐다. ‘불명예 2관왕'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슈어 핸즈(Sure hands)'라는 별명처럼 탄탄한 수비 능력을 보였다. 허브스는 빼어난 수비력으로 신인왕뿐만 아니라 2루수 부문 골드글러브도 받았다.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64년 2월 15일, 4번째 시즌을 앞둔 겨울에 허브스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22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미처 기량을 꽃피워 보기도 전에 사고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 네가 받은 신인왕, 그 상은 내 것이었어야 해

다른 신인왕 수상자와 비교해 짧은 선수 생활도 아쉬운데 '신인왕 먹튀' 소리까지 들은 선수가 있다. 2003년 시즌 AL 신인왕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앙헬 베로아다. 베로아의 수상은 두고두고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데뷔 3년 만에 풀타임 시즌을 치르며 타율 0.287 17홈런 73타점으로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경쟁자가 막강했다.

뉴욕 양키스엔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가 있었다. 마쓰이에 비하면 베로아의 성적은 그리 돋보이지 않았다. 마쓰이는 베로아와 같은 타율에 홈런이 한 개 적었을 뿐 106타점을 쓸어 담으며 팀을 AL 동부지구 1위로 이끌었다. 올스타에도 뽑혔다. 그러나 2000년 시즌 사사키 가즈히로, 이듬해 스즈키 이치로의 신인왕 연속 수상 이후 다른 프로 리그를 거쳐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중고 신인’이 신인왕을 받아도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진짜 신인 선수에게 상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그해 신인왕은 베로아에게 돌아갔다.

신인왕 수상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 2005년 시즌에 기록한 타율 0.270 11홈런 55타점이었다. 베로아는 결국 2009년 31살의 나이에 은퇴했다. 빅리그 유니폼을 입은 7년 동안 통산 타율 0.258 46홈런 254타점을 챙겼다. 이에 비해 마쓰이는 2009년 시즌 월드시리즈 MVP에 선정됐고 5번의 20홈런 이상 시즌을 보내는 등 훌륭한 커리어를 쌓았다.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한 10년 동안 통산 타율 0.282 175홈런 760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2004년 시즌 신인왕 발표도 논란을 낳았다. 그해 AL 신인왕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바비 크로스비가 받았다. 크로스비가 기록한 22홈런과 64타점은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지만 규정 타석을 채운 76명 가운데 75위에 해당하는 낮은 타율(0.239)이 팬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신인왕을 받기에는 확실히 부족한 성적이었다. 크로스비는 경쟁자였던 다카쓰 신고(6승 4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2.31), 다니엘 카브레라(12승 8패 평균자책점 5.00), 잭 그레인키(8승 11패 평균자책점 3.97)을 압도할 만한 성적이 아니었지만 2위인 다카쓰와 92점이나 차이가 나는 총점 138점으로 신인왕이 됐다. 이후 크로스비는 단 한 차례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지 못한 채 2010년 30살의 젊은 나이로 은퇴했다.

현역 선수 가운데 이런 자취를 밟고 있는 선수가 있다. 우리나라 팬들에게는 강정호를 크게 다치게 한 태클로 유명해진 오클랜드의 크리스 코글란이다. 코클란은 2009년 시즌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0.321의 높은 타율과 9홈런 47타점의 괜찮은 성적을 올리며 NL 신인왕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위인 필라델피아 필리스 투수 J.A. 햅은 그해 12승 4패 평균자책점 2.93의 뛰어난 성적을 올려 팀의 지구 우승에 크게 한몫했다. 또 신인왕 투표에서 3위에 머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토미 핸슨은 11승 4패 평균자책점 2.89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9년 시즌 이후 햅과 핸슨이 10승 이상 시즌을 4번이나 기록하는 동안 코글란은 지난해 단 한번의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을 뿐 타율 3할 이상을 챙긴 시즌이 없다. 기대에 못 미치는 평범한 커리어를 쌓아 가고 있다. 올해 토론토에서 5승 평균자책점 2.05로 활약하고 있는 햅과 1할대 타율에 머무르고 있는 코글란의 경기 내용은 큰 대조를 이룬다.

신인왕 수상자 가운데에는 오랜 기간 꾸준하게 활약하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아름답게 퇴장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러나 일부는 생애 단 한번 뿐인 영광 뒤에 따라오는 무게를 견뎌 내지 못하고 결국 '신인왕 출신'이라는 꼬리표만 남긴 채 젊은 나이에 유니폼을 벗어야만 했다.

※기록 출처: MLB(MLB.com), 팬그래프닷컴(fangraphs.com), 베이스볼레퍼런스(baseball-reference.com)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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