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자이언츠 외국인 타자로 뛰었던 펠릭스 호세 ⓒ 롯데 자이언츠

[스포티비뉴스=홍지수 기자] 1998년 KBO 리그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2년째인 1999년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부산 사직야구장에 뜨거운 열기를 불어넣은 선수가 있다. '악동' 이미지가 강했지만, 강력한 파워 히터였던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펠릭스 호세(51)다. 

호세는 1999년 시즌 132경기에서 타율 0.327(462타수 151안타) 36홈런 122타점을 기록하며 '거포'로서 위용을 떨쳤다. 당시 이승엽(54홈런, 삼성), 댄 로마이어(45홈런, 전 한화), 찰스 스미스(40홈런, 전 삼성), 트레이시 샌더스(40홈런, 전 해태)에게 밀려 홈런왕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마해영(35홈런, 은퇴)과 함께 롯데 중심 타선을 이끌었다.

롯데 팬들에게 아직도 잊지 못할 만큼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그 무렵 가장 위협적이었던 타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호세는 좌우 타석을 가리지 않는 스위치 히터였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인 호세가 한국 야구 무대에서 남긴 발자취는 쉽게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1999년 5월 9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와 경기에서 한국 프로 야구 통산 1만호 홈런을 때렸고 5월 29일에는 전주구장에서 열린 쌍방울전에서 KBO 리그 첫 한 경기 좌우 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6월 20일과 21일 이틀 연속 한화전에서 만루 홈런을 날려 한국 프로 야구에 굵직한 기록을 남겼다. 호세의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롯데는 드림리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호세는 그해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타고투저'였던 1999년 시즌, 타격전이 벌어지던 리그에 불을 지핀 선수가 호세였다. 호세는 2001년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고 한국 프로 야구 무대로 돌아왔다. 2001년 시즌에 역대 한 시즌 최고 출루율(0.503)과 장타율(0.695) 기록을 남기면서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1년 시즌에는 롯데가 리그 최하위(8위)에 그쳐 빛이 바랬지만 호세의 방망이는 여전히 뜨거웠다. 117경기에서 타율 0.335 36홈런 102타점을 기록했다.

1999년 시즌과 2001년 시즌 KBO 리그를 강타했던 호세는 2001년 시즌을 끝으로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2006년, 다시 롯데로 돌아왔다. 그러나 만 40세를 넘긴 호세의 나이는 야속할 뿐이었다. 2006년 시즌 타율 0.277(415타수 115안타) 22홈런 78타점을 기록했다. 아주 못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가 과거 2시즌 동안 올린 성적에 비교하면 지나 버린 세월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2006년 시즌 후 롯데와 재계약에 성공한 호세는 그러나 이번에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2007년 전지훈련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개막전에 나서지 못했고 4월 13일 1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오래 뛰지 못했다. 타율 0.256 1홈런 12타점에 그쳤고 5월 11일 웨이버 공시됐다. 2007년 5월 10일 문학 SK 와이번스전에서 뒤늦게 시즌 1호 홈런을 쳤지만 호세가 한국 프로야구 무대서 마지막으로 날린 홈런이 됐다.

마지막 시즌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호세가 롯데 유니폼을 입고 펼친 활약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 좋은 타격을 한 호세였지만 '악동' 이미지도 컸다. 1999년 10월 20일 삼성과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관중석에서 날아온 오물 세례에 흥분하며 방망이를 던져 벌금 300만 원에 2000년 시즌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2001년 9월 18일 삼성전에서는 삼성 투수 배영수의 빈볼에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려 정규 시즌 잔여 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300만 원, 2006년 5월 12일에는 볼 판정을 내린 주심에게 욕설을 퍼부어 퇴장 지시를 받고 제재금 100만 원, 그해 8월 5일 SK전에서는 투수 신승현과 빈볼 시비가 벌어지면서 또 퇴장을 당하고 벌금 300만 원 징계를 받았다.

호세가 보인 거친 행동은 '옥에 티'였지만 스위치 히터이며 파워히 터로서 KBO 리그를 휘어잡았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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