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예밀리야넨코 표도르(39, 러시아)는 2004년 6월 20일(이하 한국 시간) 프라이드 헤비급 그랑프리 8강전에서 고 케빈 랜들맨에게 번쩍 들려 머리부터 땅으로 떨어졌다. '수플렉스(suplex)'라는 레슬링 기술에 걸렸다. 그대로 정신을 잃어도 이상할 것 없는 무시무시한 던지기 공격이었다.

그런데 표도르는 신기하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잠시 밑에 깔려 있다가 금세 자세를 뒤집어 랜들맨의 위에 올라가더니 팔을 비틀어 기무라 록으로 승리했다. 경기 시작 1분 33초 만이었다. 사람들은 위기라고 생각했지만 표도르는 달랐다. 경기 후 "떨어지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덤덤하게 말해 주위를 더 놀라게 했다.

12년이 지났다. 표도르는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유라시아 파이트 나이트(EFN) 50 메인이벤트에서 1라운드 KO패 위기를 넘기고 2·3라운드에서 우세한 경기를 펼쳐 파비오 말도나도(36, 브라질)에게 2-0(28-28,29-28,29-28)으로 판정승했다.

랜들맨의 수플렉스에 걸렸을 때처럼 표도르는 큰 위기를 맞았다. 1라운드 말도나도의 왼손 카운터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파운딩 연타에 얼굴은 엉망이 됐다. 이대로 심판이 경기를 멈추고 말도나도의 TKO승을 선언해도 될, 표도르의 일방적인 수세가 계속됐다.

1라운드 위기를 넘기고 2라운드에서 표도르는 정신을 차리고 반격했다. 표도르는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이다. 내년이면 불혹, 신체 능력은 당연히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위기 관리 능력은 여전히 최고였다. 정신력과 의지가 빛을 발했다. 때리다가 지친 듯 스텝이 죽은 말도나도에게 펀치로 선공하고 넥 클린치에서 니킥 연타를 차올렸다. 로킥과 하이킥을 차며 말도나도를 펜스로 몰아붙였다.

3라운드에서도 경기를 주도했다. 결국 대역전 판정승을 거뒀다. 물론 홈 어드밴티지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 3명의 심판 모두 1라운드 말도나도, 2·3라운드 표도르에게 점수를 줬는데 1라운드에서 말도나도에게 10-8을 준 심판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면 결과는 뒤바뀔 수 있었다.

표도르는 위기를 딛고 일어나는 법을 안다. 키 182cm로 크지 않은 그가 헤비급 거구들과 싸워 올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이제부턴 먼저 위기를 몰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성기를 훌쩍 넘긴 표도르가 이렇게 여러 번 위기를 맞는다면 계속 이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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