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남자 피겨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4회전) 점프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됐다.

1988년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커트 브라우닝(50, 캐나다)은 피겨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경기에서 4회전 점프에 성공했다. 트리플 악셀이 최고 기술로 여겨지던 시대에 4회전 점프는 피겨스케이팅의 개념을 바꿨다.

28년이 지난 현재 남자 싱글 상당수 선수는 이 점프를 뛰고 있다.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5, 스페인)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 토루프와 쿼드러플 살코 그리고 쿼드러플 살코+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뛰었다.

중국의 기대주 진보양(18)은 쿼드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올해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깨끗하게 뛰었다. 가장 어려운 점프인 러츠를 4회전으로 뛰었다는 점은 대단하다. 지금 흐름대로 가면 남자 피겨 점프는 5회전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남자 피겨스케이팅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와 비교해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은 9년 동안 4회전 점프에 성공한 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27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실내아이스링크에서는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파견 선발전 남녀 프리스케이팅이 열렸다. 이날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선수는 차준환(15, 휘문중)이었다.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했다. 도약은 힘이 넘쳤고 착지도 안정감이 있었다. 차준환이 이 점프를 뛰자 태릉실내아이스링크를 찾은 관중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기술은 인정받지 못했다. 회전수 부족으로 언더 로테 판정을 받으며 1.20점이 깎였다.

▲ 2016~2017 시즌 ISU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서 점프를 뛰고 있는 차준환 ⓒ 태릉아이스링크, 곽혜미 기자

이동훈 이후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4회전 점프

전 피겨스케이팅 국가 대표 이동훈(29)은 2004년 쿼드러플 토루프를 깨끗하게 뛰었다. 당시 '피겨 천재'로 불렸던 그는 열악한 국내 환경에서 나온 인재였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최초로 4회전 점프를 뛰며 장래가 촉망됐지만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그는 2007년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쿼드러플 토루프 점프에 성공했다. 이후 4회전 점프에 도전한 이는 김진서(20, 한국체대)였다. 김진서는 공식 경기에서 몇 차례 4회전 점프를 시도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차준환은 국제 대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지난해부터 캐나다 토론토 크리켓 스케이팅 & 컬링 클럽에서 훈련하고 있다. 한층 성장해서 돌아온 그는 야심 차게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서 쿼드러플 살코에 도전했다.

모처럼 찾아온 4회전 점프 성공을 아쉽게 놓쳤다. 경기를 마친 차준환은 "쿼드러플 살코 점프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프로그램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실수가 많이 나와서 아쉽다"고 소감을 밝혔다.

4회전 점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쿼드러플 살코를 랜딩 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차준환은 지난해 성장기를 거쳤다. 160cm도 안 됐던 소년이 170cm가 넘는 청년이 됐다. 힘든 시기였지만 4회전 점프를 비롯한 각종 기술 완성도를 높이며 이번 선발전에서 한층 성장한 기량을 펼쳤다.


차준환의 성장으로 탄력 받은 한국 남자 피겨, 남은 과제는?

차준환을 지도하는 브라이언 오서(54, 캐나다) 코치는 "차준환은 쿼드러플 점프를 꾸준히 잘 연습하고 있고 후속 점프로 트리플 토루프를 넣는 훈련도 하고 있다"며 "그는 쿼드러플 점프를 잘하는 지도자들과 연습하고 있다. 습득력이 매우 빠르다"고 칭찬했다.

이어 "지금대로만 성장한다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준환은 총점 210.58점으로 남자 싱글 1위를 차지했다. 2위 변세종(18, 화정고, 165.56)과 점수 차는 무려 50.02점이다. 차준환의 성장은 고무적이다. 23명이 출전한 여자 싱글과 비교해 남자 싱글 출전자는 5명에 불과했다. 차준환과 나머지 선수들의 현격한 기량 차도 문제점이다.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엷은 선수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선수 지망생은 지금도 계속 늘고 있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밝혔다. 남자 싱글은 김연아(26)처럼 롤모델로 삼을 선수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 경기를 앞둔 차준환(오른쪽)과 브라이언 오서 코치 ⓒ 태릉아이스링크, 곽혜미 기자

선수 생명이 짧은 피겨스케이팅에서 남자 선수들의 미래는 쉽게 보장할 수 없다. 입대하면 선수 생명이 끝나고 대학 졸업 뒤 선수 생활을 이어 갈 실업팀도 없다. 이런 현실은 남자 선수들의 성장에 큰 걸림돌이다.

선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차준환과 이준형(20, 단국대) 그리고 김진서가 등장했다는 점은 특별하다. 대회가 열리면 10명도 안 되는 선수가 출전하는 현실에서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유망주 시절 차준환은 "축구나 야구보다 피겨스케이팅이 좋았다. 이 종목을 재미있게 하고 있고 앞으로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준환의 성장은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오서 코치의 말대로 차준환이 지금대로만 성장하면 이동훈 이후 4회전 점프를 정복하는 날은 빨리 올 수 있다.

최근 4회전 점프 성공률에 대해 차준환은 "마음을 편하게 하고 그날 컨디션이 좋으면 성공률이 좋은 편이다"고 말했다. 첫 출전하는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 대해서는 "처음 출전하는 주니어 그랑프리인 만큼 경기 때 긴장하지 않고 다른 선수는 신경 쓰지 않고 싶다. 내 프로그램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영상] 차준환 인터뷰,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 프리스케이팅 ⓒ 촬영, 편집 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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