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가네코 겐(かねこけん, 金子賢)이라는 일본 배우가 있다. 재일 교포로 한국 이름은 김현중.

1996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 리턴'에서 주연을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다양한 배역을 맡으면서 필모그래피를 채워 가고 있었다.

그런데 걸려야 할 '배우병'에 걸리지 않았다. 동경하는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직접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가네코 겐은 2004년 소속사의 강한 반대에도 "전력을 다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며 일본 종합격투기 대회 프라이드(PRIDE)의 문을 두드렸다. 사쿠라바 가즈시가 소속돼 있던 일본의 명문 팀 다카다 도장에서 주짓수 훈련을 시작했다.

꽤 진지했다. 연예계 활동을 접겠다는 걸, 소속사가 겨우 말렸다.

그의 데뷔 무대는 2005년 12월 31일 프라이드 남제로 결정됐다. 상대는 찰스 베넷이었다.

데뷔전 상대치곤 너무 강했다. 찰스 베넷은 당시에 이미 29전을 치른 베테랑이었다. 타격가였지만 이제 첫 경기를 치르는 가네코 겐과 그라운드 기술을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다. 가혹한 매치업이었다.

가네코 겐의 프라이드 데뷔에 비판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프라이드는 따가운 시선을 신경 쓰다 보니 만만한 상대를 붙일 수 없었다.

세계 파이터들이 동경하는 링 위에 연예인이 이름값을 앞세워 경기를 갖는다는 사실에 핏대를 세우는 격투기 관계자들이 많았다. 링스를 이끈 실전 지향 프로 레슬링의 대표 주자 마에다 아키라가 대표적이었다.

찰스 베넷과 데뷔전은 '도전하고 싶다며? 이왕이면 강자랑 붙어 봐. 제대로 깨져 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가네코 겐은 아무것도 못했다. 찰스 베넷은 스파링하듯 설렁설렁 싸웠는데도 긴장한 탓에 바짝 굳은 가네코 겐에게 1라운드 4분 14초에 암바로 이겼다.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벽은 꽤 높다. 특히 강심장과 경험이 필요한 싸움판은 더 그렇다.

그런데 가네코 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프라이드에서 K-1 계열 종합격투기 대회 히어로즈(HERO'S)로 무대를 옮겨 다시 도전했다.

히어로즈에는 실전 지향 주의를 지향하고 흥미성 매치에 정면으로 맞서는 마에다 아키라가 슈퍼바이저로 있었다. 흥행을 염두에 둔 K-1이 가네고 겐을 영입했지만, 마에다 아키라는 "아마추어 무대에서 싸워라"는 독설을 대 놓고 쏘아댔다.(https://www.youtube.com/watch?v=O-gALiBvOhY)

2006년 10월 9일 히어로즈에서 만난 상대는 찰스 베넷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는 도코로 히데오였다. 2000년부터 싸워 온 그래플러. 주짓수를 주 무기로 하는 가네코 겐이 넘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역시 1라운드 시작 1분 50초 만에 암바로 졌다.

돌아갈 곳이 있었다. 격투기계 텃세가 셌다. 굳이 여기서 구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가네코 겐은 아직 보여 줄 게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가시밭길을 계속 헤쳐 나갈 준비가 돼 있었다. 2006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출전을 확정지었다.

상대는 앤디 올로건. 2006년 K-1 맥스에 데뷔한 입식타격가였다. 종합격투기 전적은 없었다. 이제야 가네코 겐이 해볼 만한 상대를 만난 것.

가네코 겐은 앤디 올로건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하고 그라운드에서 서브미션 기술을 노렸다. 강적과 두 번 싸웠기 때문인지 경기를 잘 풀어 나갔다. 그러나 앤디 올로건의 로킥 연타에 충격이 컸다. 경기 종반 절뚝절뚝거렸다. 3라운드 종료 0-3 판정패. 첫 승은 멀고 멀었다.

그런데 이 경기를 본 외골수 마에다 아키라의 마음이 조금 돌아섰다. 그는 "가네코 겐이 이긴 경기다. 테이크다운에 성공했고 공격 적극성에서 앞섰다"고 평가했다.

가네코 겐의 여행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2년 동안만 종합격투기에 전념하겠다는 소속사와 약속을 지켰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격투기계를 떠나 영화계로 돌아갔다. 그의 프로필엔 종합격투기 3전 3패라는 전적이 써 있다.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다. 비판의 목소리가 화살처럼 그의 가슴에 박혔다. 그걸 이겨 내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결국엔 그의 진심과 노력이 마지막에 인정 받았다.

그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운동은 계속하고 있다. 역삼각형의 몸을 만들어 최근엔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A39pDAbsqfQ)

연예인의 종합격투기 도전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UFC의 CM 펑크나 로드FC의 김보성의 종합격투기 도전을 삐딱하게 볼 문제만은 아니다. 대회사로선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 수 있고 다른 선수들도 인지도를 쌓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들이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CM 펑크는 지난해 앤서니 페티스의 소속 팀 루퍼스포츠 MMA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시작할 때 대걸레 미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체육관 막내처럼 운동했다. 김보성도 "어린 선배들의 피땀 흘리는 케이지에서 경기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도전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들이 서는 프로 무대에선 도전한다는 마음만으론 부족하다. 케이지 위에서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어설픈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 

CM 펑크는 지난달 UFC 203에서 미키 갈에게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지고 "믿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는 "CM 펑크의 다음 경기는 옥타곤에서 펼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무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소 무대에서 먼저 뛰다가 경험을 쌓고 옥타곤으로 돌아와도 된다. 가네코 겐처럼 간 길을 따라가길 바란다.

김보성은 만으로 50세다. 늦은 나이다. 그의 수준에 맞는 상대를 맞춰 줘야 한다. 게다가 가네코 겐이나 CM 펑크보다 나이가 있으니 여유 있게 경력을 쌓아 갈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경기에 부담감을 버티고 버텨야 한다. 도전이 경기가 끝나고 빛을 발하려면 남은 3개월 동안 죽을 각오로 운동해야 한다. 오는 12월 10일 로드FC 데뷔전을 앞두고 더 많이 보여 줘야 한다. 그의 마음이 가네코 겐이나 CM 펑크에 뒤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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