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FC 페더급 챔피언 최승우 ⓒ스포티비뉴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정성욱 기자] 기술적으로 완성된 종합격투기 신인 선수가 있다고 치자. 데뷔전에서 경험 많은 노장을 만난다면 이길 가능성은 크게 떨어진다.

긴장감을 이겨내고 실전에서 기술을 써 봤던 사람이, 필요할 때 효과적으로 기술을 잘 쓰는 법이다. 종합격투기에서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여러 노장들이 활약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경험이 자산이다.

지난달 11일 서울 올림픽홀에서 열린 TFC 12에서 이민구를 꺾고 TFC 페더급 챔피언이 된 최승우(23, MOB)는 선배들의 경험을 따라잡기 위해 훈련 일지를 쓴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자주 한다. 

입식타격기에서 50전 가까이 경험을 쌓았지만, 종합격투기는 5경기밖에 치르지 않은 최승우는 "역시 내게 부족한 건 그래플링이다. 잘하려면 남들보다 더 연습해야 했다. 그때도 훈련 일지를 적었다. 그리고 집에서 공부하고 연습했다. 그랬더니 체육관에서 스파링 할 때 조금씩 기억나더라"고 밝혔다.

최승우는 더 높은 무대를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길 원한다. 레슬러 길영복과 맞붙고 싶은 이유다. 그는 챔피언이지만 도전자의 자세를 잊지 않았다.

"댓글을 많이 봤는데 내가 끈적끈적한 경기를 펼치는 레슬러에게 약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더라. 길영복을 이겨야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 받을 것이다. 내가 뛰어넘어야 할 길영복이 페더급 빅 4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TFC 챔피언이 된 날은 최승우의 인생에서 또 다른 시작점이 됐다. 그는 "TFC 밴텀급 챔피언 곽관호처럼 PXC 타이틀을 동시에 얻고 싶다. 안 그래도 공석이던데 기회가 오면 경기하고 싶다"고 했다.

▲ 최승우의 고향 속초 여기저기에 축하 현수막이 걸렸다.
아래는 최승우의 일문일답.

- 축하한다. 챔피언이 되니 어떠한가?

"정말 행복하다. 챔피언이 된 후 생활이 확 바뀌지 않았지만 구름 위를 걷듯 행복한 기분이다."

- 무엇이 행복한가?

"나를 위해 고생한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한 것 같아 기분 좋고, 챔피언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뤄서 좋다. 며칠 동안 행복한 기분을 마음껏 느꼈다.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있다."

- 챔피언이 되고 팀 동료들이 자기 일처럼 좋아하더라. 부모님과 동생도 매우 좋아했고.

"경기가 끝난 후 부모님이 '아들 경기 잘 봤다'는 주변 분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고향인 속초에 여러 플래카드가 걸렸다. 어머니 회사에서도 플래카드를 걸어 줬다. 설악고 동문회에서도 그랬다. 여러모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 아버지는 든든한 후원자다. 아버지 반응이 가장 궁금하다. 당신이 격투기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큰 힘을 써주신 분도 아버지다.

"정말 좋아하셨다. 경기가 끝난 후 '잘했다'는 말을 건네셨다. 아버지는 무뚝뚝하다. 여동생에겐 잘 표현하시는데, 나는 장남이고 강하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표현이나 칭찬에 인색하셨다. 요즘에 예전보다 표현을 더 하시긴 한다. 경기 끝나고 짧게 말씀을 하셨지만,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 하시더라. 나는 말로 안 하셔도 표정 보면 아니까 행복했다."

- 타이틀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이민구와 경기 어땠나?

"정말 치열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무에타이를 할 때와는 다른 압박이 느껴졌다. 사실 이민구가 압박 작전을 펼칠지 몰랐다. 물론 당황하진 않았다. 경기 전에 여러 가지 상황을 미리 그려 봤다. 거리 조절하면서 들어오는 만큼 빠졌다. 리치를 살려 경기를 풀었다."

- 경기 초반, 두 선수가 한 번씩 다운을 주고받았다. 특히 이민구의 타격에 3라운드 막바지에 위기가 찾아왔다. 위기를 어떻게 넘겼나?

"3라운드 때 사람들이 '슬립이다, 다운이다' 말이 많았는데 사실 내게 충격이 있었다. 하지만 체육관에서 훈련할 때 더 센 펀치를 맞아 봤기에 견딜 수 있었다. 챔피언이 돼야겠다는 열망이 나를 다시 일으킨 원동력이다."

- 사람에게 열망은 대단한 힘을 준다. 열망의 원천은 무엇인가?

"꿈과 목표다. 나는 지금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챔피언이 된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을 가기 위해 챔피언이 된 것이다. 높은 곳을 가기 위해선 내가 속한 TFC에서 최고가 돼야 했다. 이제 챔피언이 됐으니 더 높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열망을 품고 또 전진할 것이다."

▲ 최승우는 기술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 매일 훈련 일지를 쓴다.
- 훈련 일지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훈련 일지는 어떻게 쓰게 된 것인가?

"훈련 일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쓰고 있다. 한 번 배운 기술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는 어떤 기술을 배우면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하루라도 빨리 기술을 이해하려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기술의 디테일과 보완해야 할 점, 어떻게 연습했는지 과정 등을 적어 왔다. MOB 짐에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종합격투기를 배웠다. 역시 부족한 건 그래플링이었다. 잘하려면 남들보다 더 연습해야 했다. 그때도 훈련 일지를 적었다. 그리고 집에서 공부하고 연습했다. 그랬더니 체육관에서 스파링 할 때 조금씩 기억나더라."

- 정말 큰 도움이 됐던 거 같다.

"나는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믿는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경기를 앞두고 훈련 일지에 '최승우 챔피언 되는 날'이라고 적었다. 자신 있다고 반복해서 썼다."

- 원래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나?

"그건 아니다. 격투기를 시작하고 훈련 일지를 쓰면서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잘하고 싶어서 계속 적고 보고 연습했다. 근데 요즘은 훈련 일지를 잘 안 본다. 가끔 훈련하다가 기억이 안 날 때, 집에서 쉬면서 종종 훈련 일지를 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다.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를 때가 있었다. 그냥 시작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정리한다. 아쉬운 건 내가 악필인 것이다. 글씨가 예뻤다면 더욱 잘 정리되었을 텐데. 아쉽다.(웃음)"

- 더 큰 무대를 바라보지만 타이틀 수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

"TFC 12에서 페더급 경기가 많았다. 다들 잘하시더라. 사실 첫 방어전 상대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 이민구만 바라봤다. 게다가 TFC 페더급 빅 4는 조성원을 제외하고 모두 페더급을 떠났다. 한성화는 해외에 있다. 국내 복귀하면 체급을 올린다고 했다. 김동규는 밴텀급으로 내려갔다. 최영광 선수는 은퇴했고."

- 그러면 새로운 페더급 빅 4를 뽑아 본다면? 당신과 이민구, 그리고 나머지 2명은 누굴까?

"먼저 조성원이 생각난다. 조성원은 이민구에게 패배했지만 여전히 실력자다. 남은 한 명은 길영복이다. 길영복은 레슬러다. 댓글을 많이 봤는데 내가 끈적끈적한 경기를 펼치는 레슬러에게 약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더라. 길영복을 이겨야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 받을 것이다. 내가 뛰어넘어야 할 길영복이 빅 4에 포함된다."

- 길영복이 승수를 쌓아 도전자 자격을 얻는다면 두 선수가 붙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기회가 있다면 붙어 보고 싶다. 어차피 더 큰 무대에 가려면 다양한 파이터와 겨뤄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요즘 그래플링 연습을 많이 한다. (권)배용이 형이 있어서 그래플링도 자신 있다. 스승인 배용이 형은 곁에만 있어도 든든하다."

- 국내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보였으니 해외 무대에서도 러브콜이 올 수 있다.

"당연히 뛸 것이다. 내가 확인하니 곽관호가 밴텀급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PXC에 페더급 챔피언이 마침 공석이더라. 곽관호처럼 두 단체 타이틀을 갖고 싶다."

- 앞으로의 계획은?

"챔피언에 걸맞게 행동하고, 챔피언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도록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 챔피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우선 방어전에 최대한 힘쓰고 차근차근 성장해 더 큰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최승우는 챔피언이지만 도전자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레슬러인 길영복(사진)과 경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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