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훈 감독(왼쪽)과 최두호 ⓒ한희재 기자
2개월도 남지 않은 2016년, 다음 달까지 출전이 예정된 네 명의 국내 UFC 파이터 가운데 가장 기대를 모으는 선수는 '코리안 슈퍼 보이' 최두호(25, 부산 팀 매드/사랑모아 통증의학과)다. 최두호는 옥타곤에서 치른 지난 세 경기를 전부 1라운드 TKO승으로 장식해 주목 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다음 달 11일(이하 한국 시간) UFC 206에서 페더급 랭킹 5위의 강자 컵 스완슨(32, 미국)을 맞이한다. 승리할 경우 5위권까지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실제 옥타곤에 올라 싸우는 선수는 최두호와 스완슨이지만, 그것이 이 대결의 전부는 아니다. 이번 경기의 경우 두 선수의 타격전만큼이나 관심을 모으는 승부가 바로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명장 양성훈과 그렉 잭슨의 코치 맞대결이다. 둘은 각각 팀 매드와 잭슨 윈크 아카데미의 사령탑으로, 훈련 캠프를 총지휘하고 경기 당일 옥타곤 코너에서 상황에 맞는 지시로 승리를 노린다.

첫 대결

양성훈과 그렉 잭슨은 UFC에서 지금까지 세 차례 맞섰다. 2009년 1월 UFC 94에서 김동현과 카로 파리시안이 만났을 때 처음 상대했고, 2011년 7월 김동현과 카를로스 콘딧(UFC 132), 2015년 11월 김동현과 도미닉 워터스(UFC 파이트 나이트 서울 대회)의 경기에서도 맞은편에 섰다. 김동현은 세 명의 그렉 잭슨 선수들을 상대해 1승 1패 1무효의 전적을 남겼다.

결과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경우 더 크게 웃은 쪽은 그렉 잭슨이다. 양성훈은 지난해 서울 대회에서 김동현의 새로운 상대로 긴급 투입된 신예 도미닉 워터스와 대결을 승리로 이끌었고, 잭슨은 타이틀 도전자 결정전 성격을 띤 비중 있는 경기에서 카를로스 콘딧의 KO승을 합작했다. 같은 1승이지만 무게감이 다르다.

두 지도자가 처음 마주한 2009년 당시 지도력과 경험, 인지도의 차이는 컸다. 잭슨은 그때도 잘나가는 지도자였다. 조르주 생피에르, 카를로스 콘딧, 프랭크 미어, 도널드 세로니, 라샤드 에반스, 네이트 마쿼트 등 수많은 유명 선수들이 그의 조련을 받고 있었다. 2009년과 2011년 올해의 코치에 선정됐으며, 지금까지 총 5명의 UFC 챔피언을 배출했다.

양성훈은 현재 팀 매드에 UFC 파이터를 5명이나 두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잭슨과 처음 대결할 땐 옥타곤 코너에 처음 서는 새내기 지도자였다. 2008년만 해도 비자를 받아야만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이 까다로웠던 탓에 비자 심사에서 떨어졌다. 제이슨 탄을 상대로 한 김동현의 옥타곤 데뷔전, 맷 브라운과 두 번째 경기는 TV로 시청해야 했다.

카로 파리시안은 당시 10위권 선수로, 웰터급 상위권의 문지기로 통했다. 2승을 올린 신인 김동현으로선 세 번째 경기에서 상대의 수준이 급격히 올라간 경우였다. 좋은 기회가 분명했다. 한편으론, 드디어 자신의 뒤에 '비자를 받고' 미국까지 함께한 지도자가 선다는 것에 마음이 든든했다.

그러나 양성훈은 자신이 없었다. 김동현이 이제 옥타곤에서 두 차례 싸워 본 터라 파리시안이 어느 정도로 강할지, 김동현이 UFC라는 정글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2승을 거둔 것에 만족했던 그였다.

결과는 접전 끝에 김동현의 1-2 판정패. 이후 파리시안의 도핑 문제로 경기 결과는 무효로 변경됐다. 양성훈은 공식 결과와 별도로 당시 경기에 대해 누가 이겼다고 보기 애매하다며 50대 50 정도였다고 본다. 그의 마음속 결과는 무승부다.

▲ 그렉 잭슨은 세계 최고의 전략가로 꼽힌다.
완패의 기억

승리를 챙기진 못했지만 파리시안과의 대결은 김동현의 경쟁력을 확인하고 가능성을 볼 수 있던 의미 있는 경기였다. 추후 패배가 무효로 변경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후 김동현은 TJ 그랜트와 아미르 사돌라, 네이트 디아즈를 차례로 격파하며 웰터급 타이틀에 성큼 다가섰다. 다음 상대인 카를로스 콘딧만 넘으면 타이틀 도전도 기대할 만했다. 그러나 김동현은 처음으로 지고 말았다.

그 경기에서 그렉 잭슨과 두 번째 코치 대결을 벌인 양성훈은 선수의 스타일과 능력치를 고려할 때 질 수밖에 없었던 경기였다고 돌아본다. "당시 김동현의 스타일이 뻔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타격의 무기가 없을 때였다. 반면 콘딧은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테이크다운 이후 상위에서 압박은 김동현의 큰 무기였지만 그것에 너무 의존했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경기였다. 그렉 잭슨은 사실상 그 기술 하나로 올라온 김동현을 정확히 꿰뚫고 작전을 세웠다. 콘딧은 거리를 멀게 잡고 먼저 공격을 하지 않았다. 상대를 넘겨야만 자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김동현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결정타였던 플라잉 니킥은 잭슨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공격으로 보인다. 김동현은 상대 공격이 들어올 때 왼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버릇이 있는데, 그 점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었다. 그렉 잭슨의 전략이 빛을 발했다. 김동현은 콘딧에게, 양성훈은 그렉 잭슨에게 패했던 경기로 남아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펼쳐진 도미닉 워터스와 대결은 둘의 위치 차이도 컸고, 워터스가 급히 투입돼 경기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었던 만큼 결과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이번이 진짜 맞대결

두 감독의 네 번째 대결. 이번에는 웰터급이 아니다. 팀 매드와 잭슨 윈크 아카데미의 페더급 간판 최두호와 컵 스완슨이 맞붙는다.

양성훈에겐 이번이 그렉 잭슨과 진짜 싸움으로 느껴진다. 맞붙는 두 선수 모두 같은 타격가에 수준 또한 높아 지도자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지략 대결이 중요하다.

"몇 년 전엔 경험이 부족해서 잘 몰랐다"는 양성훈은 "제대로 붙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제 격투기에 대한 지식의 깊이가 생겼다. 내가 선수에게 뭘 해 줘야 할지 완벽하게 알아가는 단계고 자신감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좋은 그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양성훈은 지난 5년 동안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적인 지도자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5명의 UFC 파이터 외에도 10여 명의 국내외 챔피언을 배출했다. 약 70명이라는 대규모 선수단을 이끌고 있다. 아시아에선 독보적이다. UFC 경기에 코너맨으로 나선 경험은 20회가 넘는다.

경기에선 최두호가 우세하다는 전망이다. 과거 스완슨과 대결을 준비한 적이 있는 정찬성은 "최두호가 유리하다. 타격 동작 자체가 짧고 간결하다. 스완슨은 동작이 큰 편이다. 타이밍 싸움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최근 밝혔다.

양성훈의 생각도 같다. 스완슨을 상대로 최두호의 상성이 좋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그것만 생각하고 준비할 순 없다. 상대는 그렉 잭슨이다. 그 역시 두 선수의 전력을 파악하고 다른 수를 준비할 것이 분명하다. 잭슨이 꺼내들 다른 카드에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원천봉쇄를 계획했다. 단순한 가위바위보 게임을 넘어 최두호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 하도록 할 계획이다. "스완슨이 최두호를 상대로 무엇을 시도할지 많이 생각해 봤다. 모든 길목을 막아 버릴 생각이다"는 게 양성훈의 말이다. 또 "이번엔 전략이나 운영 등 모든 면에서 부딪힐 수 있다. 달라진 최두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느낌이 좋다. 경기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아는 것이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지금껏 양성훈이라는 지도자를 봐 오면서 이번처럼 강하게 자신감을 나타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선수에 대한 칭찬은 늘 있었지만, 스스로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항상 겸손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 김동현과 승리를 만끽하고 있는 양성훈 감독과 이정원

필자 소개- 현 UFC 한국 공식 홈페이지(kr.ufc.com) 저널리스트. 전 엠파이트 팀장. 강원도 영월 출신.

<기획자 주> 스포티비뉴스는 매주 수요일을 '격투기 칼럼 데이'로 정하고 다양한 지식을 지닌 격투기 전문가들의 칼럼을 올립니다. 격투기 커뮤니티 'MMA 아레나(www.mmaarena.co.kr)'도 론칭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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