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현역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힌 제이슨 콜린스

[스포티비뉴스=조현일 기자] “그를 벤치로 보내버려. 제발 그만 출전시키라고.”

2006년 겨울, 취재를 위해 뉴저지(현 브루클린) 네츠 홈구장인 아이잣(Izod) 센터를 찾았을 때 들려온 외침이다. 덩치 큰 한 선수가 볼을 잡을 때마다 홈팬의 욕설섞인 고함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동료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이 선수는 가는 팀마다 “덩칫값 못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10년 넘도록 NBA 무대를 버텨내면서 적지 않은 돈과 명성을 얻었지만 마음은 자꾸 공허해져만 갔다. 2011년 드래프트 1라운드 18순위로 NBA 무대를 밟은 후 매 시즌 농구에 대한 의욕은 줄어들었다. ‘현역 최초의 동성애자’ 제이슨 콜린스 이야기다.

◆ 나는 게이입니다

지난 2013년 4월 말 콜린스가 미 스포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나는 34살의 NBA 흑인 센터입니다. 그리고 게이입니다.”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역사상 첫 현역 선수 커밍아웃이었다. 올랜도 매직, 유타 재즈 등을 거치며 백업 빅맨으로 활약했던 존 아미치가 동성애자임을 밝힌 적이 있지만 시점은 은퇴 이후였다.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와 함께 NBA에 데뷔했던 쌍둥이 형제, 제이런(Jarron)도 발표 당일에서야 제이슨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7년 동안 만난 여자 친구와 교제하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은 더했다. 더구나 콜린스는 그 여성과 약혼까지 한 상태였다.

콜린스의 전 약혼녀는 WNBA에서 뛴 캐럴린 무스. 무스는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콜린스가 동성애자일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커밍아웃 전날 동성애자라고 내게 직접 말해 줬다”며 이별 사유도 그가 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헤어질 당시 이상한 이유를 대며 관계를 청산하자고 하더라. 얼마 전까지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교제 기간 콜린스는 미래의 남편이자 가장 좋은 친구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소식이다.”

“2011년으로 돌아가야겠죠.” 콜린스는 ‘NBA.com’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커밍아웃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제일 먼저 연방 대법원 판사인 이모님(Teri Jackson)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녀 반응이 매우 놀라웠습니다. 이상하리만큼 편안했어요. 제가 동생애자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모님을 만난 뒤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무언가를 오븐에 구워낼 때 종종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잖아요. 어느 날 전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렇다는 걸요. 33년 동안 오븐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콜린스의 커밍아웃을 놓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코트를 누빈 많은 전현직 NBA 스타를 비롯해 여러 유명 인사가 격려 메시지를 전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그 가운데 하나. 클린턴은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어 자랑스럽다”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거들었다. “당신은 참으로 용감한 사람입니다.” 데이비드 스턴 NBA 총재는 “당신의 편에 서겠다”며 격려했다.

현역 선수들도 응원에 나섰다. ‘아르헨티나 출신 NBA 스타’ 마누 지노빌리는 “존경과 진심을 담아 콜린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성적 선호도가 운동선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날이 곧 올 것”이라며 지지의 뜻을 보냈다. 그 밖에 제이슨 키드, 드웨인 웨이드, 케네스 퍼리드 등 셀 수 없이 많은 NBA 스타가 그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 제이슨 콜린스 등 번호 '98번'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 다시 한 번 역사를 쓰다

‘ESPN’ 유명 칼럼니스트 마크 스테인은 2013년 11월 초 ‘NBA와 관련한 8대 예언’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기고했다. ‘루올 뎅이 시카고 불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시작으로 스티븐 잭슨의 NBA 컴백까지 정확히 내다봤다.

그 중에는 콜린스의 10일 계약도 포함돼 있었다. “시즌 후반기가 되면 콜린스를 데려가는 팀이 분명 나올 것이다. 11월 현재 콜린스는 복귀를 위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가 지닌 경험과 노하우는 10일 계약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다.”

스테인의 예상은 적중했다. 2014년 2월 23일 콜린스는 브루클린 네츠와 10일 계약을 맺었다. 뉴저지 시절 함께 코트를 누볐던 키드를 스승으로 만나게 된 콜린스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감독’ 키드도 마찬가지. “그가 게이이건, 양성애자건 콜린스가 좋은 사람이자 동료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커밍아웃 당시 키드가 자신의 SNS에 남긴 말이다.

키드 감독은 10일 계약서를 쓰는 자리에 직접 동행했다. 보통 10일 계약자를 만나기 위해 감독이 직접 구단 사무실을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키드는 콜린스를 위해 기꺼이 소중한 시간을 할애했다. 키드 감독 밑에서 뛰게 된 콜린스는 자신의 SNS 계정에서 행복감을 나타냈다. “오늘을 즐깁시다!”

콜린스는 2014년 2월 24일 LA 레이커스와 원정 경기에서 NBA 복귀 신고식을 치렀다. 커밍아웃 선수가 미국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 뛴 첫 번째 인물로 역사에 남는 순간이었다. 여태껏 프로 풋볼(NFL), 프로 야구(MLB), 프로 농구(NBA), 프로 하키리그(NHL)까지 4대 프로 스포츠 통틀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힌 선수가 현역으로 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쿼터 10분 28초쯤 콜린스가 코트를 밟았다. 소수의 네츠 팬을 비롯해 레이커스 관중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레이커스 팬은 무뚝뚝한 편이다. 그런 팬으로부터 콜린스는 환호를 받았다. 곧바로 이어진 공격. 콜린스와 미스매치 된 레이커스 가드 조던 파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콜린스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리바운드를 잡는 과정에서 콜린스가 플로어에 강하게 떨어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명의 팀 동료(안드레이 키릴렌코, 앨런 앤더슨, 데런 윌리엄스)가 뛰어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콜린스를 향한 존중의 메시지였다. 11분 동안 활약한 콜린스는 2리바운드, 1스틸로 역사적인 경기를 마무리했다.

콜린스의 커밍아웃 당시 코비는 두 팔 벌려 그를 지지한다고 밝힌 선수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브루클린과 계약한 것은) 스포츠를 넘어 사회 전반에 두루 영향을 미칠 것이다. 콜린스는 젊은 세대를 향해 ‘It's OK to be yourself’(너 자신 그대로여도 괜찮다)라는 교훈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어둠 속에 넘어져 있는 자기 자신을 더욱 강하게 채찍질할 수 있게 됐다. 콜린스 덕분에 나 역시도 큰 용기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콜린스는 경기가 끝난 뒤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말끔한 셔츠를 입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여전히 NBA에서 뛸 수 있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을 위해 움직이고 필요에 따라 강한 반칙을 하는 것이 내 임무다. 코트로 돌아와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동료의 반응도 칭찬 일색이었다. 데런 윌리엄스는 “그는 변함없는 프로 농구 선수였다. 오랜 시간 제 몫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수비력은 여전했다. 콜린스를 동료로 맞이하게 돼 정말 기쁘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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