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V NEWS=조영준 기자] 모든 스포츠 종목이 그렇듯 피겨스케이팅도 '투자'가 있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러시아 피겨 여자싱글은 이리나 슬루츠카야(36, 러시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동메달) 이후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다. 하지만 2014 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국 피겨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3년여 앞두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냉철하게 진단할 때 한국 피겨는 '위기'에 빠졌다. 김연아의 활약에 힘입은 한국 피겨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확했고 2014 소치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에서는 '노메달'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한국 피겨는 '김연아 이후'를 책임질 기대주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들은 지난해와 올 시즌 국제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 세계 상위권으로 들어가는 문은 여전히 '좁은문'이다. 세계의 벽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 피겨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박소연-김해진, 월드 10위권 진입 실패…여전히 높기 만한 男피겨의 벽

박소연(18, 신목고)은 김연아 이후 한국 피겨의 새로운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1월 초에 열린 전국종합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며 '국내 1인자'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소치올림픽에 출전해 큰 대회 경험을 쌓았고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는 최종 9위에 올랐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개인 최고점인 176.61점을 받으며 올린 성과였기 때문에 더욱 값졌다.

하지만 올해 세계선수권에서는 전진하지 못했다. 박소연은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에서 최종 160.75점에 그쳤다. 최종 순위 12위에 오른 박소연은 2년 연속 10위권 진입에 실패했다. 함께 출전한 김해진(18, 과천고)은 136.24점으로 19위에 머물렀다.

박소연과 김해진은 모두 일찍 트리플 5종 점프를 완성하며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내 피겨 기대주들 중 김연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17세의 어린 나이에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세계의 높은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선수들의 고질적인 약점인 예술점수(PCS)에서 점수가 낮은 점도 문제지만 점프를 비롯한 기술의 성공률도 들쑥날쑥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국내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에 이어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클린 연기'를 펼치지 못했다.

남자싱글에 출전한 이준형은 총점 197.52점으로 최종 19위를 기록했다. 첫 출전한 시니어 세계선수권임을 감안하면 나름 의미 있는 성과였다. 그러나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구사하는 선수들과 비교할 때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3년 뒤의 성과를 원한다면 과감한 변화가 필요한 시기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한 세계 피겨 무대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 김연아의 선전에 익숙했기 때문에 피겨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지 못한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 피겨의 목표는 '메달 획득'보다 상위권 진입에 두는 것이 현실적이다. '동계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는 피겨는 아이스하키와 함께 동계올림픽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종목이다.

김연아가 없는 현재 투자 없이 결실을 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특징에 맞춘 '맞춤형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하는 것은 물론 훈련 환경의 개선도 필수적이다. 이번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우승을 차지한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19, 러시아)는 한동안 체형 변화와 부상으로 국제대회에서 고전했다. 하지만 체계적인 러시아 피겨의 시스템과 선수 지원 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와 비교해 국내 선수들은 체형 변화와 부상이 닥치면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 때 한국 피겨 여자싱글 선수 대부분은 '97년생 기대주'들이 점령했다. 그러나 현재 이들 중 제대로 대표 선수 생활을 하는 이는 박소연과 김해진 밖에 없다. 선수들을 위한 링크는 물론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성립되지 않은 국내에서 툭타미셰바 같은 '성공 사례'는 나오기 어렵다.

선수층이 두터운 러시아와 국내 환경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점이 많다. 하지만 두텁지 못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새로운 인재들이 꾸준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전국종합선수권에서는 트리플 5종 점프는 물론 콤비네이션 점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기대주들이 대거 출연했다. 안소현(13, 목일중) 김예림(12, 군포양정초) 그리고 유영(11, 문원초)은 주목할 만한 기대주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정상급 선수가 되려면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체계적인 시스템과 좋은 훈련 환경도 뒷받침 되어야한다. 한국 피겨는 분명 위기의 상황에 처해있다. 많은 전문가와 현장 인들의 고민과 실천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사진 = 박소연 김해진 이준형 ⓒ SPOTV NEWS 한희재 기자,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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