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코트 위 마법사'로 불렸다. 골드 앤드 퍼플 유니폼을 입은 매직 존슨(57)은 코트 위 누구보다 우아하고 압도적이었다. 이견이 적다. 미국 프로 농구(NBA) 역대 최고 포인트가드로 꼽힌다. 13시즌 동안 매직이 남긴 발자취는 그 어떤 선수보다 굵직했다. 'ESPN'은 그를 가리켜 '농구 역사상 마이클 조던보다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며 매직의 존재감을 설명한 바 있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에버렛고등학교 시절부터 전미 최고 유망주로 꼽혔다. 미시건주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매직'이란 별명도 이때 붙었다. 그의 본명은 어빈 존슨 주니어다. 당시 매직을 지도했던 조지 팍스 감독은 "어딜 가든 기자들이 따라다녔다. 어빈은 미시건주에서 가장 유명한 10대였다"고 말했다. 빌 러셀을 존경하고 얼 먼로처럼 플레이하길 꿈꿨던 그는 고교 시절부터 지역 언론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준비된 새싹'이었다.

미국 지역 매체 '랜싱스테이트저널' 프레드 스테블리 기자는 고교 농구를 취재하다가 매직의 플레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스테이블리는 "노 룩 패스, 바운드 패스를 그토록 매끄럽게 구사하는 선수는 처음 봤다. 충격적이었다. NBA가 아닌 고교 무대에서 그런 패스를 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에게 알맞은 별명을 지어 주고 싶었다.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마법(Magic)'이란 단어가 떠올랐다"고 술회했다.

▲ 미국 프로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인트가드로 꼽히는 매직 존슨.
대학 시절도 남달랐다. 매직은 농구 명문 미시건주립대학교에 진학했다. 2년 동안 62경기에 나서 평균 17.1점 7.6리바운드 7.9어시스트를 수확했다. 포인트가드로서 거인에 가까운 키(206cm)를 공수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경기마다 트리플 더블에 가까운 내용을 꾸준히 보였다.

신입생 때 경기당 평균 17.0점 7.9리바운드 7.4어시스트를 쓸어 담았다. 팀을 전국 토너먼트 8강(Elight 8)으로 이끌었다. 4강(Final 4)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해 챔피언 캔터키대학교에 무릎을 꿇었다. 49-52로 아깝게 졌다. 그러나 토너먼트 기간 매직의 주가는 크게 뛰었다. 'AP통신'은 '소속 팀을 25승 5패로 이끈 괴물 신입생이 나타났다'며 그의 활약상을 조명했다.

더 성장했다. 이듬해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전국 토너먼트 우승을 이뤘다. NBA 파이널 우승보다 어렵다는 단판 승부 무대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필생의 라이벌로 마주할 래리 버드와 '이야기'도 이때 시작됐다. 2학년 때 버드와 펼친 맞대결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 농구 최고 명승부로 회자된다.

매직은 1978~1979 시즌 버드가 이끌던 인디애나주립대학교와 NCAA 토너먼트 결승전을 치렀다. 팀이 75-64로 이기는 데 이바지했다. MOP(Most Outstanding Player)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ESPN 앤디 카츠 기자는 "버드와 매직은 NCAA 토너먼트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 5인으로 꼽히는 조던도 하지 못한 일"이라며 둘의 맞대결이 농구사에 미친 영향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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