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코트 위 마법사'로 불렸다. 골드 앤 퍼플 유니폼을 입은 매직 존슨(57)은 코트 위 누구보다 우아하고 압도적이었다. 이견이 적다. 미국 프로 농구(NBA) 역대 최고 포인트가드로 꼽힌다. 13시즌 동안 매직이 남긴 발자취는 그 어떤 선수보다 굵직했다. 'ESPN'은 그를 가리켜 '농구 역사상 마이클 조던보다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며 매직의 존재감을 설명한 바 있다.

돋보였다. 데뷔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매직은 197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LA 레이커스에 지명됐다. 그는 입단 기자회견에서 "(레이커스 입단은) 내 생애 가장 놀라운 일(Most amazing)"이라고 말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매직은 NBA 역대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인 명 센터 카림 압둘-자바와 손발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펄펄 날았다. 입단하자마자 주전 1번 자리를 꿰찼다. 77경기에 나서 평균 18.0점 7.7리바운드 7.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야투율은 53%에 이르렀다. 가로채기도 경기당 평균 2.4개를 챙겼다. 코트 위 감독으로 활약한 이 신인 포인트가드는 레이커스를 팀 득점 2위(115.1), 경기 속도 8위(104.1), 오펜시브 레이팅 1위(109.5)로 이끌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선수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올스타전 스타팅 멤버로 뽑혔다. 시즌 종료 뒤엔 올 NBA 루키 퍼스트 팀에 이름을 올렸다.

▲ LA 레이커스 시절 매직 존슨
공수에서 빼어난 생산성을 보였다. 분당 생산력(PER)이 20.6에 달했다. 보통 이 수치가 20을 넘으면 올스타 수준으로 분류된다. 그해 신인왕은 '영원한 맞수' 래리 버드에게 내줬다. 그러나 매직은 송곳처럼 날카로운 패스와 넓은 시야, 적극적인 리바운드 가담으로 그레이트 웨스턴 포럼을 열광하게 했다. 경기마다 환상적인 노 룩 패스와 바운드 패스를 보였다. 자말 윌크스, 마이클 쿠퍼, 스펜서 헤이워드에게 뿌리는 베이스볼 패스도 일품이었다. 단숨에 리그 최고 플로어 리더로 올라섰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눈부셨다. 정규 시즌을 60승 22패, 리그 전체 1위로 마친 레이커스는 '봄 농구'서도 승승장구했다. 피닉스 선즈,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차례로 꺾고 1980년 NBA 파이널 무대에 진출했다. 마지막 승부 파트너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였다. 'Dr. J' 줄리어스 어빙, 민완 포인트가드 모리스 칙스, '검은 천둥' 대릴 도킨스 등이 이끄는 필라델피아는 동부 지구를 대표하는 당대 최강 팀이었다.

레이커스는 시리즈 첫 5경기에서 3승을 수확했다. 압둘-자바가 평균 30점이 넘는 놀라운 득점력으로 팀을 이끌었다. 정상 고지에 단 1승만을 남겨 뒀다. 그러나 악재가 터졌다. '기둥'이 쓰러졌다. 압둘-자바가 발목 통증을 호소하며 파이널 6차전에 결장했다. 6차전을 내줄 경우 자칫 시리즈 흐름이 필라델피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시리즈 스코어 타이를 허용한 상태에서 리더 없이 맞는 파이널 7차전은 매우 부담스러운 스케줄이기 때문이다.

용단을 내렸다. 막다른 골목에서 기지(機智)를 발휘했다. 폴 웨스트헤드 레이커스 감독은 해당 시즌 가장 빛나는 용병술을 파이널 6차전에서 보였다. 매직을 선발 센터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수(手)를 놓았다. 매직은 이 경기서 42점 15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쓸어 담았다. 포지션 경계를 허물었다. 48분 동안 센터와 포워드, 가드 역할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팀의 123-107 승리에 크게 한몫했다. 경기 뒤 기자단 투표에서 파이널 MVP에 선정됐다. NBA 역사상 유일한 '파이널 MVP에 뽑힌 신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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