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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부산, 조형애 기자] 부산아이파크 이정협은 3분여 짧은 인터뷰 속에서 "감독님"을 네 번이나 언급했다. 굳이 묻지 않았지만 이정협은 또박또박 말했다. '감.독.님'. 이승엽 감독 대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FA컵 결승행을 확정 지은 뒤 딱 든 생각이 '감독님'이었단다.

여기서 말하는 감독님은 지난 10일 급성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고 조진호 감독이다. 이정협은 소문난 조 감독의 애제자 중 한 명. 이 대행은 스스로도 조 감독과 "형제와 같다"고 말 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조 감독과 남다른 인연을 가졌던 두 사람은 하늘에 KEB하나은행 FA컵 결승행 티켓을 안겼다. 25일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FA컵 준결승에서 부산은 '디펜딩 챔피언' 수원삼성을 꺾었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갔다 다시 지옥으로 떨어졌지만, 결국 웃었다. 승부차기 4-2 승리다.

극적인 승리에 구덕운동장은 들썩였다. 생전 조 전 감독이 좋아했다던 '부산 갈매기'가 울려 퍼졌고 선수단도 흥겨운 세리머니 이어갔다. 이후 이정협은 기쁜 기색을 땀과 함께 씻어버리고 믹스트존에 나타났다. 경기 종료 후 꽤 시간이 지난 것도, 승부차기 실축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있었지만 그 보다 컸던 건 조진호 감독에 대한 생각으로 보였다.

한참을 라커룸에서 보내다 나온 이정협은 "아직도 수원을 이겼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들 선수들이 잘해줘서 어렵게 승리를 가져왔다"면서 "이런 걸 감독님께서 원하셨는데 아쉽다. 같이 (기쁨을) 나누지 못해 아쉽다. 어렵게 올라온 만큼 꼭 우승해서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결과를 가져오고 싶다"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질문은 '라커룸 분위기는 어땠는가' 11자가 전부였는 데 말이다.

최근 이정협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많이 들리는 건 '열심히 뛰는 게 눈에 보인다'다. 이정협도 애둘러 부인하지 않았다. "감독님이 계실 때 이런 플레이를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안계실 때 이런 플레이를 보여드려 죄송스럽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경기 도중에도 조 감독을 생각하는 이정협이다. 그는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던 걸 되새기면서 뛰다 보니까 더 열심히 뛰게 되고 운 좋게 골도 넣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면서 승격과 FA컵 우승, 두 가지 꿈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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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협이 '포커페이스'였다면 이승엽 감독대행은 그 반대. 퉁퉁 부은 눈으로 인터뷰실에 들어섰고 조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땐 눈시울이 또 불거졌다. "솔직히 말하면 감독님 많이 생각난다. 복받친다"고 말문을 연 이 대행. 그에겐 남모를 승리의 부적이 있었다. 바로 '속옷'이다.

"감독님과 (클럽하우스) 방을 함께 썼다. 유품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까 속옷 하나가 있더라. 내 속옷이 아니고 감독님 것이었다. 그것을 입고 나왔다. 솔직히 말씀드린다. 감독님이 선수들하고 같이 뛰어주시지 않았나 하고 저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이 대행은 생전 조 감독이 분석해 둔 수원 자료를 들고 경기에 임했다고 했다. 선수들을 다그치고 또 품어주는 '밀당'도 "감독님이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하니 선수들도 다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그의 옆자리는 비워져 있다. 조 감독을 위한 자리다. "내가 잘해서 (감독이 공석이 된 뒤에도 잘해) 왔다고 생각 전혀 안한다"는 이 대행. 그의 옆자리는 남은 올시즌 내내 한 사람을 위한 자리로 남아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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