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태흥영화에 따르면 고 인태원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해 5월 낙상사고 이후 약 1년 7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이태원 대표는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충무로 황금 트리오'로 불리며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끌어 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특히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끌어 온 태흥영화의 창립자이자 대표로 영화계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리웠다.
고 이태원 대표는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나 1964년 설립한 건설회사 태흥상공을 경영하다 1974년 의정부 극장을 인수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특히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요람 역할을 한 입지전적인 영화 제작사이자 외화 수입사인 ㈜태흥영화의 창립자로 한국영화계에 큰 족적으 남겼다.
㈜태흥영화는 1983년 이태원 대표가 그 전신인 ㈜태창흥업을 인수, 1984년 태흥영화로 개명해 지금에 왔다. 창립작인 이장호 감독의 '무릎과 무릎 사이'(1984)를 시작으로 37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하고 46편의 외화를 수입해 선보였다. 임권택 감독을 필두로 이두용, 배창호, 곽지균, 장선우 등 1980년대 주요 감독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한편 이명세 감독을 발굴하며 한국영화의 중심에 섰다.
특히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과 '서편제'(1993)로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갱신했으며,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1993)과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0), '취화선'(2002) 등을 통해 3대 국제영화제 진출 및 본상 수상의 쾌거를 이루는 등 한국영화의 역사를 수차례 새로 썼다.한편 고 이태원 대표는 옥관문화훈장(1993)과 은관문화훈장(2003)을 수상했으며, 대종상 영화발전공로상(1994), 영평상 특별제작자상(1988) 백상예술대상 특별상(2003),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 공로상(2002), 영화제작가협회 공로상(2014)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한숙 여사와 아들 철승(60), 효승(58), 지승(51) 씨와 딸 선희(61)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6일 오전 10시,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파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