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SG는 향후 구단의 운명을 건 육성 시스템 개혁에 돌입했다 ⓒSSG랜더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마무리캠프 훈련 일정은 몰라보게 간단해졌다. 프로그램이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훈련 시간은 줄어들었다. 하루 일과에 ‘여백’이 많았다. 그래서 선수들은 지금까지는 다르게, 스스로 ‘생각’을 해야 했다.

강화SSG퓨처스필드에서 진행되고 있는 SSG의 마무리캠프는 올해 1군에서 뛰었던 젊은 선수들, 2군 선수들, 그리고 신인 선수들과 재활 선수들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 피로가 많이 쌓인 1군 주축 선수들인 인천에서 별도의 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보통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는 으레 ‘강훈련’을 표방하기 마련이다. 

사실 1년 중 강훈련을 할 만한 시간이 이맘때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시즌에 들어가면 경기도 해야 하고, 체력 문제 탓에 훈련 시간을 마냥 늘릴 수는 없다.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은 이 시기에 주전 선수들보다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올해도 그 기조는 다르지 않다. 그런데 자율로 움직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후 1시면 모든 공식 프로그램은 끝난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머지는 선수들이 생각해 스스로 일정을 짜야 한다. SSG의 새 육성 기조는 이번 마무리캠프부터 야심차게 시작되고 있었다.

“왜 우리는 실패했나” 진지하게 자문하다

SSG는 10일 장문의 보도자료로 팀의 선수 육성 시스템을 전면 개편한다고 밝혔다. 핵심을 요약하면 선수 중심의 사고로 선수 주도로 성장하고, 선수별 맞춤형 육성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다. 이 핵심 명제를 이루기 위해 미국 프로야구의 마이너리그 육성 시스템과 스포츠과학 시스템을 도입한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분위기를 정착해 SSG만의 육성 문화를 확립한다는 것이다. 

민경삼 대표이사는 SSG 프런트 실무 경험이 풍부하다. 여러 실무와 단장을 거쳤고, 지금은 대표이사로 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좋은 성과도 많이 거뒀지만, 팀이 어떤 부분에서 실패를 했는지도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다. 인천에서 만난 민 대표이사는 그간 SSG의 육성 시스템이 미진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또 실패를 인정했다. 구단을 둘러싼 경영 환경은 매년 달라지는데, 이렇게 가다간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었다.

“왜 육성이 안 됐나”는 직설적인 질문에 민 대표이사는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는 “방향성이 없었고, 지속성도 없었다”고 통렬하게 반성했다. 민 대표이사는 “기존에 1군 인사들이 ‘내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선수는 쓸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협업이 부족했고 시스템이 없었다. 2군에서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오면 바로 경기에 나가 이어 가야 하는데, 컨디션 좋은 2군 선수들이 벤치에 앉았다”고 돌아보면서 “1군 감독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그 사람이 나가면 사상누각이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고 이야기했다.

말 그대로 시스템이 없었고, 특정 지도자의 ‘맨파워’와 ‘관점’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육성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지속성이 없었다는 진단이다. 현장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프런트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했고, 지속성에 대한 점검이나 관리도 하지 못했다. 민 대표이사는 “현장과 프런트 사이에 공감대가 없었다”면서 프런트도 잘못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세상이 변한다. 샐러리캡이 도입되고 여건상 변화가 많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MZ세대를 생각해도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 브랜든 나이트 코치는 풍부한 경험을 한국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도자로 기대를 받고 있다 ⓒSSG랜더스
이제는 현장과 프런트의 협업을 통해 SSG만의 육성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를 꾸준히 점검하고 가다듬으며 지속성을 만들겠다는 게 이번 원대한 포부의 핵심이다. 민 대표이사는 “영원한 사람은 없다. 감독도 나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매뉴얼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바이블처럼 계속 가는 게 아니라 덧붙이는 것이다. 지속성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속성을 가지지 못해서 문제가 많았다”면서 “사장 혼자 아이디어를 낸 게 아니다. 구성원들 사이에서 토론하고 합의가 있었다”고 심사숙고해 내놓은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핵심은 선수 위주다. 민 대표이사는 “구단 2군 감독 중심 또는 1군의 종속 개념으로 진행되다 보니 정작 선수가 빠져있었다. 또 프런트가 현장 눈치를 보며 수동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 동안 선수들의 목소리와 생각을 귀담아 듣지 못했다”고 반성하면서 “조금 더 선수들의 목소리와 성향에 집중했고 그들의 성공 열망을 구단에서 지원하고 도움을 주면 육성도 더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식 육성 시스템 도입, 즉흥적인 결정 아니었다

SSG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 뭔가의 청사진을 그릴 때 취지에 물음표가 붙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물음표는 이 가치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닦느냐다. SSG도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까지 실패했던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구단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 방법론으로 들고 나온 건 미국식 육성 시스템과 스포츠과학 집중이다. 이를 위해 조직도 개편했다. 외국인 코치 4명이 현재 강화 마무리캠프를 주도하고 있고, 김성용 전 야탑고 감독을 R&D 센터장으로 영입했다.

SSG는 시즌 중반 성적이 처질 당시 코칭스태프를 한 차례 개편했다. 1군에서 코치 및 코디네이터 임무를 하던 외국인 지도자들을 2군으로 내렸다. 당시 류선규 SSG 단장은 “2군 육성에서 외국인 지도자들이 어떤 몫을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몇 개월을 지켜보니 예상보다 선수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효과도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게 구단의 판단이었다. 메이저리그식 육성 시스템 도입을 시도하게 된 하나의 이유다.

자존심을 굽히고 다른 구단을 벤치마킹도 했다. 민 대표이사는 “예전 넥센 2군 감독을 지낸 스펜서 퓨처스 감독 사례에 대해 많이 들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넥센 퓨처스 육성 시스템이 크게 발전했다고 들었다”면서 “최근에는 한화 이글스의 1군 사례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 마이너리그 육성 전문가인 수베로 감독과 한화 외국인 코치들의 운영방식, 선수들과의 스킨십과 소통을 봤다. 거기는 1군이지만, 이를 우리 퓨처스팀과 육성에 접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트레이 힐만 전 감독 특유의 에너지와 소통 스킬을 직접 본 SSG다. 외국인 지도자들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큰 거부감이 없었던 하나의 이유다. 그 결과 현재 SSG 마무리캠프는 투수(나이트), 타격(곤잘레스), 수비 및 주루(플레처), 포수(세리자와)까지 핵심 파트를 모두 외국인 지도자들이 이끌고 있다. 아직 네 명의 지도자와 모두 재계약이 된 것은 아니지만, 만약 재계약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외국인 지도자를 이 자리에 앉힌다는 계획이다. 

▲ 플레처 코치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지도자들의 향상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SSG랜더스
민 대표이사는 “결국 유망주들이 1군 선수로 성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기술, 멘탈, 경기, 훈련 등을 세심하게 관리할 대상, 즉 주체가 필요하다고 봤다. MZ세대들을 이해하고 육성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육성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야 하고 편견 없이 선수를 판단해야 되며, 자유스러운 스킨십과 격의 없는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에 집중했다”고 외국인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핵심 포지션에 외국인 지도자를 앉히는 대신 2군 감독은 없애고 총괄 코치를 두기로 했다. 수직적인 문화를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봤다.

국내 코치를 차별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코칭스태프 개편을 통해 젊은 국내 지도자들을 외국인 옆에 붙인다는 계획이다. 배우는 게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외국인 지도자를 전면에 앞세워 국내 코치들을 육성하고자 하는 목표도 분명히 있다. 민 대표이사는 “코치 경험이 풍부한 외국인 코치의 영입은 국내 코치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마인드, 소통 스킬, 스킨십 방법, 훈련 방식, 다양한 코칭 노하우, 자유로운 질의응답 등으로 코치 역량이 한 단계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다. 

선수가 증명하는 게 아닌, 구단이 선수들에게 증명하라

마이너리그 시스템 접목과 더불어 또 하나 야심차게 추진하는 게 과학과 접목이다. 민 대표이사는 “스포츠 과학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국내 프로구단에서 스포츠 과학을 활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분석과 바이오메카닉이 대표적인 프로야구 적용사례”라면서 “그 동안 이러한 스포츠 과학의 일부가 주로 1군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 부분을 이제는 퓨처스로 확대하려 하는 것이다. 어린 선수들의 스포츠과학 적용을 습관화해 육성 시기를 앞당기고 선수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각종 플랫폼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세계적인 선수들의 영상과 지도자들의 기법을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다. 여기에 익숙한 어린 선수들은 이제 추상적인 지시를 맹신하지 않는다. 뭔가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는 증명이 그림이나 숫자로 명쾌하게 나와야 구단을 믿고 따르게 된다. 민 대표이사는 “과학적인 기계를 가지고 증명을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전문가 그룹이 4명 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외주 업체도 있다. 같이 협업하고, 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구상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이를 총괄하는 부서가 없었다면 이제는 R&D 센터가 들어섰다. 민 대표이사는 “퓨처스R&D센터는 육성 전반에 스포츠 과학을 적용하기 위해 도입했다. 이곳에서 바이오메카닉, 데이터분석 등을 총괄하고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총괄하는 인물이 김성용 R&D 센터장이다. 야탑고를 명문으로 이끈 주인공이자,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공부하는 지도자’로 명성이 높다. 운동역학 이론의 국내 대가 중 하나다.

민 대표이사는 “김 센터장은 드라이브라인, 바이오메카닉에도 풍부한 지식과 관련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코치와 선수들에게 스포츠과학의 복잡한 데이터를 현장에 얼마나 잘 이해시키고 실천할 수 있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아마야구 육성 전문가인 김성용 센터장이 그 가교 역할을 잘 수행할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했다.

첫 도전 대상이 된 강화 마무리캠프의 선수들은 걸음마 단계다. 지금까지는 ‘코치님들이’ 짜준 일정에 따라 움직였을 뿐, 스스로 깊게 생각을 하며 움직여본 경험은 없다. 그래서 오후 1시 이후의 자율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구단도, 선수도 인내를 가지고 만들어가야 할 시기다. 2군 육성 시스템을 이처럼 대대적으로 바꾼 사례도 별로 없다. 아마도 상당한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당장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일부분은 희망도 봤다. 민 대표이사는 “선수 육성은 1군에서 얼마만큼의 기회를 주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핵심 유망주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유망주가 반드시 퓨처스에서 좋은 결과와 1군에서 쓰임새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1군에서도 과감하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공 사례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그런 부분들을 올해 1,2군 코칭스태프와 프런트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좋은 관계를 잘 쌓아두었기 때문에 내년 시즌 기대감이 크다”고 했다. SSG가 10년 뒤 성공한 팀이 되어 있다면, 아마도 2021년 11월의 선언이 그 밑바탕이 있을 것이다. /SSG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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