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미국 스프링캠프에서의 kt 박경수(왼쪽)와 유한준. ⓒkt 위즈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kt 위즈가 19일 구단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에는 특별한 장면이 담겨있었다. 우승이 확정된 뒤 선수단이 모두 고척스카이돔 그라운드로 뛰어나가 세리머리를 펼치려던 찰나. 몇몇 선수들이 두 명의 이름을 계속 호명하며 “잠깐만 기다리자”고 외쳤다. 유한준(40)과 박경수(37)였다.

유한준과 박경수는 kt의 정신적 지주다. 2016년과 2015년 각각 FA 신분으로 kt 유니폼을 입은 뒤 맏형 그룹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었다.

먼저 2003년 LG 트윈스에서 데뷔한 뒤 주전과 백업 내야수를 오가던 박경수는 2015년 kt의 1군 진입과 발맞춰 옷을 갈아입었다. 이어 핵심 2루수로서 kt 내야진이 자리를 잡도록 도왔다. 또, 2016년부터 3년간 주장 완장도 찼다.

유한준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부터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유명했던 유한준은 kt에서도 조용하면서도 울림 있는 카리스마로 후배들을 챙겼다. 30대 후반 나이로 이적했지만, 꾸준히 3할대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고, 박경수의 뒤를 이어 주장 임무도 맡았다.

후배들로부터 ‘노인네’라는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불리며 kt의 성장을 함께한 유한준과 박경수. 둘은 올해 누구보다 따뜻한 가을을 보냈다. 역사적인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나란히 뛰며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유한준은 1~4차전 내내 4번타자 중책을 맡으며 kt 중심타선을 이끌었고, 박경수는 결정적인 호수비와 3차전 결승홈런으로 한국시리즈 MVP의 영광을 맞이했다.

감동적인 순간도 있었다. 박경수가 3차전 도중 종아리를 다쳐 다음날 4차전에서 목발을 짚고 나타나자 유한준은 “마음이 짠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면서 “(박)경수가 ‘이제 형이 알아서 하시라’고 이야기했다. 동생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내가 홈런을 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맏형의 승리 의지는 우승이라는 열매로 돌아왔다. 이날 kt는 두산을 8-4로 꺾고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우승이 확정된 순간. kt 선수단이 모두 그라운드로 달려나갈 때, 유한준은 목발을 짚은 동생 박경수에게 어깨를 빌려주며 나란히 걸어갔다.

느리지만 뜻깊은 발걸음. 이를 알아챈 후배들은 형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고, 유한준과 박경수가 함께한 뒤에야 준비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 kt 선수들이 1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뒤 박경수(맨 오른쪽)와 유한준(맨 오른쪽 2번째)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관심사는 형들의 동행 여부다. 둘 모두 kt와 계약기간이 올 시즌으로 끝났다. 박경수는 2019년 1월 3년 계약을 맺었고, 유한준은 같은 해 11월 2년 계약을 체결했다. 둘 모두 적지 않은 나이라 4년 계약을 채우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계약이 만료됐다.

관건은 둘의 마음이다. 함께 kt의 첫 번째 통합우승을 이룬 만큼 V2 도전 의지를 보인다면 내년에도 동행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정반대의 선택을 내릴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유한준은 한국시리즈 4차전을 앞두고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시리즈는 또 언제 뛸 수 있을지 모르는 무대다. 게다가 나는 나이도 있고, 선수 생활이 보장돼있지도 않다. 계약 마지막 해 이러한 무대를 치른다는 자체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박경수는 우승 기자회견에서 “FA는 재게 선택권이 없다. 구단과 잘 상의하겠다. 선수로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고집을 피울 생각은 없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뜻깊은 우승을 합작한 두 형님들. 후배들이 끝까지 기다린 유한준과 박경수는 내년에도 kt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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