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지난 17일 '2022학년도 수시모집 선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서준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야구하기에도 바쁜 엘리트 고교야구 3학년 선수가 공부를 통해 곧바로 서울대에 합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2013년 덕수고 외야수 이정호(체육교육과)가 최초의 역사를 썼고, 이번에 이서준이 뒤를 이었다. 이정호는 현재 서울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두 명 모두 공교롭게도 덕수고 출신이다. 한편 서울고 야구선수 출신 홍승우는 고교 졸업 후 2년간 공부를 한 뒤 삼수 끝에 2017년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한 바 있다.
이서준은 야구와 공부 둘 다 놓치지 않았다. 우선 야구선수로서 올 시즌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발군의 성적을 올렸다. 23경기에 출장해 타율 0.397(73타수 29안타)에 2홈런 21타점 22득점 7도루를 기록하며 공수주에 걸쳐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OPS가 무려 1.037(출루율 0.489+장타율 0.548)이었다.
무엇보다 특정 대회에서 반짝한 것이 아니라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고른 성적을 거뒀다. 올 시즌 1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안타를 기록했을 정도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0.417(12타수 5안타)의 타율을 기록했다. 청룡기 대회에서는 타율 0.500(14타수 7안타)에 홈런 1개, 3루타 1개로 맹활약했다. 특히 8득점으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주말리그 전·후반기에서도 3할대(0.333)와 4할대(0.400) 타율의 호성적을 올렸는데 특히 주말리그 후반기 서울권A에서는 감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키 183㎝에 몸무게 77㎞으로 몸매가 다소 호리호리하지만 스윙 스피드가 빠르고 펀치력이 있다. 올 시즌 홈런 2개로 덕수고 내에서 유격수 한태양(롯데 입단)과 함께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했다.
그런데 공부로도 홈런을 쳤다. 그것도 서울대에 합격했으니 만루홈런이다. 야구를 하는 시간 외에는 공부만 파고든 노력으로 결실을 거두게 됐다.
이서준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지만 야구가 좋아 야구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이력도 눈길을 끈다. 서울 배명중을 졸업한 뒤 휘문고로 진학했다. 그러다 2학년 때인 2020년 경북 문경에 있는 글로벌선진학교로 전학을 갔다. 영어로 수업을 하는 학교에서 야구와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야구부가 해체되면서 다시 서울의 덕수고로 전학을 하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글로벌 선진학교는 기독교 대안학교로 글로벌 인재육성과 함께 스포츠 인재육성을 목표로 2014년 야구부를 창단했지만 6년 만에 야구부를 해체했다.
이서준은 지난 11월에 열린 마지막 대회 봉황대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덕수고가 1~2학년으로만 출전해 우승 고지에 오르는 장면을 지켜보며 자랑스러운 후배들을 응원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당당히 서울대에 합격하면서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선배로 또 하나의 길을 제시했다.
평소에도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지향하고 있는 덕수고의 정윤진 감독은 “이서준은 야구도 열심히 하면서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다. 2013년 이정호에 이어 두 번째 서울대생을 배출하게 됐는데 학교에 큰 경사다”며 기뻐했다.
하얀 눈이 채 녹지 않은 덕수고 교정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이서준을 만났다.
- 서울대에 합격했는데 기분이 어떤가? 실감이 나는지.
“처음엔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주변에서 축하를 굉장히 많이 받고 연락도 많이 받으면서 실감이 났다.”
- 누가 가장 기뻐했나?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셨고, 감독님도 정말 기뻐해주셨다. 우승보다 더 기쁘다고 해주셨다.”
- 야구선수로서 야구하기도 바빴을 텐데 솔직히 언제 공부했나?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꾸준히 해왔고, 고등학교 와서는 틈틈이 공부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는 감독님께서 훈련도 제외해주시고 배려를 해주셨다. 항상 수업 시간에는 집중해서 들으려고 했다. 현실적으로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수업 시간에는 충실하게 하려고 했다.”
- 2013년 덕수고 직속 선배인 이정호가 처음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는데 알고 있었나?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알고 있었다. 나도 이정호 선배님처럼 되려고 목표를 잡고 야구도 열심히 했지만 공부도 열심히 했다. 이정호 선배님을 롤모델로 삼았다.”
- 야구는 어떻게 시작했나?
“어렸을 때부터 워낙 좋아했다. 아빠랑 캐치볼을 하면서 야구를 좋아하게 됐다.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는데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선수반에 들어갔다. 부모님이 반대를 하셨지만 공부를 같이 한다는 조건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 야구와 공부, 어떤 게 쉬운가? 아니 어떤 게 더 어려운가?
“둘 다 어렵지만 야구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왜냐하면 성공하는 길이 좀 더 좁다고 생각한다. 소수만 성공하기 때문이다. 공부는 미래를 보면 길이 좀 더 많지 않나 싶다.”
- 야구와 공부를 함께 하면서 혹시 코피가 터지지 않았나?
“코피가 잘 나지 않는 편이다. 아, 너무 피곤해서 공부하다가 시험 기간에 잠들고 그랬는데, 9월부터 두 달 동안 스터디 카페에 다니면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하다가 수능 직전에 코피가 한번 터졌다(웃음).”
- 올 시즌 타격 성적이 좋았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전국대회 청룡기 8강 경주고전 TV 중계할 때 홈런을 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타석에서 파울만 치고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홈런을 치라는 사인을 내셨다. 감독님께서 그때 3루 주루 코치로 나가 계셨는데 손가락으로 펜스 쪽을 가리키시더라. 홈런 한 방 치라는 사인이었다. 그래서 그냥 홈런을 노리고 한번 풀스윙을 했는데 진짜 홈런이 나와서 나도 신기하고 놀랐다.”
- 야구선수로서 프로 선수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을 텐데.
“신인 드래프트 때까지도 프로 선수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명되지 못해서 아쉬웠다. 올해 성적도 괜찮고 해서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친구들 지명되는 것 보면서 솔직히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 서울대에 가면 야구는 그만두는 것인가?
“야구부에 들어가서 꾸준히 야구를 할 거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는 지명이 되지 않았지만 대학에 가서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야구를 계속해 대학 졸업반 때 다시 한 번 드래프트에 도전해보고 싶다. 야구 선수의 꿈을 버린 건 아니다.”
-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우선 서울대 야구부에 들어가서 팀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약팀이라고는 하는데 공식 대회에서 1승을 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졸업할 때까지 선후배님들과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현재 야구선수는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기 힘든 환경이다. 앞으로 이런 환경을 개선해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감독님이 스포츠 행정을 할 수 있도록 학업을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 주셨는데 그런 쪽도 생각하겠다. 내가 이정호 선배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처럼 후배들이 나를 롤모델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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