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2차 선발전 여자 싱글 1그룹 우승자인 유영(가운데)과 2위 김예림(왼쪽) 3위 이해인(오른쪽)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의정부, 조영준 기자] 6년 전인 2016년 1월, 김연아(32)의 영향을 받고 본격적으로 빙판에 뛰어든 유망주들이 국내 정상을 휩쓸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리틀 연아’들이 등장에 환호성을 질렀죠.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이 끝난 뒤 김연아는 스케이트를 벗었습니다. 

크나큰 업적을 남긴 선수의 영향은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죠. 김연아의 경기를 본 뒤 본격적으로 빙판에 뛰어난 세대들의 전성기는 2016년 1월부터 막을 열었습니다.

그해 열린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은 매우 흥미진진했습니다. 당시 만 11살이었던 유영(18, 수리고)은 역대 최연소 우승자가 됐습니다. 2위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7위를 차지한 최다빈(22)이 차지했고 3위는 유영보다 한 살 언니였던 임은수(19, 고려대 진학 예정)가 자리했습니다. 그 뒤를 이었던 이는 김예림(19, 단국대 진학 예정)이었죠.

유영과 임은수 그리고 김예림은 이후 국내 대회 상위권을 휩쓸었습니다.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죠. 이런 경쟁 구도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 2017년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한 임은수(가운데) 2위 김예림(왼쪽) 3위 김나현(오른쪽) ⓒ 곽혜미 기자

그러나 김연아의 시대가 끝난 뒤 여자 싱글의 판도는 급변했습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때까지 러시아 여자 싱글은 중심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남자 싱글에서는 ‘역대급 전설’이었던 알렉세이 야구딘, 예브게니 플루센코(이상 러시아) 등이 활약했던 남자 싱글과 비교하면 대조적이었죠.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부터 피겨스케이팅 강국이었습니다. 점프 및 기술 스타일이 러시아식, 혹은 북미식으로 나뉘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겨울스포츠 전 종목에 대대적인 투자가 진행됐죠. 피겨스케이팅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유망주들이 가득했던 여자 싱글은 소치 올림픽 이후 세계 무대를 평정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피겨스케이팅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국가 가운데 하나인 일본도 유망주들이 계속 쏟아졌습니다. 우리가 유영과 임은수 김예림 등이 등장했다고 흥분할 때 이들 국가의 스케일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지역 곳곳에서 등장하는 기대주들이 훈련할 장소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피겨스케이팅 종목에 대한 노하우는 한국과 비교되지 않았죠.

특히 러시아의 기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여자 선수들도 남자 선수 못지않은 고난도 점프에 도전하면서 여자 싱글은 예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러시아 지도자인 에테리 투트베리제가 이끄는 팀에서는 4회전 점프를 뛰는 여자 선수들이 계속 등장했습니다.

▲ 2018년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경기를 펼치는 유영 ⓒ 곽혜미 기자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경험한 유영은 트리플 악셀 완성에 들어갔습니다. 4회전 점프도 도전 목록 가운데 하나였죠. 결국 유영은 한국 여자 싱글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실전 경기에서 트리플 악셀에 성공했습니다.

유영과 더불어 2018~2019 시즌까지 가장 상승곡선을 그렸던 이는 임은수입니다. 2018년 ISU 그랑프리 대회 로스텔레콤 컵에 출전한 그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임은수는 김연아 이후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가장 빨리 시상대에 오른 선수가 됐습니다. 이듬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총점 205.57점을 기록하며 '톱10'을 달성했습니다. 또한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서 200점 고지를 넘는 성과도 거뒀습니다.

그러나 임은수는 여자 싱글 선수들에게 '마의 시즌'으로 불리는 시니어 2년 차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2월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임은수는 최종 8위에 그쳤습니다. 반면 이때까지 국내 및 국제 대회에서 경쟁자들의 그림자에 가렸던 김예림이 비상의 날갯짓을 펼쳤죠.

▲ 2020년 ISU 4대륙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를 펼치고 있는 김예림 ⓒ 곽혜미 기자

김예림은 2017년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하지만 이후 2020년까지 국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유영, 임은수는 물론 후배 이해인(17, 세화여고)에게 밀렸습니다. 2018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2연속 은메달이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후 출전한 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죠. 김예림의 전환점이 된 대회는 2020년에 열린 4대륙선수권대회였습니다. 이 무대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고 6위를 차지했습니다.

유영은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특히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며 국내 팬들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 2020년 ISU 4대륙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 환호하는 유영 ⓒ 곽혜미 기자

이해인이라는 도전자의 등장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그는 2019년 김연아 이후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2연속 우승을 달성한 선수가 됐습니다. 2020년 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김예림과 임은수를 제치고 준우승을 차지했죠. 이때부터 이해인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도전할 새로운 기대주로 떠올랐습니다.

네 명의 스케이터가 펼친 올림픽 출전을 향한 여정은 지난 9일 막을 내렸습니다. 7일부터 9일까지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실내빙상장에서는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22(제76회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겸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대표 2차 선발전)가 펼쳐졌습니다.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이 2장 주어졌습니다. 1, 2차 선발전을 거쳐 최종 1, 2위에 오르는 이들이 6년 전부터 시작한 경쟁의 승자가 되는 상황이었죠. 유영은 예상대로 1차 선발전부터 선두로 치고 나왔습니다. 8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깨끗하게 뛰며 베이징행 티켓을 예약했습니다.

▲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2차 선발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펼치는 유영 ⓒ 연합뉴스

남은 한 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김예림과 이해인이 경쟁했습니다. 1차 선발전에서 부진했던 이해인은 2차 선발전에서 선전했습니다. 반면 김예림의 몸 상태는 심상치 않았습니다. 9일 오전에 진행된 공식 연습에서 김예림은 허리가 아픈 듯 인상이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허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마사지 받고 치료하며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김예림은 전날 쇼트프로그램이 끝난 뒤 병원으로 이동해 치료 받았습니다.

김예림은 "이번 대회 준비 과정은 좋았지만 금요일(7일) 허리를 삐끗했다. 사실 경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할 정도로 심각했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이어 "제 생각에는 삐끗한 정도여서 금방 회복할 거 같은데 당장 눈앞에 있는 대회에서 통증이 심할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이곳이 한국이라 병원에 바로 가서 치료를 받고 진통제를 맞은 뒤 경기에 뛸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김예림의 몸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정신력으로 이를 이겨내며 프리스케이팅 클린에 성공했죠. 김예림은 또래 동료들과 다르게 빙판에서 좀처럼 감정을 표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2차 선발전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뒤에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죠. 김예림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펼치는 김예림 ⓒ 연합뉴스

이해인도 실수 없이 모든 요소를 깨끗하게 해냈습니다. 2차 선발전 최종 결과는 유영이 221.49점으로 1위, 김예림은 207.64점으로 2위, 이해인은 206.33점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1, 2차 합계 최종 1위 유영과 2위 김예림이 베이징으로 향하는 출발역에 도착했습니다.

아쉽게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이루지 못한 이해인은 "엄마가 잘 하든 잘하지 못하든 간에 이번이 끝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다음 올림픽에는 나가도록 하겠다"라며 다짐했습니다.

올 시즌 내내 부진했던 임은수는 총점 187.45점을 받으며 9위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1차 선발전의 부진이 아쉽지만 2차 선발전에서는 한층 나은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오랜만에 미소 짓는 장면도 볼 수 있었죠.

'연아 제네레이션' 혹은 '리틀 연아'로 불린 이들의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향한 여정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고 말하죠.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고 목표를 달성한 이가 있으면 그렇지 못한 이들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입니다. 자신의 스케이팅 인생이 올림픽 출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모두 인지하는 듯 보였습니다. 6년 전 11살 꼬마였던 유영은 18살의 원숙한 스케이터가 됐고 김예림과 임은수는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2차 선발전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를 펼치는 이해인 ⓒ 대한빙상경기연맹

오는 4월 만 17살이 되는 이해인은 아직 충분한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4년 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올림픽 때 이해인은 스무 살을 넘기게 됩니다. 여자 싱글 선수들에게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자기 관리가 철저한 선수들은 20대 중반까지 선수로 활약하는 게 피겨스케이팅의 현주소입니다.

국내에서 베이징 올림픽 2차 선발전이 한창 진행될 때 미국에서는 전미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여자 싱글 우승을 차지하며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이는 25살인 머라이어 벨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