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태의 축구를 읽다] 부천과 제주 엇갈린 14년, 그리고 새로 시작된 이야기
작성일: 2020.05.29 15:15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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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SK는 2006년 2월 2일 제주로 연고를 이전하며 제주 유나이티드가 됐다. 여전히 제주는 유공과 부천SK 시절을 구단의 역사에 포함하고 있다. 부천SK의 빨간색이 아닌 감귤을 닮은 주황색이 팀의 상징색으로 쓴다. 지금의 제주를 보며 단번에 부천을 떠올릴 수 있는 구석은 없다.
팀이 떠난 자리에 부천의 팬들이 힘을 모아 새로운 팀을 만들었다. 2006년 해 3월 축구 클럽 창단을 위한 시민모임을 만들었고 2007년 12월 시민구단 '부천FC1995'를 만들었다. 부천 서포터즈 모임인 '헤르메스'를 만들었던 '1995년'을 팀 이름에 넣은 이유도 '팀보다 팬이 먼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천은 2013년 K리그2의 창설과 함께 프로 구단으로 재창단해 오늘에 이른다.

복수극. 부천 팬들이 2020년 5월 26일 제주와 맞대결이 확정됐을 때 가장 떠올렸을 단어가 아닐까. 구단은 경기를 앞두고 발표한 포스터에 '20060202', '절대 잊지 않을 그날'을 적으며 제주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나타냈다. 서포터즈는 공식 성명까지 발표해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to hell)'며 맞대결을 반겼다.
사실 첫 맞대결은 2013년 1월에 있었다. 서귀포 전지훈련에서 부천이 제주와 연습 경기를 치렀던 것. 하지만 시즌 전 각자 경기력을 평가하는 의미가 강했던 데다가, 두 팀이 누비는 무대는 엄연히 달랐다. 역사적 첫 맞대결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같은 결말은 없었다. 애초에 제주가 K리그2로 강등되며 성사된 맞대결. 절치부심한 제주는 K리그1에서 뛰어도 손색이 없을 선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시즌 초반 3경기에서 부천이 3연승, 제주가 1무 2패로 부진했다지만 부천의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었던 이유다. 더구나 주중 경기로 치러지는 탓에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컸다.
부천은 전반전 선전이 무색하게 후반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고 경기 종료 직전 주민규에게 실점했다. 결국 부천의 0-1 패배. 14년을 기다렸던 승리의 기쁨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뜨겁다 못해 거칠다는 평가를 받는 부천 팬들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이 역사적인 경기도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으로 열렸다. 선수들은 체력이 떨어진 후반이 되면 팬들의 목소리에 힘을 낸다고들 한다. 녹음된 응원가가 경기장에 울렸지만, 육성으로 전해지는 에너지는 분명 부족했을 터.
부천 송선호 감독은 "선수들은 열심히 해줬고 생각대로 됐다. 후반전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이 아쉬웠다. 저희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비록 0-1로 졌지만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워했다.
제주의 반응은 부천과 사뭇 달랐다. 부천이 안고 있는 2006년 2월의 기억이 마음 아픈 것이었다면, 제주는 2006년 2월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는 듯했다. 제주는 '더비'라는 사실보다 '시즌 첫 승'에 방점을 두고 나섰다.
제주의 사령탑 남기일 감독은 선수 시절 부천SK 유니폼을 입고 7시즌을 보냈다. 그는 "처음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추억이 많은 운동장"이라면서도 "부천 분석을 많이 했다.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며 경기 준비는 평소와 같이 했다고 밝혔다. 묘한 감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반응이다.
이어 "부천도 잘되고, 저희도 잘되는 경쟁 상대, 그런 팀이 됐으면 한다"며 두 팀의 '더비'가 새로운 흥행 요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첫 맞대결에서 결승골의 주인공이 된 주민규도 마찬가지다. 주민규는 부천 팬들의 뜨거운 응원에 대해 "(부천과) 9월에 다시 만나는데 부천 팬들이 워낙 열정적인 걸 알고 있다. 팬들이 같이 있다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악역이 되는 것을 꺼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들마다 다른 것 같은데, 내 경우엔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고 자극이 되는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현실과 꿈은 다르다. 부천은 첫 맞대결에서 시원한 승리를 수없이 그렸겠으나, 사실 현실이 그 기대에 꼭 보답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삶이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속이 상해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이 현실이다. 역사적 첫 맞대결에서 부천이 승리하지 못했다지만,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14년을 돌아 두 팀은 끝내 만났다. 팀이 제주로 떠났을 때, 십시일반 팀을 창단하려고 했을 때, 그리고 K3리그에 참가를 결정했을 때 제주를 만나 복수하는 꿈을 꾸기는 했을까. 부천이 그렸던 꿈의 많은 부분이 이미 현실이 됐다.
이제 물꼬를 텄다. 첫 시작이 어려웠을 뿐이다. 부천이 제주를 꺾을 기회가 이번 한 번뿐이 아니다. 이번 시즌에만 2차례 맞대결이 더 예고돼 있다. 긴 시간을 지나 두 팀이 만난 것처럼, 다음에 다시 만날 무대는 K리그1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20년 내에 복수를 이루지 못해도, 두 팀이 역사를 이어 가는 이상 그 언젠가 부천이 꿈꾸는 제주전 승리가 현실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 부천의 숫자 헤아리기는 '5228일'에서 끝이 났다. 이제 부천의 마음은 다음 경기를 향한다. 송선호 감독은 "10여 년 만에 열리는 경기에서 패해서 정말 죄송하다. 승리하는 경기를 준비할테니 지켜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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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태 기자 yht@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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