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자전차왕 엄복동',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설득력은…
때는 일제강점기, 엄복동(정지훈)은 물장수로 장터를 누비던 순박한 청년이다. 어느날 그는 처음 본 자전거(자전차)에 온통 마음을 뺏겨버리고, 동생은 대학 공납금을 털어 자전거를 선물한다. 기쁨도 잠시, 그는 자전거를 도둑맞고 실의 속에 상경한다. 마침 경성에서는 자전차 대회가 인기다. 일제의 승승장구에 조선 민중의 패배감은 짙어져 가고, 일미상회 황재호(이범수) 사장은 '독립운동은 총과 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며 자전차 선수 육성에 나선다.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전조선자전차대회에서 조선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나라 뺏긴 설움을 달래줬던 실존 인물이다. 슈퍼스타나 다름없었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 자전거'란 노래가 유행했고, 그가 출전하는 자전차 경주를 보려고 10만 명이 몰려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경성 인구가 30만 정도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수다.
약속이나 한듯 납작한 캐릭터, 장면과 장면 사이를 설명하지 못하는 서사로 "엄복동을 지켜라"라며 그를 둘러싸고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눈물을 설득하기는 역부족이다. 그의 승리가 조선 민중을 일깨워 독립을 향한 열망을 불지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 바탕이 됐다는 해석 역시 마찬가지. 그저 이 영화의 개봉 시즌이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겹친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박세리 박찬호의 승리가 IMF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했듯, 엄복동의 승리가 일제의 억압에 고통받던 조선 민중에게 큰 힘이 된 건 사실이다. 사실 비하기 어려운 감동이었을 것이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그렇기에 더 아쉽다. 잊었던 희열을 끄집어냈다는 의미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오는 27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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