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정아 "'스캐'보다 '미성년'이 먼저…정~말 연기 잘하고 싶었죠"[인터뷰S]

2019-04-13     김현록 기자

▲ 영화 '미성년'의 염정아. 제공|쇼박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바야흐로 배우 염정아의 새로운 전성기다.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연기 한 길을 걸어온 여배우가 맞이한 눈부신 시간은 곁에서 지켜보기에도 더없이 흐뭇하다.

지난해 코미디 영화의 귀환을 알린 '완벽한 타인', 대성공을 거둔 JTBC 드라마 'SKY캐슬'의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 쉴 틈 없이 작품을 선보이는 그녀의 신작은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 자신의 아빠와 자신의 엄마가 불륜이란 걸 알게 된 두 여고생을 중심으로 한 섬세한 소동극이자 드라마다. 염정아는 남편의 불륜에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내이자 여고생 딸을 둔 어머니 영주 역을 맡았다. 시종 감정을 꾹 누른 채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는 그녀는 고요한 모습으로도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김윤석이야 감독 이전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 대표의 연기파 배우고,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의 러브콜에 염정아는 염정아답게 화답했다. 시나리오를 받은지 단 하루만에 출연을 결정한 것. 시원시원하고 담백한, 염정아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대목이리라. 그녀는 "시나리오가 좋았다"면서 "사실 김윤석 감독님 작품이어서 하고 싶었다. 사실 기분이 좋았다. 저한테 같이 하자고 해 주셔서"라고 싱긋 웃었다.

염정아는 "저렇게 연기를 잘 하는 분이라면 연기도 잘 하실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며 "부담이 있었지만 늘 감독님이 해결해 주셨다. 무거운 부담으로 현장에 가도 돌아오는 길은 홀가분했다"고 털어놨다.

"감독님(김윤석)이 조용히 와서 말씀하세요. '이런 기분에 이렇게 연기하셨죠?' 꼭 집어서 말씀하세요. 마치 감독님이 연기한 것처럼.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그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시니까 금방 알아듣겠더고요. 그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에요…. 감독님이 원하시는 영주에 근접하고 싶었고, 해내고 싶었어요. 저를 믿고 시나리오를 주셨는데, 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어요. 그리고 정말 연기를 잘하고 싶었어요."

▲ 영화 '미성년'의 염정아. 출처|스틸컷
염정아와 김윤석은 '범죄의 재구성', '전우치' 등에는 함께 출연했지만 호흡은 한 번도 안 맞춰 본 사이다. 김윤석이 불륜남편 대원 역을 겸한 탓에 이번에야 카메라 안에서도 처음 만났다. 염정아는 "연출할 때는 너무 부드럽고 편안한 감독님"이라면서도 "갑자기 연기를 하니까 잘 하는 선배랑 연기해서 '쫄리는' 거다. 대원이 눈 앞에 있을 땐 연기에서 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감독 김윤석'에 대한 신뢰, 믿음과는 또한 별개다. 

"시나리오보다 완성된 영화가 재밌어요. 감독님의 위트를 알았어요. 이걸 이렇게 연출하시네 하고 놀랐던 신도 많았고요. 처음엔 연기자 김윤석의 이미지와 사실 매치가 안 됐죠. 저도 그래서 더 궁금했어요. 하루이틀 촬영해 보니까 '이렇게 꼼꼼하시구나, 섬세한 감정이 있으시구나' 했죠. 여자들의 심리도 많이 이해하시고, 워낙 가정적이서 가족들과 대화도 깊숙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낮에는 커피, 밤에는 술 마셔가며 많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다시 제안이 오면요? 물론 해야죠."

영화는 시종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에 대해 묻는다.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가. 그녀 역시 '미성년'을 찍으며 내내 같은 고민을 했다. 무엇이 어른스러운 것일까. 그나마 자신이 연기했던 영주가 진짜 어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염정아는 털어놨다.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조건이란, 객관적으로 보고 감정에 많이 휘둘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굉장히 어렵고 내공이 필요한 일이에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건 미성숙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경계를 거기에 두고 싶어요."

▲ 영화 '미성년'의 염정아. 제공|쇼박스
'SKY캐슬'의 욕망덩어리 한서진을 연기하며 연기파 배우의 진정한 힘을 드러낸 염정아다. 온통 정신이 딴 데 팔린 채 딸뻘 되는 고등학생에게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라고 하는 염정아의 영주는 부들부들 떨리는 얼굴로 딸을 향해 "너는 공부만 해"라고 울부짖듯 대사를 토해내던 한서진을 소환한다. 시간상으로는 '미성년'의 영주가 먼저였다. 하지만 감독 김윤석이 주문한 건 절제 또 절제였고, 영주와 한서진은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염정아는 "'미성년'을 먼저 찍었으니까. 이걸 하며 잘 해내고 싶었던 것들을 'SKY캐슬'에 가서 막 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고 했다.

'SKT캐슬'로 폭발한 절정의 연기는 열띤 찬사를 불렀다. 염정아도 달라진 인기를 실감한다. 공항 일정까지 챙기는 열성 팬들이 생기고, 이른바 '염정아 직캠'이 나돌고, 그녀의 이름을 쓴 플래카드가 심심찮게 보인다. 이 뜨거운 애정마저저도 염정아는 기쁘게 한편으로는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기분이 이상하지는 않냐는 질문에 그저 "저는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전성기는 모르겠어요. 기분이 좋아요. '완벽한 타인', 'SKY캐슬'로 좋아해주시는 분이 많아지니까 그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아요. 익숙하지 않죠. 시사회나 영화 선보이는 자리에 가면 항상 옆에 있는 남자배우에게 따라다니던 플래카드에 제 이름이 씌어 있는데, 아직 적응이 안돼요. 다들 응원해주시고 진심으로 좋아해주시는 것이 느껴져서 부끄럽기도 해요."

높아진 관심만큼 그녀를 찾는 작품도 늘었다.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이 쏟아진다. 염정아는 "책이 많아지니까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아지니까 좋다"면서도 "전과 똑같은 기준으로 작품을 본다"고 말했다. "잘 됐다고 고수하면 안된다. 그러면 안된다"며 "머리만 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설정을 해야 한다. 다른 머리를 하고, 다른 모습을 보여야 드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예전도 지금도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나리오의 전체적인 짜임새와 재미. "제가 하고싶은 역할은 눈에 금방 들어온다"며 "지금까지 했던 작품이 다 그랬던 것 같다. 눈에 들어와서 보고 금방 결정한다"고 했다. 하루 만에 출연을 결정한 '미성년'처럼 말이다. 배우로서도 아내로서도 엄마로서도 열심히 살며 꾸준히 제 몫을 해온 그녀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담담하고도 우직하게 제 길을 갈 것 같다. 그녀는 말했다. 

"이제껏 꽤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고 별로 후회는 없어요. 지나온 것들은 할 수 없을 테고, 지금의 나이부터 할 수 있는 또다른 배역이 있지 않겠어요. 제가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하게 되는 건 아니죠. 기다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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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성년'의 염정아. 제공|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