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돈냄새 나면 안돼"…'천문' 최민식을 지탱해주는 것들[인터뷰S]
말은 그리 했어도 배우 최민식(57)의 얼굴엔 흐뭇한 기색이 묻어났다. 오는 26일 개봉을 앞둔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 제작 하이브미디어코브, 이하 '천문')은 최민식과 한석규의 영화다. 최민식이 장영실, 한석규가 세종대왕을 맡아 같은 하늘을 바라본 두 위대한 인물의 애틋한 관계를 빛나는 별 아래 녹진하게 풀어냈다. 오가는 대사와 눈빛으로 전해지는 밀도높은 감정에 멜로드라마 뺨친다는 평이 나온다.
"우리가 외형적으로 아는 역사의 프레임이 반복되는 게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다"고 밝힌 최민식은 "인물의 감정이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되길 바랐다"고 했다.
"저는 두 사람의 관계를 좀 더 다이나믹하게, 파노라마 식으로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그리는 데 집중하는 게 '천문'이라는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아니냐 의견을 냈어요. 세종도 장영실 이야기가 내 생각보다 좋으면 살짝 '잘하는데' 하는 미묘한 질투가 있을 수도 있고, 장영실도 말투가 약간 선을 넘우며 '싸가지' 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상상이 자꾸 들더라고요…. 천편일률적인 애정보다는 미운정 고운 정 든다는 느낌을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같은 '성'(聖)으로 칭송받는 위인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재해석을 하죠. 그분들의 업적을 폄하하거나 하는 게 아닌 이상, 사사로운 감정을 극복하고 뭔가를 이뤄냈다면 더 인간적으로 보일 것 같았어요. 성역화시키는 것, 그게 제 취향은 아니에요.
과거 이야기지만,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봤을 때 감동받았던 건 그분의 슈퍼파워가 아니었어요. '빌어먹을 놈' 욕도 하고 하는 모습이 너무 인간적으로 다가왔고요. 우리와 진배없는 사람이 저렇게 위대한 일을 해냈구나 했죠. 세종대왕도 그렇게 접근하길 바랐고요."
감정의 결을 어루만지는 연출 솜씨로 정평난 허진호 감독은 배우의 마음도 그렇게 헤아린 모양. 그토록 재회를 소망했던 두 배우를 '천문'이란 판에 모은 감독은 장영실, 세종 역을 두 배우가 '알아서' 맡으라 했단다. 최민식은 '대본을 보고 한석규가 세종을 연기하겠다 했고, 그럼 자신이 장영실을 연기하겠다 했다'고 귀띔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최민식이 웃으며 응수했다. "일어났잖아요!"
모두 다 배우와 배우, 배우와 감독의 믿음이 바탕에 있어 가능한 일들이다. 촬영은 "일단은 한 번 해보세요"로 시작되곤 했다. 그 속에서도 섬세한 디렉션과 조율이 이뤄졌다. 최민식은 "고도의 연출력"이라며 "감독이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속성, 한석규라는 배우의 속성, 재질, 성질, 성향 이런 것들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웃음지었다. "어떻게 보면, 여우예요 여우." 열띤 촬영과 대화는 종종 술자리로 이어졌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1990년대, 그 대표작인 '넘버3'이나 ''쉬리'를 함께 만든 두 사람의 대화는 어땠을까. 최민식은 "우리는 젊고, 추억에 취해 살지는 않는다"며 다만 그때처럼 보다 다양한 작품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는 종종 나눈다고. "위기의식까지는 아니어도 필요성을 느꼈다"는 최민식은 "작지만 알차고 단단한, 보는 재미가 쏠쏠한 이야기를 쿵짝쿵짝 개발하고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도 반문했다.
그 세대 고참 격인 임상수 감독과 함께 하는 '행복의 나라로', 김동휘라는 생짜 신인과 호흡한 박동훈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등 그의 차기작들은 이같은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최민식은 말했다.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현장, 사실 그것이 생명이죠. 획일화된 작품은 죽음이에요."
"만드는 사람은 열심히 만들면 돼요. 성심을 다해서. 그것을 자꾸 추스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꾸 주판알 튕기지 말고, 연기에 대한 복기를 하고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생각해서 업그레이드 해야지 관객수에 연연하면 안돼요. 석규 친형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연기에서 돈 냄새가 나면 안된다.'
관객과 신뢰가 형성되려면 딱 하나예요. 연기 잘하면 돼요. 작품에 잘 녹아들면 돼요. 그럼 돈도 버는 거고. 자유롭기 쉽지 않지만 원칙과 기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이들며 더 생각하게 돼요. 그것이 결국엔 나를, 내가 하는 일을 지탱해주는 것이구나."
"자극제라는 말조차 조심스럽지만, 정신이 번쩍 납니다. 모처럼 어르신이 계시는 현장이 이렇게 든든한 거구나. 뭔가 좋았어요. 절대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잡아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모든 면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까불지 말아야겠구나, 정말 머리 박고(!) 열심히 해야겠구나."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